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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가을

by 리좀

오는 듯 오지 않는 듯

이미 온 듯 아직 아닌 듯

기다린 듯 잊어버린 듯

무심한 건 한결같은 가을이 아니라

어디에 머물지 알 수 없는 마음



창을 열지 않아도 바람은 이미 가을

하늘 보지 않아도 창밖은 벌써 가을

나무도 풀들도 공기도 모두 가을에 스미는데

여전히 어느 시간에도 속할 줄 모르는 나

부표같이 계절의 틈새로 떠도네



오래 기다린 것은 늘 오지 않고

간절히 원한 것은 늘 곁에 없는 나날

문 앞에만 머무는 망설임의 계절 지나

이제는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고

원하지 않는 법을 조용히 익히네



그대를 마음에 들이지 않아도

어김없이 이별은 찾아오고

그대를 마음속 깊이 품어도

또 어김없이 작별이 기다리므로

계절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대신

계절의 끝을 따라 흐르고만 싶었네



고개 들어 똑바로 쳐다본 적 없지만

한 순간도 찬란하지 않은 적 없는

파아란 가을빛 맞으며 부서지길

숨죽여 소원하던 흐릿한 밤들

속속들이 잊었다고 되뇌어봐도

핏줄처럼 선연하게 떠오르고

숨결마다 사무치게 차오르는 계절

문득,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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