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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가을이라 말하지 못한

by 리좀

아침 녘 창문을 열자

후욱 들어온 서늘한 공기

차마 가을이라 말하지 못하고

한 아름의 한기 끌어안네

들끓던 여름 어서 지나가기를

빠른 걸음으로 떠나가기를

바라고 바란 시간보다 더

어색하게 갑작스런 계절

기다린 것도 외면한 것도 아닌

낯선 갈림길에 우뚝 세워두네


그대가 올 줄 알지 못했듯이

되돌아갈 줄도 몰랐으니

그대로 인해 비롯된 나는

영원할 것만 같이 무성하던

여름 홍안을 세차게 힐난하듯

모든 것을 만들고 뒤안길로 사라지는

계절과 함께 붉은 소멸의 꿈꾸네


그대가 떠나갈까 아니면

다시 오지 않을까 하여 생긴

오래 묵은 시름 같은 병으로

잘려 나간 한 줌 뱃골 속 깊이

끝끝내 품고 싶었던 것은

그대인가 그대와 함께 한 시간인가

아니면 분간할 수 없는 그 모든 것인가


그대가 올 줄 알지 못했으나

결국 되돌아갈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눈부신 계절

쏟아지는 햇빛을 탓하며 애써 눈감아도

한 순간도 온전히 간직할 수 없기에

애초에 내 것이 될 수 없는

그대와 함께 한 시간 속의

나, 그리고 차마 말하지 못한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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