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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에게 길을 묻다

by 리좀

해가 지면 그제야

네 눈을 바라볼 수 있겠어

안타까운 마음 감추려

어수선하게 흩어지는 시선

가누지 못해 가엽던 나날

용기가 무엇인지 몰라

어디서 답을 구할 수도 없던

흔들리는 시절을 오래 지나 차라리

지는 꽃을 부러워하네

조금만 더 견디면 편할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올까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던

위태로운 강을 건너느라

청춘이 다 지난 걸 알았네

이토록 태연한 평안

한 겹만 걷어내면 언제든

고개 드는 진창 같은 젊은 시절

고요하기를 바라는 안타까운 기도

지긋한 미소 뒤에 감추며

누구에게도 받지 못한 채 오래 묵혀둔

위로를 해야겠어 이제 해야겠어

그 때야 비로소 하늘이 보이고

잔잔한 구름이 함께 했음을 알게 되겠지

뜨거운 여름내 끝없이 붉은 꽃을

피워 올린 매끈한 배롱나무 곁에서

애처로운 붉은빛에 왈칵 울음 쏟는

네가 보이기 시작하겠지

고통 속에서야 비로소 사랑의 섬광을

보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합당한가

옹벽 같은 세월의 무게 훌훌 털고

가벼워지길 바라고 바란 시간 동안

쌓아 올린 것은 고작해야 한 꺼풀의 외면

명치처럼 답답한 날갯죽지어도 이제는

아프지 않은 햇살을 따라 걸을래

아니 햇살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걸을래

그 길 끝나는 곳 어디쯤에서 너를

똑바로 볼 수 있게 된 나는 이제

오지 않는 너를 망연히 기다리는 수밖에

그럴 수밖에

사랑은 어김없이 엇갈리는 길과 길 사이에

있다는 것은 또 왜 이토록 엄연한가

한 줌의 평안을 위해 위태롭게 발 디디고 서 있는

여전히 흔들리는 시절

젊음이 다 떠나갔지만 아직도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는 시간

어디까지 흘러갈지 알 수 없어

뉘엿한 태양에게 길을 물어도 대답 대신

설명할 수 없는 빛으로 붉게 물드네

오늘도 붉게 물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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