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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속에 피는 꽃

by 리좀

거의 다 되었어요

입 안에서 익어가는 말

이제 터뜨리기만 하면 돼요

당신을 만나기 훨씬 전부터

안으로 되뇌는 법을 익혔어요

한 순간의 개화를 위해

일생을 바치는 꽃들처럼

오랜 기다림, 오랜 아픔, 오랜 고뇌

단 한마디로 공글렸어요


이제 떠나지 않아요

한 번 떠난 것들은 돌아오지 않고

낯선 곳에서 만난 눈부심은

익숙한 얼굴 뒤로 숨어버려요

어김없이 손아귀에서 부서지는

휘황한 빛을 쫓는 대신

당신을 찾아 헤매인 길들 속에

누추히 버려진 말의 씨앗을

차곡차곡 모아 왔어요


떠나지 않아도 알아요

더 이상 당신은 길 위에 없어요

꽃 피우는 모든 것들은

자신의 목숨을 볼모로 잡히고

단단한 침묵이 터지는 날을 기다려요

언제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 한순간이면 충분해요

당신을 기다린 시간보다 더

오랜 기다림이 있은 후에야

발아하는 말속에서

산개할 듯 일렁이며

나의 꽃이 움직이네요


이젠 말해볼래요

뜻 모르고 뱉어내던 가시를 빼고

어디에도 없던 당신을 기다린 시간만큼

굽이진 곡해를 담아내며

은빛 실금 사이로 피워 올린 꽃

한 번도 소유해 본 적 없는

나 혹은 당신의 흔적들이

파노라마처럼 옹골지는 말

그 한마디면 충분해요

그 한송이면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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