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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을 May 25. 2023

손남상과 메두기 떼

<빨간머리 앤>의 식탁을 재현하다.


어린 적 살던 집에는 크고 좋은 다락방이 있었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빨간 머리 앤>의 영향으로 이 다락방이 좋았다. 양쪽 문이 바깥쪽으로 열리는 비닐로 덮어 씌운 열악한 문마저도 좋았다. 다락방에서 마주보이는 큰 슈퍼는 작은아버지의 집이었다. 우리 가족과 달리 사촌들은 자주 여행을 떠났다. 떠나는 그들을 바라보다가 나는 곧장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펼치고 마리아와 조던이 침낭에 들어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읽고 또 읽었다. 다락방은 왜 이런 책과 세트인 걸까?


부모님의 커리어가 무척 다양하게 전개된 탓인지 집에는 늘 손님이 많았다. 손님들이 오면 다락방이나 서늘한 복도에 있다가 손님이 돌아가자마자 접대가 이뤄졌던 큰방으로 들어갔다. 엄마의 귀중한 접대 음식이 대체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궁금했다. 저 맛난 걸 어른들은 아떻게 참고 남기는 걸까? 아이들이 많은 집을 배려하는 것인가? 체면인가. 다음에 또 오셨으면.


시댁엔 손님들이 자주 왔다. 제사 4번 명절 2번, 시할머니가 살아계셨으므로 집안 어르신 생신까지 어머니의 집도로 이루어졌다. 어머니가 주도하는 동네 모임들이, 인기 쟁이 아버님 친구들의 모임이 시댁에서 이루어졌다. 모두 함께 만두를 만들면 어머니 냉동고엔 알차게 만두가 저장되었다. 어머니는 융숭하게 대접하기보다 저렴한 재료로 정성들인 음식, 장소, 노동력을 제공하고 손님들의 질 좋은 선물들을 고이 모셨다가 우리 손에 들려 보냈다. 때로는 유통기한이 임박한 캐나다산 커피가 당도하기도 했다. 


그 알뜰한 세계가 때로 궁상스럽다고 생각했지만 서서히 손님들의 선물에 물욕이 솟았다. 어머니는 선물의 가격 확인을 잊지 않았다. "이거 5천원 줬는겨?"로 가격을 후려치면 손님은 정색하며 "1만원 줬습니다"라고 정정했다. 알뜰하고 살뜰한 물물교환의 세계는 밑져야 본전이고 조삼모사와 같아서 만족감을 맛보려면 여간 야무져야 하는 일이 아니었으므로 나에게는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곧 가까워졌음을 인정해야겠다. 관악구의 메뚜기떼와 함께 살고 있으니까 당연하다. 중1 딸, 초 6 아들, 초4 아들은 무섭게 먹는다. 김제동의 어머니는 야구선수 이승엽에게 밥을 해먹이고 난 뒤 이렇게 말했다. "소는 키워도 쟤는 못 키우겠다." 이해할 수 있다. 아이들의 식욕이 폭발하면서부터 제사 음식이나 시댁의 잔치에 훨씬 유연하게 대처하게 되었다. 제사를 의무감에 했다면 지금은 이 음식을 먹을 사람을 생각하며 기름을 두른다. 회식을 싫어했지만 요즘은 좋다. 누군가의 집이든 밖이든 깨끗하게 먹고 남은 음식 때문에 모임이 마무리될 때즘엔 묘하게 신경망이 부산하다. 하찮은 욕심을 자제하고 싶지만 "싸갈 사람? "저요" 서슴지 않는다. 무엇보다 아깝고 집에는 메뚜기떼가 있다. 아, 샤넬 백에 남은 음식을 싸 가면 좀 더 있어 보일 것 같기도 하지만.


나의 집에도 손님이 자주 왔다. 세 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바로 집앞이어서 아이들 친구들과 엄마들이 수시로 드나들었고, 독서 모임 친구들도 집에 종종 초대했지만 직접 요리한 음식을 대접한 일은 손에 꼽는다. 주부가 되면 남이 해주는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조리 음식-나의 노동=맛있음" 공식은 주부에겐 통용된다. 그러니 낯설고 어려운 손님은 몰라도 살림하는 손님을 접대하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손수 지은 음식을 누군가에게 먹이는 일이 어려웠다. "맛없다"는 옵션이 제거된 "맛"평이 실린 시나리오가 마뜩찮았다. 내 음식이 손님의 입에 들어가는 순간은 벌레가 몸에 기어가는 느낌과 비슷한 간질거림과 긴장감이 생겼다. 눈과 귀를 막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반대로 눈에서 레이저가 발사되었다. 결국 호불호가 없는 제과 제빵을 사서 제공했다. 동공은 쉰다. 긴장의 접대 카테고리를 요리조리 비껴나간다.


이런 내가 글쓰기 친구들인 엄지 작가들과 <빨간머리 앤>을 읽고 마을에 새로 부임하신 목사님을 위한 접대상을 차리기로 했다. 닭고기 젤리, 레이어 케이크, 쿠키 3종, 과일 젤리, 파운드 케이크, 타르트, 복숭아 조림, 시골 빵, 목사님을 위한 소화가 잘 되는 빵 등이 그날의 메뉴였다.(소설에는 차가운 소 혀 요리까지 있다.) 설희님 남편께서 준비해준 장미와 관악산에가 캐온 고사리 아재비, 지아님의 장미 찻잔으로 식탁을 꾸몄다. 한껏 차린 티를 내려는 투머치 식탁. 아날로그로 직접, 심지어 불피운 화덕에서 저 음식들을 차리려면 보통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걸 우리는 디지털과 유통의 힘을 빌려 조금 수월하게 진행해볼 수 있었지만, 심리적인 부담감은 마릴라와 앤의 것과 다르지 않았다. 내 입에 들어오는 게 아닌 이상 평가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접대" 카테고리에 발을 들여놓았다.


메인 요리를 담당한 설희님은 알러지가 있는 딸아이를 위해 배운 비건 베이킹을 준비해줬다.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은 부분도 있고, 비건이 입맛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긴장감이 높았다. 나는 집에서 닭고기 젤리를 미리 만들어보았다. 아이들 반응은 최고였지만 남편은 메튜급으로 고구마여서 화를 돋았다. 그렇다고 아이들 반응을 믿자니, 메뚜기잖나? 퇴로는 없다. 가자.



우리는 평일 저녁 사당의 한 교회 공유 주방에서 모였다. 각자 준비해온 재료들을 풀어놓고 열심히 요리했다. 두향님과 설희님은 캐리어에 재료들을 가득 채워 왔다. 2시간 정도가 지나가 초록 지붕집의 목사님 초대 식탁이 완성되었다. 설희님은 두근거렸겠지만 갓 구운 빵과 케이크가 맛이 없기란 메튜가 호주에서 캥거루를 입양하는 일보다 어렵다. 그런데도 설희님은 긴장했다. 반듯반듯 사각사각 마릴라도 느꼈을 감정. 설희님의 케이크는 이른 봄 둔덕 위헤 덮인 얇은 눈처럼 생크름을 두르고 자연미를 발산했다. 씹히는 맛이 살아 있어 입안에서 살살살 부서지는 맛이 더 없이 내 취향이었다. 파운트케이크는 지아님의 '궁둥빵' 애칭에 어울리게 토실토실 통통통 아기 엉덩이 모양이었고, 밀도 있게 부드러웠다.


설희님의 레이어 케이크


이제 두향님과 함께 만든 닭고기 젤리를 먹을 때가 되었다. 칼이 젤리 표면에 닿는다. 젤리가 굳는 데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아직 좀 덜 굳었고 등을 언급한다. 시식자의 부담을 덜고자 했지만 추가하고 만다. 칼을 대자 닭이 자연스럽게 젤리층과 분리된다. 망할. 하지만 덜 망했다. 차가워진 닭을 먹는 일은 고역이지만 이 시원한 닭고기 젤리는 찐한 닭육수와 탱글한 젤리맛이 더해지면서 시원한 닭고기를 먹는 게 괜찮다는 느낌을 선사했다.


탱글탱글 시원한 맛 닭고기 젤리


음식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말이나 먹는 양에 달려 있지 않다. 남은 음식을 기꺼이 싸가서 먹는 데에 있지, 암. 나는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장미산장의 파트너 선정만큼 나를 긴장시키는 순간이 왔다. 두향님이 닭고기 젤리를 소량 선택해서 싸갔다. 고마워요 두향님. 또 다른 멤버들은 관악구의 메뚜기데를 배려해서 닭고기 젤리를 외면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궁둥빵 3개, 레이어 케이크 3조각, 소화가 잘 되는 빵과 소화가 덜 되지만 맛있는 빵을 야무지게 쌌다.


우리들의 식탁은 잘 들여다보면 제사 음식처럼 투머치 차림상이다. 남은 음식을 싸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제사도 잔칫상도 손님상도 핵심은 음식을 남기는 게 아닐까? 한껏 차려 과시하면 손님에게 만족감을 선사하고 두고두고 회자된다. 남은 음식으로 며칠은 노동을 덜 해도 되어서 좋다. 그렇다. 잔치의 핵심은 그날 동원 가능한 재료와 노동력을 모두 짜내어 음식을 많이 해서 남기는 것이다. 그 음식은 잔칫상 바깥의 아이들에게 혹은 이웃에게 도달한다. 엄마의 접대 음식도 손님의 인내로 남은 것이 아니라 이 접대상의 바깥을 알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리라.



지아님이 싸간 궁둥빵과 타르트 완판 소식


손님상을 기다리는 이는 정작 손님이 아닐 지도 모르겠다. 손님상의 진짜 스토리는잔칫상 바깥에 있다. 미나리 아재비가 시들까봐 식탁을 차리기 30분 전에 관악산에서 가져온 흙묻은 미나리 아재비, 상을 차리기 위해 두향님과 설희님이 끌고 온 캐리어, 승미 샘의 생크림 대참사, 난생 처음 장미의 가시를 제거해본 지아님의 손길과 우리들의 웃음, 엄마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궁둥빵 세 개를 몽땅 찜한 우리집 메뚜기 떼들, 그리고 이 글 같은 것들.


밤이 깊어 돌아갈 채비를 한다. 설희님과 두향님은 올때처럼 다시 캐리어에 짐을 싼다. 11시가 다 되어 나선 밤중의 길을 나의 친구들이 캐리어를 끌며 서서히 사라진다. 그 모습이 애틋해서 필름 돌리듯 계속해서 재생한다. 이 고되고도 즐거운 차림을 지속할 힘을 얻는다. 우리들은 고전 소설을 읽고 소설의 식사를 재현해보는 재미를 지속해보려 한다. "이 기획을 메뚜기 떼가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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