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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을 May 29. 2023

순수의 세계

<호밀밭의 파수꾼>J.D. 샐린저


“어떤 것들은 계속 그 자리에 두어야만 한다”
<호밀밭의 파수꾼>J.D 샐린저(민음사)


젊은 시절의 샐린저. 1초 고수 아닌가요?



산을 내려오자 오십견을 예방하는 데 좋은 워밍암 운동기구가 혼자서 빙그르르 돌고 있다. 산속이라 사람이 많지도 않고 멀리서 부터 보았지만 사람은 한동안 없었다. 그런데 혼자서 빙글빙글 같은 속도로 계속 돌고 있다. 숲속 정령들의 놀이터인가? 산신령님 오십견 예방 운동중이신가? 이런 상상은 유치하지만 제법 어울렸다.


대체 무슨 조화인가? 멈춰보면 알 수 있으리라. 두 쪽 중 한쪽만 자동으로 돌아가는 건 필시 여기에 자동 장치가 있는 것이리라. 확신이(머리가) 들기(돌기) 시작했다. 호기심이 탱천한다. 멈추려 하면 오토시스템은 분명 저항할 테지. 손으로는 이 저항을 감당하지 못할 거야. 등산 스틱을 가까이 가져간다.


숲 속의 워밍암


"하지마" 남편이 말했다. 아, 하고 싶다. 등산 스틱을 가지고 다가선다 "하지 말라니까" "왜? 너무 궁금하잖아. 멈춰보고 싶어"" 하지 마" 빙글빙글 도는 링에 가까이 가 시스템을 멈추려던 순간 나는 멈추기로 한다. 포기하고 길을 나선다. 워밍암은 미끈하게 같은 속도로 돈다. 3분쯤 걷다가 문득 화가 났다. 왜 내가 멈췄어야 하지? 워밍암은 계속 돈다.


나 : "왜 멈추라고 한 거야? 나는 확인하고 싶은데 왜 그걸 못하게 한 거냐고"

그 : "상상하게 두고 싶으니까. 어떤 것들은 있는 그대로 둬야 하는 거야."


아니. 어린 시절의 순수가 그리우면 사막에 가서 어린왕자랑 우물이나 찾을 것이지왜 숲속에서 나하고 다투고 있나? 양 그림 잘 그렸다고 자뻑하다가 어린왕자에게 수십번 퇴짜나 맞을 중년이면서, 라고 불만이 치솟는 찰나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이 떠올랐다. 남편의 저 말은 홀든 콜필드가 한 말과 같다. 이 남자 어쩌다 애 셋 아빠가 되었지만 한 때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은 거 말고는 다른 욕망이 없었던 겐가.


그대로 두어햐 하는 순간을 주장하는 또다른 남자, 홀든 V. 콜필드. 그는 네번째로 고등학교에서 쫒겨났다. 기숙사 퇴사 날짜보다 3일 먼저 뛰쳐나왔고 집에 돌아가기로 한 날은 3일이 남아 있어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방황한다. 이 2박 3일의 기록이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호밀밭에서 노는 아이들을 붙잡아 안전하게 지켜주는 일이 꿈인 16살 소년 홀든 콜필드. 홀든은 집을 나온 이튿날 여동생 피비가 박물관에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연사 박물관으로 향하면서 옛 기억들을 풀어놓는다. 소년의 라떼 이야기 중 일부는 이렇다.


"이 박물관에서 가장 좋은 건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제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누구도 자기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어떤 것들은 계속 그 자리에 두어야만 한다. 저렇게 유리 진열장 속에 가만히 넣어두어야만 한다.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잘 알고는 있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홀든도 내 남편처럼 그대로 둬야 하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 지키고 싶은 게 있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이 사는 순수의 세계. 그에게 어른은 위선 덩이라 구역질이 나는 존재지만 어린 아이들은 위선과 계급의 모순에서 자유롭다. 그 순수함은 사랑받아야 하고 보호받아야 한다. 순수의 세계에 머물고 있는 아이들은 홀든에겐 위로가 된다. 혹은 꼴도 보기 싫은 숨 막히는 주변을 환기시켜준다. 소설 내내 '우울'한 감정에 사딜리는 홀든은 어린 아이가 "호밀밭의 들어오는 사람을 잡는다면'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순간이나 죽은 동생 엘리와 여동생 피비를 떠올리고 만나는 순간에만 우울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어린 시절 호기심을 마음껏 발산했던 박물관의 전시물, 남동생 에밀에 관한 추억, 순수 문학도로서의 형도 그대로 있었으면 하는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그렇지만 동심의 순수한 세계란 그렇게 틀에 박힌 것이 아니다. 돌아가는 링을 그대로 두고 싶은 남편, 멈춰서 속을 열어보고 싶어하는 나. 모두 어린아이의 것이다. 어쩌면 멈춰버려서 상황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리고 싶은 욕구가 더 어린이다운 건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세계가 마냥 순수하고 아름답지 않다면 우리는 어느 세계를 지켜야 할까? 어린이들의 세계가 오히려 워밍암의 회전을 멈추고 부셔서 안을 들여다보려는 쪽이라면? 워밍암의 회전을 멈추는 건 세속이고, 그대로 두는 건 순수일까?. 피비가 메리고라운드를 계속해서 돌도록 비에 젖은 채로 지켜봐주는 것은 지키는 것인겠고, 춥고 어두우니 집에 돌아가자고 놀이기구의 회전을 멈추는 건 동심을 구기는 것일까?



홀든이 생각하는 순수한 세계란 박물관의 유리 안에 가두어놓고 싶은 박제된 것에 가깝게 느껴진다. 하지만 순수란 과거의 어린 시절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 시절에도 20대에도 40대에도 우리 마음 속 진자 운동을 하며 계속 살아 있다. 숲 속 워밍암의 무인 빙글은 두 어른을 아이답게 처신하도록 부추겼다. 우리는 꽤 순수하게 오래 싸웠다. 마무리만 어른답게 하루 이틀 마음을 열지 못한 채 해야 할 임무들을 수행했다. 우리는 순수와 세속을, 어린이와 어른을 왔다 갔다 하며 낡은쪽으로 기울어가는 중인 것겠지. 사춘기의 홀든이 콜라와 스카치 사이를 오가는 것처럼. 



"우울증의 원인은 소년의 영혼과 조용히 이별하는 중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넘치는 힘과 예감과 욕망 때문이기도 하며, 어른이 되려는 이해할 수 없는 어두운 충동 때문이기도 했다. " 

<수레바퀴 아래서>헤르만 헤세(민음사)


겉은 어른이지만 민증의 숫자는 아직 선을 넘지 못했기에 더욱 극심한 진자운동을 하는 사춘기의 홀든. 동심은 지켜주고 싶지만 어린 여동생 앞에서 담밸를 뻑뻑 피워대고, 동생을 지켜주고 싶지만 동생의 크리스마스 용돈을 빌려 달아나야 한다. 웨이터에게 '스카치'를 호기롭게 주문하지만 웨이터의 거절에 결국 '이런 제길, 그럼 난 콜라'를 내뱉는 홀든. 지켜주고 싶지만 지킬 능력이 없고, 술을 마시고 싶지만 자주 까이는 나이. 아직 엄마가 무당이라고 생각하고, 친구가 자기가 말시수한 걸 아빠에게 이를까봐 걱정하는 소심하고 찌질한 나이.


어린이의 세계에서 도약해 어른이 되는 길은 멀고 겁이 나는 게 당연하다. 성장은 구역질 나는 위선과 잔인한 계급의 세계로 끌려들어가는 일이다. 그가 지키고 싶은 순수한 마음, 그러니까 타인의 가난에 마음을 쓸 줄 알고, 사소한 오리들의 생명을 걱정하는 마음은 어른이 되어도 그가 애쓴다면 지켜나갈 수 있다. 그러니 '홀든 용기를 내렴'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 마음이 타인과 결이 다른 그를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어줄 터이다. 성공과 부는 멀어지더라도 사소한 것들과 곁에 있는 이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아가리라. 내 남편을 보니 그렇다. 홀든의 사춘기는 부잣집 자식이 겪은 자기 계급에 대한 조롱과 반성이라는 점에서 특별하지만 이사춘기 방황기가 자기 계급 유지에 대한 근본적인 두려움과 맞닿아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하기도 하다. 대한민국 중산층의 사춘기는 어느쪽에 기울어 있을까?


어린왕자가 와서 묻는다. "양을 그려줄래?" 이제 남편은 두 번만에 통과. 홀든은 당연히 바로 통과다. 다만 어린 왕자 앞에서 담배를 좀 많이 피운다는 게 흠이다. 나는 택배 상자는 왜 그린 건지 묻는다. 줄곧 남편은 상자 안의 양을 그려왔던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좀 심술궂은 동심 쪽이라서 지키고 싶은 것으로 다시 갈등하게 된다면 남편은 당연히 어린왕자한테 양을 1000번을 그려줘도 통과 못할 위인이 될 터이다

오른쪽, 노년의 샐린저. 은둔자는 이런 미소를 가지고 늙었다. 마음에 드는 미소. 샐린저는 곧 홀든이기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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