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재
시인의 산문은 이런 것인가? 이 감정적인 글이 소화가 잘 안 된다. 늙으면 소화가 안 되는 게 많아지는데 이런 글도 그렇다. 양념 많은 음식이 그렇듯. 저자는 화려한 수사로 오랜 시간 단련된 미스터 시인 느낌이다. 그는 화려한 시를 쓰고 일상에서 사랑과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위해 poem powder 같은 기능성 음식을 먹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누군가는 일상의 사랑과 아름다움에 집중하는 자도 있어야 하는 거겠지.
이 글에서 느끼는 거북함은 젊은 시절 내가 많이 섰던 글과 비슷해서인 거 같다.
결핍을 이겨내보려는 자기 위안과 아름다움을 길어올리려는 한때의 노력이 있었기에 요즘의 내가 있는 거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글은 모순을 눈감고 있어야 길어올릴 수 있는 감수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
이것도 편견일지도.
한편 요즘 남성 작가들의 부드럽고 살뜰한 시선 속에 등장하는 엄마, 동생, 아빠는 어떤가? 아들을 전적으로 사랑하고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삶의 정수를 알려준다. 몸으로 마음으로, 사랑을 주고 꿈을 지지한다. 이게 가능한지 의문인데 사실이라면 정말 복을 받은 사람이다. 가족 사이에도 나이가 들면 온갖 불순물들이 차고 넘치는데 이렇게 맑다니,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모두가 있는 그대로라 치자. 그렇다면 그는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다. 타인의 말을 잘 들어주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선함으로 불평이 없어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이다.
책을 읽고 함께 대화를 나누고 나서 나는 이 시인을 이해하려고, 내 느낌과 생각을 이해하려고 노력중이다.
말할 땐 아무래도 논리는 사라진 것 같아서 보충하려는 것인데, 이래저래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언젠가 다시 이 책을 만나면 그때는 마음을 열 수 있을 것도 같지만, 최근 <내 남편과 결혼해줘> 짤방을 보면서 로맨틱한 장면은 건너뛰고 빌런들의 못된 짓만 돌려보는 취향으로 봐선 아무래도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