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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을 Mar 22. 2023

'프랑'적 세계

<고리오 영감>오노레 드 발자크(열린책들)


발자크의 소설 <고리오 영감>은 옛날 옛적에 돈과 인생을 낭비하는 철 없는 두 딸이 헌신적인 아버지를 버려서 고독하고 외롭게 죽었대요, 라는 전래동화 느낌을 주는데, 1800년대 파리의 풍경이 지루하리만치 섬세하게 묘사되고 그 공간을 살아가는 여러 계급의 인간들의 면모들을 극도로 냉철하게 살피고 있는 소설이었다. 표면적인 주인공은 고리오 영감과 라스티냐크라고 할 수 있으나 주조연 할 것 없이 발자크의 조명을 골고루 나누어갖는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여기에 더해 실제 주인공은 돈과 파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데, 라스티냐크나 고리오만큼 ”프랑“이나 ”파리“가 자주 등장하고 존재감이 대단하다. 키워드를 검색해보면 실제 집계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으나 독자로서 체감하는 정도는 주조연 이름만큼 ”프랑“이 자주 등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보케 하숙집에서는 돈에 따라 사람이 평가받는다. 하숙집에서 뿐이랴. 발자크의 소설 속에선 그 사람에겐 가격 택이 붙어 있다. 새옷에 붙어 있는 택에는 생산비를 반영한 소비자 가격이 붙어 있다면, 발자크 소설의 주인공들에겐 연간 수입이 쓰여 있다. 보케르 하숙에선 정가에 세일가를 덧붙이듯 개인 년 수익에 스티커를 덧붙인다. 바로 하숙비. 발자크가 하도 프랑프랑해대니 독자도 프랑프랑한 글을 써보기로 한다. 책에 등장하는 프랑에 따라 인생을 가단하게 서술 가능한 책이므로 도전.


고리오 영감 : 제면업자로서 성공했을 때는 연 6만 프랑 이상의 부자였으나 자신을 위해서는 단돈 1천 2백 프랑도 쓰지 않았음. 은퇴한 1831년 무렵에는 대략 연 수입 8천 프랑에서 1만 프랑으로 추정.

보케 하숙 1년차에 하숙비 1천 2백프랑(2층). 하숙 2년째엔 9백 프랑(3층). 3년째엔 45프랑을 낸 가난뱅이가 됨(4층 꼭대기방) 여전히 영속 연금과 종신 연금이 있음.

옆방의 하숙생이자 둘째 딸의 정부인 라스티냐크에게 아파트를 마련해주기 위해 1천 3백 50프랑짜리 영속 연금 공채를 팔고, 1만 5천 프랑의 종신 연금을 담보로 해서 1천2백 프랑을 마련함. 종신 연금 1천 2백 프랑이 전 재산이 됨. 첫째 딸 레스토 부인이 다음날 입고 갈 드레스를 맞췄으나 비용을 계산할 돈이 없다고 하자 혁대 6백프랑에 팔고, 종신 연금 증서를 전당포에 잡히고 4백프랑 구해 1천 프랑을 만들어 딸의 드레스 비용을 대고 죽음을 맞이함. 딸들을 보지 못한 채 죽었고, 전 재산 20프랑을 남김.


외젠 라스티냐크 : 연 3천 프랑의 수입으로 여섯 가족이 먹고 살아감. 파리로 유학온 라스티냐크는 연 1천 2백프랑을 쓰는 청년. 그의 가족 5인은 한 달 2백 프랑도 못 쓰는 처지. 4층 고리오 영감 옆 방이므로 하숙비는 45프랑으로 추정. 출세를 위해 사교계에 진출하고자 마음 먹고 이에 필요한 비용을 가족에게 받아냄. 가족들 1천 5백 프랑 마련.

고리오 영감의 둘째 딸 뉘링겐 부인에게 1백 프랑 받아 도박해서 7천 프랑 벌었음. 밑천 대준 뉘링겐 부인에게 6천 제해주고 1천 프랑 남음, 이 1천 프랑을 고리오 영감에게 줌. 본격적으로 상류 사회에 진출하느라 빚을 3천5백 프랑 지게 됨. 보트랭에게 빌림. <일금 3천 5백 프랑 정히 영수함. 1년 내 상환> 1만 2천짜리 어음을 써서 레스토 부인 정부의 빚을 갚아줌. 고리오 영감이 보호자 없이 죽게 되자 마지막 치료비와 장례비를 떠안게 됨. 보케 부인에게 간호에 든 돈 200프랑, 실비의 간호비 10프랑 등을 시계 판 돈 3백60프랑으로 정산. 교회 장례비 70프랑. 매장 일꾼에게 팁 줄 돈이 없어 보케 하숙의 하인 크리스토프에게 1프랑을 꿈. 순수했던 마음을 고리오 영감 무덤에 붇고 파리와 대결하고자 뉘링겐 부인틔 집으로 진격함.


빅토린 : 딸을 상속자로 인정하지 않고 아들에게만 전 재산을 상속하려는 아버지에게서 1년에 600프랑을 받음. 당시 독신 여성 노동자가 소량이 빵과 우유를 먹고 하루 12시간 정도 일하면 연 400프랑 정도를 벌었다고 하니 정말 형편없는 대우임. 그러나 100만 프랑 유산 상속의 가능성이 있음. 보트랭이 빅토린의 오빠를 죽여서 100만 프랑을 빅토린에게 상속시키고 라스티냐크에게 결혼하는 게 어떠냐며, 성공한다면 100만 프랑의 20프로를 달라고 제안함. 그 뒤 빅토린은 라스티냐크에겐 80만 프랑의 여자, 봍랭에겐 20만 프랑의 태그로 빛나는 여자. 보트랭이 빅토린의 오빠를 죽임으로서 오빠에게 상속될 예정이었던 100만 프랑을 상속받게 됨. 나라면 표정관리 못했을 듯한데, 빅토린은 착하니까 슬픔을 애써 이기며상속을 받음.


쿠튀르 부인 : 빅토린을 돌봐주는 먼 친적 과부. 남편이 남긴 재산과 연금으로 살아감. 하숙비 1천 8백 프랑.


보트랭 : 탈옥수라지만 버젓이 사회활동을 하는 섬뜩하지만 세상을 잘 아는 남자. 자칭 5만 프랑의 사나이. 빅토린의 유산 100만 프랑 중 20프로를 노리는 남자. 꿈은 미국에 가서 4백만 프랑의 사나이가 되는 것.


보케 부인 : ”남편은 그녀를 함부로 대했고, 그녀에게 남긴 것이라고는 울 수 있는 두 눈과 살 수 있는 이 집, 그리고 남의 어떤 불운도 동정하지 않을 권리“뿐인 여자. 4만 프랑을 소유함. 하숙인 7명, 저녁 식사만 하는 식객 12명 정도 이들 식비 한 달 30프랑 대략 연 수입 8천 프랑 예상.


미쇼노 양 : 자식들에게 버림받은 할아버지를 돌봐준 대가로 종신 연금 1천 프랑을 받음. 45프랑짜리 하숙인. 보케 부인 하숙집의 하숙인 보트랭이 탈옥수 불사신인 걸 확인해주는 조건으로 3천 프랑을 받게 되었으나 하숙집에서 쫒겨남.


푸아레 : 하숙집 3층 거주. 하숙비 한 달 72프랑.


레스토 백작 부인(고리오 영감의 첫째 딸) : 결혼 시 아버지 고리오 영감에게서 지참금 80만 프랑을 받았음. 정부 막심의 빚 1만 2천 프랑을 갚기 위해 다이아몬드를 팔아 갚아주려 했으나 남편에게 들통나고 1만 2천 프랑을 구하기 위해 아버지에게 달려감. 또한 일로 남편에게 완전히 속박됨으로써 지참금에 대한 주도권을 잃음.


뉘싱겐 부인(고리오 영감의 둘째 딸) : 80만 프랑의 유산 상속자이나 남편에게 털릴 위기에 처함. 남편은 정부에게 매달 6천 프랑을 대주나 부인에게는 거부함. 아버지 고리오 영감과 변호사의 도움으로 1백만 프랑과 연금 5만 프랑은 간직할 수 있으나 남편이 이 돈을 모두 투자해놓은 상태로 파산하거나 자유를 갖거나 둘 중 하라는 선택해야 할 처지.


이렇게 써놓고 보니 정말 돈으로 설명이 가능해졌다. 왜냐하면 발자크가 모든 인물에게 돈과 관련된 서사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부유한 부르주아의 상승과 몰락은 씁쓸하다. 마치 텅빈 돈자루의 일생을 보는 느낌이다. 돈은 넘치는데 세상은 불공평하게 흐른다면 누군가 이를 바로잡고 통제해야 한다면, 여기에 철학을 부여해야 한다면 그 역할은 야망을 품은 풋풋한 젊은 귀족에게 있다는 느낌이 들면 더 씁쓸하다.


우리들도 물질주의 세상을 살아간다. 우리들의 이야기도 돈으로 요약이 가능할까? 나에게 금액별 태그를 붙여볼까? 집, 자동차, 책, 옷가지들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많다는 생각과 동시에 쓸모 있는 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 존재를 대변하고 설명하기에 돈과 물질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 행위를 나도 타인도 그만둘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는 타인에게 금액별 태그를 붙이나? 보통은 제 값을 매길까 세일가로 매길까? 아무도 제값을 매기지 않고 ”속으로는 자기가 현재 처지보다 더 우월한 사람이라고 믿는“ 키치적인 세계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사람의 애정이란 무한한 반경 안에서나 가장 작은 원 안에서나 똑같이 가득 채워지는 것“이라는 " 비앙숑의 세계와 ”애정의 원이 자신에게 가까울수록 그들은 덜 사랑하고, 그 원이 자신에게서 먼 반경을 그릴수록 더욱 친절하게“ 구는 보케 보인의 세계. 우리는 가끔 대범하고 가끔 소심해서 양쪽을 오가며 자신을 괴롭힌다. 발자크는 말하려나. 어느쪽이든 프랑이 덜 드는 쪽, 혹은 프랑이 되는 쪽으로 하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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