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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방학이 지나갔다. 나는 내 가슴속의 쓰라림과 고통은 도대체 무엇인가. 누가 18살 남자아이는 사랑을 모른다고 한 것일까. 나는 내 짝과 함께 풀어보자는 참고서만 붙들며 스스로 물음을 던졌다. 그리고 항상 내 짝과 자습시간에 대화하던 방식으로 참고서 모퉁이에 말을 건네었다.
'너는 정말 나를 좋아하긴 한 거야?'
돌아오진 않은 대답은 나의 쓰라림에 고통을 더욱 부었다.
드디어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는 날이다. 그날 이후 내 짝을 다시 만난다는 불편함과 동시에 내 짝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말을 걸어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등교를 했다. 학교에 들어가니 교실의 분위기가 조금 바뀌어있었다. 두 명이서 같이 앉던 책상이 다 하나로 떨어져 일렬로 배치가 되어 있었고, 연필과 펜으로 검게 낙서로 가득했던 벽은 다시 햐얗게 바뀌어 있었다.
교실을 둘러보는 중에 내 짝이 눈에 들어왔다. 여전히 그 분위기 그대로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못 본 척 고개를 돌려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누가 내 등 뒤를 툭툭 쳤다. 뒤돌아 보니 그 아이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너 왜 방학 때 보충 수업 안 왔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나는 원래 수학을 잘하니까... 다른 과목 공부했어." 나는 그 아이의 눈을 피해 왼쪽 가슴에 달린 명찰을 응시하며 답했다.
"..." 그 아이는 뜸을 들였다.
"너 너 짝 좋아하지?" 그 아이는 갑자기 입을 열었다.
"응." 나는 이번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우리 나이에 연애하는 건 너무 이르다고 생각 안 해?"
"왜? 이유가 뭔데?" 나는 불만스럽다는 듯 대답했다.
"생각해봐. 너는 지금 고작 18살인데 만약 연애를 한다 해도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애인으로 지내다가 결혼까지 할 수 있을 거 같아?" 그 아이답지 않게 장황한 이유를 대었다. 흔들리는 눈빛과 함께.
"왜 그게 불가능해? 우린 둘 다 열여덟 살이나 됐는데, 서로를 좋아하는 마음을 모르겠어?"
"너희 둘이 서로 좋아한다고 해도 계속 남자 친구 여자 친구로 지낼 수는 없잖아." 그 아이는 꽤 진지하게 말했다.
"그럼 너는 어차피 죽을 텐데, 왜 지금 죽 지그래?" 나는 꽤나 불편했다.
"그건 완전히 다른 문제지." 그 아이는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 담임선생님이 들어왔기에, 그 아이와의 연애에 대한 토론은 끝을 볼 수 있었다.
"자, 2학기는 정말 중요한 학기야. 문과로 갈지 이과로 갈지 선택을 해야 한다. 인생에 있어 처음으로 가장 중요한 선택을 하게 될 거야."
나는 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턱을 괴고 생각했다. 나에게 있어 공부는 그 아이에게 잘 보이고 싶어 시작했을 뿐이고, 내 짝에게 모르는 문제를 알려주고 싶어 죽도록 수학 문제를 풀었을 뿐이다. 더 이상 공부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한참을 턱을 괴고 생각에 빠질 때쯤, 내 짝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보았다.
그날 저녁 어느 때처럼 야자를 끝내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혼자 집으로 간다는 점. 나와 같이 걸어 집으로 돌아가던 그 달콤했던 시간은,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교문을 나와 조금 걸었을까,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내 짝이 보였다. 가서 말을 걸어볼까, 왜 그날 나에게 그런 대답을 주었는지 물어볼까, 무척 괴로웠지만 겨우 열여덟 살이던 나는 도대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평소라면 무척 길었던 신호대기가 오늘은 정말 빠르게 느껴졌다.
'여기서 더 어떻게 된다 해도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 없어'라는 심정으로, 큰 숨을 한번 쉬고 내 짝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용기 있게 팔을 내밀었다.
내 손등이, 머뭇머뭇하며 내 짝의 손등을 향해 다가갔다.
내 짝의 팔은 나에게 잡힌 채 뒤를 돌아 나와 마주했다.
"잡지 마"
내 짝은 나의 얼굴을 잠깐 올려다보고, 곧바로 고개를 숙인 채 나에게 말했다.
"나는 그냥..." 난처했다.
"잡지 마, 부탁이야"
나의 손을 조심스럽게 내려두고 내 짝은 걸음을 빨리하여 걸어갔다.
고작 큰 숨만큼의 사이였던 우리는, 이제는 얼마나 멀어진 것일까.
한동안 내 짝의 집을 계속해서 지나갔고, 계속해서 걸음을 멈추었고, 또 계속해서 지나갔다.
내 짝의 삶 속에서 나라는 사람은 연필로 그렸다가 손가락으로 여러 번 문질러버린, 이제는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형태일 뿐이다.
나는 머리를 깔끔하게 밀었다. 그리고 나는 내 짝과 철저하게 미련을 갖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등교를 했다. 문제집을 펼치고 나는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그때의 나는, 문제 푸는 양이 엄청나게 높아져, 문제 푸는 기계로 훈련이 되어있었다.
"머리는 왜 밀었어?" 그 아이는 내 등 뒤에서 나에게 물었다.
그 아이와 그렇게 가까이서 이야기해본 것은 오랜만이다. 나는 뒤를 돌아 그 아아를 쳐다보았다. 눈빛을 보니 이미 나와 내 짝과의 이야기는 아는 것 같았다.
"알면서 그래" 나는 다시 등을 돌려 문제집을 풀었다.
"무슨 소리야?" 그 아이는 어리둥절했다.
"음, 나를 놀리려 한 말 같지는 않네." 나는 문제집을 풀며 대답을 했다.
그 아이는 내 기분이 최악인 걸 눈치채고 더 이상 말을 걸진 않았다. 다음날까지 내 기분이 나이지기만을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다시 내 등에 대고 말을 걸어왔다.
"학교 앞에 고양이 봤어? 새끼 고양이가 무려 3마리가 있어." 그 아이는 다시 일상적인 대화로 나에게 수다를 시작했다. 덕분에 나는 문제집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다시 한동안 아무렇지 않게 수업을 듣고 등교를 했으며, 그 아이와 이야기를 했다.
"이제 말해도 되지 않아? 너 짝과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 아이 답지 않게 어색한 대화를 걸어왔다.
"나도 걔를 좋아하고, 걔도 나를 좋아하는지 알았는데, 걔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어." 나는 내 짝을 한번 쳐다보고 말했다.
내 짝은 그새 다른 친구들과 친해져 그들의 수다를 하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시험지가 펼쳐져 있었고, 틀린 문제에 대해 친구들과 토론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있었던 모든 일들을 그 아이에게 말해주었고, 그 아이가 연필로 적어준 쪽지 또한 보여주었다.
"흠, 걔도 널 좋아했었던 것 같네." 그 아이는 나를 격려해 주었다.
"그럼 왜 그랬지?" 내 눈은 빛났다.
"널 좋아했던 거 같은데, 너도 걔한테 잘못한 건 없으니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아마 별 이유는 아닐 거야." 그 아이는 웃으며 내게 말했다.
"그건 그렇지만..."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인생은 알 수 없는 거야, 사랑이라면 더더욱. 이제 너는 너의 일에만 집중하면 돼. 그나저나 너는 문과로 갈 거야 이과로 갈 거야?" 그 아이는 이번에도 쉴 새 없이 말을 했다.
"..." 나는 그 아이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생각에 빠졌다.
"요즘 같은 시대에 실패 앞에 좌절하고 못 일어나는 남자를 누가 감싸 안아주겠니." 그 아이의 말이 귀에 꽂혔다. 나는 그 아이를 쳐다보았다.
"그래 나는 실패 앞에 좌절해서 못 일어나는 스타일이 맞아." 나는 쿨하게 인정했다.
"너는 여전하구나." 그 아이는 질투하는 듯 대답을 했다.
나는 오늘부로 내 짝과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교실에서 마주쳐도 인사도 하지 않고, 집에 가는 길에도 각자 따로 걸어갔다. 그리고 나는 그 아이가 해준 말처럼 내일에 집중했다. 이제 곧 3학년이 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