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좋아해 줘서 고마워

8

by 그릉


뜻밖이랄 것도 없이, 나는 내 짝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나는 여태까지 내 짝이 아닌, 그 아이를 더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 짝은 나를 보고 항상 웃어주는 것이, 나를 좋아해서 그런지 아닌지 감이 안 잡혔다.

서로를 좋아해서 만난다는 것은 두 사람이 함께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흔히 말하는 짝사랑이라는 것은 한쪽만 승낙을 해도 가능했기에, 다른 한쪽의 마음을 알려 발버둥 치는 것에, 이런 불확실성 때문에 연애라는 것은 더욱 흥미진진한 것이 아닐까?

그 시기에 나는 매일 아침이 기다려졌다. 절대 안 왔으면 했던 등교시간이 이제는 그전날 밤부터 기다려지기 시작했고, 꽤나 부지런히 일어나 단장을 하고 등교를 했다. 그리고 매일 들고 다니던 바나나 우유는 한 개가 아닌 두 개로 늘어났다. 그리고 집 방향이 같은 내 짝과 우연히 함께 등교를 할까 봐 학교 가는 길 내내 뒤를 한 번씩 돌아보면서 갔다. 혹시나 내 짝과 함께 걸을 수 있을까 해서.

오늘은 꽤나 선선한 여름 아침이었다. 학교를 반쯤 왔을 때 신호등 건너편에 가디건을 입은 작은 아이가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단번에 그 아이임을 알아차렸다. 신호가 바뀌고 나는 그 아이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혹시나 내 짝이 나와 그 아이가 함께 등교하는 것을 볼까, 내 짝이 있나 주위를 한번 더 확인했다.


"안녕" 나는 가쁜 숨을 참으며 말을 건네었다.

"어? 너 이렇게 빨리 등교했어?" 그 아이는 반짝이는 눈망울로 나를 올려 쳐다보며 말했다.

그 아이와 이렇게 두 눈을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만인가. 나는 다시 그 눈망울 앞에서 몸이 굳어 멍하니 그 아이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뭐해 빨리 가자"
"어... 어 그래..."

"그나저나 너 요즘 엄청 신나 보인다? 공부가 적성에 맞나 보네?"

"아니 뭐 나는 원래 머리가 좋았으니까" 나는 그 아이를 처음 만난 때로 돌아간 것처럼 다시 횡설수설 말도 안 되는 대답을 했다.

"그래서 노력해보니 어때? 노력한 사람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꼈어?" 그 아이는 내 말에 대꾸를 하지 않고 본론으로 들어가 다시 질문을 건네었다.

"... 아! 너 이번 여름 방학 수업 뭐 들을지 정했어? 나도 그 아이의 곤란한 질문을 다른 질문으로 넘겼다.

"나는 수학을 들을 건데 넌?"

"어? 나도 수학인데..."

"네가? 너는 수학 잘해서 다른 거 들을 줄 알았는데?

"그게 잘하는걸 더 잘해야지" 나는 대충 둘러대며 대답했다.

어느새 우리는 교문에 다 왔다. 등교 시간이라 교문으로 들어가는 학생이 많아, 옆에 있던 그 아이는 내 앞으로 와 차례로 교문을 들어갔다.

그 아이가 나에게로 오니 달콤한 냄새인 듯, 강아지 샴푸 냄새인 듯 한 기분 좋은 향이 후각을 통해 들어와 뇌를 찔렀다. 나는 뒤에서 그 아이를 쳐다보았다. 그 순간 그 아이는 몸을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쳐다봐? 빨리 가자" 그 아이의 하얀 얼굴과 반짝이는 눈망울은 여전히 적응이 안 되게 아름다웠다.

나는 그 아이의 눈을 더 이상 쳐다볼 수 없어 그 아이의 왼쪽 가슴에 있는 명찰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내 짝을 좋아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아이 앞에서는 목소리도 제대로 안 나오고 대답도 횡설수설하고 있다.

그 아이와 눈을 마주치자면 황급히 시선을 돌리는 나였다.


그 아이는 내가 무슨 존재일까.




그 아이와의 묘한 감정을 느낀 것도 잠시, 나는 여전히 내 짝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오늘도 교과서를 사이에 두고 내 짝과 대화가 오갔다.

'오늘 야자 끝나고 학원가?'

'그건 왜?'

'그냥 궁금해서'

'알려줄까? 넌 머리가 좋으니 알려고 하면 알 수 있을 텐데.'

야자가 끝난 뒤 나는 자리를 급하게 정리하고 내 짝이 공부하고 있는 열람실로 뛰어갔다. 이미 열람실에서는 많은 학생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내 짝이 나올까 멀리서 쳐다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나오는 학생이 점차 줄더니 열람실의 불은 꺼졌다. 나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교문을 향해 걸어갔다.

"왜 이렇게 늦게 와? 가자" 내 짝은 나를 향해 웃어 보이며 말했다.

"어? 너 학원 때문에 먼저 간 거 아니야?" 나는 놀란 마음으로 대답했다. 그 아이는 가늘게 눈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며 걸어갔다. 별 말없이 한참을 걸어갔을까, 내 짝은 나에게 먼저 말을 꺼냈다.

"나 이번 달부터 학원 안다녀"

"어? 왜?"

"그냥..." 내 짝은 목소리에 힘이 없이 나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앞으로 야자 끝나고 집에 같이 가자" 내 짝의 얼굴이 빨개졌다.

숨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잠깐 멈추었다.

여름방학까지 얼마 안 남았지만 그날부터 내 짝과 함께 집으로 같이 귀가하기 시작했다.


"너네 집은 여기서 어디야?" 나는 내 짝에게 물었다.

"근데 우리 집이 어딘지 왜 그렇게 알고 싶은 거야?" 내 짝은 눈은 웃으며 괜히 입술을 삐죽이며 물었다.

"너네 집이 어딘지 알면, 주말에나 저녁에나 강아지 산책시킬 때 근처로 가도 되고, 심심할 때 갈만한 곳도 한 군데 더 생기는 거고" 나는 그냥 말했다.

"맞다 너 공부 하기 시작하니까 성적 금방 오르더라, 진짜 대단한 거 같아!" 내 짝은 나를 쳐다보며 감탄스럽다는 투로 말하며 대답을 돌렸다.

"너는 머리가 좋으니까 이과로 가면 되겠다." 내 짝은 갑작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이과?" 나는 아직 생각도 못해본 주제였다.

"응 너는 수학도 잘하고, 과학도 곧 잘하게 되었으니 문과로 가기엔 아깝잖아" 내 짝은 웃으며 말했다.


맙소사, 이런 오해가 있었다니. 내 과학 실력은 그 아이와 함께 공부하며 모두 그 아이가 올려준 점수였으니. 수학은 네가 나에게 매일 같이 질문하는 덕에 나도 미리 미친 듯이 참고서를 풀어본단 말이다. 그런데 내 짝은 이런 사실을 알리가 없었다.

"우리 집 거의 다 왔어. 여기서 헤어지자." 내 짝은 걸음을 멈추었다.

"너네 집까지 데려다주면 안 돼?

"안돼." 내 짝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내일 보자" 나는 집 방향으로 몸을 틀며 내 짝에게 인사를 했다. 내 짝도 나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나는 내 짝과 몇 번의 이런 하교 시간을 가졌다.

더 편해진 우리는 조금 더 먼길을 돌아 집으로 가곤 했으며, 한적한 길을 골라 걸었다. 그리고 내 짝의 어깨는 점점 더 내게 가까워졌고, 내 짝의 왼손과 나의 오른손은 걸을 때 마나 살짝 닿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내 심장이 더 빠르게 뛰었던가, 그건 잘 모르겠다. 나는 이미 영혼이 가출한 상태였으니.

내 짝의 손까지, 우리 사이에는 딱 큰 숨 하나의 거리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끝내 손을 내밀어 내 짝의 손을 잡을 용기를 내지 못했다.

우리는 이렇게 손이 가까이 있다는 걸 모른 척하며, 친구들 이야기, 재밌었던 일들, 중학생 때 이야기, 입시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떠들었다.


매일 아침 나는 다짐했다. 오늘 하굣길에는 반드시 내 짝의 손을 잡으리라. 하지만 막상 그 순간이 다가오면, 번번이 머릿속이 하얗게 바뀌며 전원이 꺼져버려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끝내 손은 잡지 못한 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일 주중 오후 업로드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 이전화(7화) 다시 보기!

- 첫 화(프롤로그) 다시 보기!

이전 08화나를 좋아해 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