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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여름방학은 다음 주로 다가왔다. 그 당시 일반적인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의 여름방학은 그저 학업의 연장선이었다. 한국의 RPG 온라인 게임을 해봤으면 알 것이다. 여기에는 점핑권이라던지 성장 패스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 유료 재화가 있다. 이것을 사용하면 기존 1년을 투자해야 도달할 수 있는 성장을 1 달이면 도달할 수 있다. 고등학생의 여름방학은 이와 동일했다. 이 기간을 통해 어마어마하게 빠르게 학업 성장을 할 수 있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이 시기가 나를 대학으로 보내준 가장 큰 터닝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 짝과 짝이 된 지 3주가 다 되어 간다. 이 3주라는 사이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기말고사를 한 번 더 보았고 그 덕에 나는 영어 C반에서 영어 B반으로 올라오는 쾌거를 거두었다. 그리고 내 짝은 매일같이 수학 문제를 물어보는 통에 더욱 가깝게 지냈다. 더군다나 내 짝의 집은 우리 집 바로 앞이었으니, 야자를 끝나고 매번 집에 같이 가곤 했다.
여름방학에 점점 가까워지니 수업보다는 자율학습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여름방학 가기 전 마지막으로 전국 시험이 한번 남았기에, 나는 그 아이와 그랬던 것처럼 내 짝과도 참고서를 책상에 펼쳐두고 함께 공부했다. 그 아이와 내 짝은 공부 잘하는 우등생 치고 남을 깔보지 않았다. 그 덕에 나는 '우등생'이라는 세 글자에 따뜻한 경의를 품으며 공부에 흥미를 붙일 수 있었다.
내가 하루 종일 안타리아의 평화를 지키려 긍긍대고 있을 때, 그들은 자신의 청춘을 후회 없이 교과서와 참고서에 쏟아부었을 것이다. 각자가 들고 있는 패가 다르니, 그에 따라 거둬들일 수 있는 결과물도 당연히 다를 수밖에. 이런 게 바로 노력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전국 시험의 압박 아래, 공부 분위기는 점점 가열되었고 자율학습 시간에는 연필 소리 외에는 들리지 않았다. 야자시간에는 그 아이와 내 짝은 열람실에서 공부하여 같이 공부를 할 수 없었지만, 수업시간 때 주어지는 자율학습 시간에는 옆에서 같이 공부할 수 있었다. 나는 수학 참고서를 가운데 두고 내 짝과 글씨로 대화를 나누었다.
'너는 나중에 뭐 하고 싶어?'
'나는 아직 내가 뭐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 일단 대학을 가는 게 목표야. 너는?'
'나는 글을 쓰고 싶어.'
'그럼 대학교는?'
'대학교는 어떤 곳이던 상관없어. 하지만 내가 글 쓰는 것에 대해 무시 안 받으려면 좋은 곳은 가야겠지'
'너는 성적이 좋으니 문제없을 거야.'
'고마워 네가 수학 점수를 나눠준 덕분이야.'
'나중에 글을 쓰면 내 이야기도 하나 써줘.'
내 짝과 다정하게 지내는 동안, 그 아이는 새로운 짝과의 우정도 더욱 깊어졌다. 자율학습 시간에 그 아이를 보고 있자면 거기도 쪽지가 오고 갔고, 그 장면을 보노라면 심장이 아래로 무겁게 내려앉는 기분이다. 그런 생각에 잠길 쯤에 내 짝은 나에게 항상 말을 건네 이런 기분을 깨 준다. 내 짝은 웃을 때 눈이 완전히 가늘어지는데, 가는 그 모습에 단단히 사로잡히고 말았다.
사람이 너무 큰 욕심을 부러면 안 되는 것을 알지만, 나의 가슴속에는 알 수 없는 먹먹함이 올라오고 있었다.
전국 모의고사가 끝나고 성적이 나왔다. 전국 모의고사는 수능 형식으로 치러지는 시험인데, 학교 시험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이었다. 전범위에 걸쳐 문제가 출제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시험 성적이 많이 올라왔네. 축하한다. 전교 155등이야." 담임선생님이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나는 수줍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대답으로 했다.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너무 높이 평가하여 자만하면 안 된다. 그건 '노력'하는 사람이 누려야 할 영광을 빼앗는 셈이다. 내 청춘에서 만난 두 여학생이 바로 이 점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계속 노력을 한다면 믿기 힘든 놀라운 세상을 맞이하게 된다. 그것이 추후 나의 3학년 성적이었으니.
성적표를 받고 자리로 돌아왔다.
"수학은 다 맞았고 이제는 다른 과목도 꽤나 하네" 내 짝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아니야..." 그 아이 앞에서만 작아졌던 나는 내 짝의 칭찬에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
너로 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