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좋아해 줘서 고마워

6

by 그릉


그해 여름은 유난히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한 번은 엄청난 태풍이 왔는데, 항상 태풍의 이야기는 남 이야기 같게 들렸지만, 살면서 처음 진짜 태풍을 보았다.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자면, 잔뜩 몸을 웅크리고 안간힘으로 비를 막아보려 애써도 소용없었다. 그러다 보니 우산을 접고 포기하고 빗속을 뛰어가는 사람도 보였고, 끝까지 머리만은 지키겠다는 의지로 이미 기능을 잃은 우산을 부여잡고 걸어가는 사람도 보였다. 나는 가끔 운 좋게 아빠가 가는 길에 학교 정문에 데려다주는데, 오늘이 마침 그랬다.

"쿵" 커다란 가로수가 도로로 쓰러졌다.

마침 사거리 맨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던 차 안에서, 눈으로 커다란 가로수가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다행히 신호 대기하는 덕분에 그 나무에 피해를 본 사람은 없었다. 덕분에 10분 만에 갈 등교는 50분이 걸려서야 도착했다. 지각을 피하진 못했지만 나는 뽀송한 내 상태에 만족하며 선생님의 잔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짝을 만나게 되었다.

"너 수학 참 잘하는구나?" 내 짝이 처음으로 나에게 건넨 말이었다. 나의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문장에다 찬란한 미소까지 더해서.

"그냥 보통이지 뭐. 너야 말로 열람실에 들어가는 우등생이면서." 나는 책상 위에 펼쳐진 모의고사 시험지를 쳐다보며 말했다.

나의 모의고사 수학 점수는 96점이었다. 내 짝의 성적표는 92점으로 찍혀있었다. 나는 문득 그 아이의 성적이 궁금하여 그 아이 쪽을 쳐다보았다. 그 아이의 작은 체구가 눈에 들어왔지만, 손에 들려있는 성적표는 보이지 않았다. 점심시간에 같이 밥 먹으며 물어봐야겠다 생각하며 다시 시선은 내 책상으로 돌아왔다.

수학 성적은 높았지만 아무 의미 없었다. 공부를 시작한 지 이제 한 달이 된 나는 전교 등수가 사백 등에서 단숨에 백몇 등까지 뛰어올랐지만, 그 아이와 내 짝과의 등수에 비하면 나는 초라한 점수였다. 내 눈에는 둘 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책벌레 우등생들이었다.

"너 이 문제 맞혔네! 이거 혹시 풀이 과정 한 번만 보여줄래?" 내 짝은 내 책상에 시험지를 올려두고 펜을 쥐어주었다. 나는 내 짝의 이런 행동에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농담하지 마~ 나는 운 좋게 내가 아는 것만 시험에 나온 거라고" 나는 혹시나 내가 운 좋게 맞았을까 봐 피했다.

"그건 아니지" 내 짝은 웃으며 다시 내게 펜을 쥐어주며 반짝거리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나는 긴가민가 하며 다시 내가 풀어본 방식으로 그 문제를 풀었다. 옆에서 시선이 느껴지는 것이 느껴지니 더욱 긴장이 되어 다시 풀어보는데 애먹었다. 그렇게 문제를 풀고 있자니, 내 짝은 감탄하는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말해서, 우등생인 아이가 나한테 그런 표정을 지어 보이는 것이 으쓱하기보다는 어리둥절했다. 나는 다시 그 아이의 자리를 쳐다보았다. 그 아이는 금세 새로운 짝과 친해진 듯, 나와 늘어놓았던 수다를 다른 사람과 들어 놓고 있었다.


"맞다 너 여름방학 보충 수업 뭐 들을 거야?" 내 짝의 말에 내 상념의 끊겼다.

"아직 고민 안 해봤는데. 너는?"

"나도 아직. 그건 아니고, 우리 둘이 같은 수업 듣고 다른 참고서를 사면 나중에 바꿔서 보면 어떨까 해서. 그럼 문제도 더 많이 풀어보고 좋이 않을까 싶은데, 어때?" 내 짝은 망설임 없이 말했다.

나는 흠칫했다.

나는 내 짝이 나에게 왜 이러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같은 반에서 공부하는 동안 나의 말썽을 봐왔을 것이고, 짝이 되기 전까지 나눈 대화가 고작 열 마디가 안될 텐데. 참고서를 바꿔서 보자고?

그러나 내 짝은 진지했다.

나는 수학은 잘했다. 하지만 다음 학기의 수학은 온갖 도형이 나오는 단원이다. 나는 당시 도형에 있어 이해도가 매우 낮았으며 다음 학기 수학 시험을 치면 분명 성적은 낮아질 게 분명했다. 그리고 내 짝은 분명 수학을 잘하는 나와 수학 수업을 같이 듣고 싶어 하여 물어본 것이다.

하지만 내 짝은 이걸 모를 테니.

"어, 너는 이 문제도 맞혔네. 나 푸는 것좀 알려주라." 내 짝은 다시 나의 시험지를 보며 자신이 모르는 문제를 물어봤다.

"이거 교과서에 있는 거야. 네가 찾아서 풀어봐." 나는 이 말을 하면서 걱정이 앞섰다.

"그거 보고 이해가 되었으면 왜 너한테 물어보겠어? 가르쳐 주기 싫어?" 역시나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부담되는 마음으로 나보다 성적이 훨씬 좋은 내 짝에게 문제를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내 짝과 한참을 문제 푸는 중에 나는 느꼈다. 내 짝은 그 아이와 다른 우등생의 부류라는 것을.


그 아이는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 알고, 그에 맞게 공부해서 성적을 올리는 부류라면, 내 짝은 그저 '열심히 한다'는 게 가장 가까웠다. 내 짝은 별다른 학습법이 없이 그저 어리석을 정도로 교과서를 들여다 보고 참고서 문제를 풀었다.

그 아이는 나에게 있어 막연히 머나먼 우등생이라고 느꼈다면, 내 짝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우등생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내 짝의 질문이 다 끝났을 무렵 나는 말했다.



"이번 여름방학 보충 수업 같이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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