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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리아의 멸망을 막으려 충혈된 눈으로 새벽까지 싸웠던 탓일까. 감 긴 눈으로 달짝한 설탕에 절여진 토스트를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한 손에 들고 온 바나나 우유를 책상에 툭 올려두고 그대로 머리를 책상에 대고 눈을 감았다. 여름이었지만 창가에서는 꽤나 시원한 아침 공기가 들어왔고, 내 잠을 방해하려는 듯한 눈부신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눈을 감고 있어도 정말 눈앞이 밝게 느껴질 만큼.
"어제 야자 왜 안 했어?" 햇빛을 피해 어떻게든 자리를 잡아보려는 나의 어깨너머에서 쌀쌀맞은 듯한 어투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몸을 일으켜 목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몸을 돌렸다. 나의 시선 끝에는 그 아이의 눈망울이 닿았다.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 때문인지 더욱 빛나고 있었다.
"그게 말이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나는 대답했다.
"집에 가서 따로 공부하는 것 같지는 않고" 그 아이의 말투에는 핀잔의 기색은 없었다. 대신 묘한 성숙감이 그 분위기를 감싸고 있었다.
"각자 나름대로 방식이 있는 거 아닐까나...?" 나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대답이랍시고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시간을 그렇게 쓰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 텐데" 그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이 상황이 나는 정말 짜증 났다. 차라리 나 때문에 공부에 집중이 안된다던지 방해가 된다던지 했으면, 언제나 그랬듯 대답을 했을 텐데. 나는 원래 이런 상황은 매일 마주치는 상황이니.
'뭔 상관이야? 공부 잘하면 다야?'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그 아이의 또렷한 눈망울을 마주하고 있자니 벙어리처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오늘은 담임선생님이 너 야자 꼭 하고 가래" 이 말을 끝으로 나는 어깨에 잔뜩 들어갔던 힘을 빼고 정상적인 호흡을 할 수 있었다.
"..."
그 아이는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 했던 것일까. 단순히 담임선생님이 야자를 하고 가라는 말을 전달해 주려고 했던 것 일까. 아니다. '내가 느끼기엔 너는 스스로 뭘 할지 모르는 말썽쟁이야'라고 말하는 듯한 성숙함이, 그 아이가 내뿜는 특유의 여학생이 갖춘 교양에 나는 완전히 짓눌렸다.
철저하게.
저녁 8시 야자시간이 중간을 지났을 시점이다. 계속 앉아 공부를 하고 있자니 좀이 쑤셔 가만히 있지를 못하겠다. 나의 타짜 친구는 뭐하나 고개를 들어 살펴봤다. 역시나 두꺼운 국사책을 베개 삼아 실컷 잠을 자는 중이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야자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세 가지 부류로 나뉜다.
첫 째, 전교 1등이라도 할 기세로 한 손에 있는 펜이 쉬지 않고 공부하는 우등생.
둘째, 6시부터 시작해서 10시까지 숙면을 취하는 워라벨 유형.
마지막으로 나처럼 공부도 안 하고 잠도 안 자고 이 시간을 고통스럽게 보내고 있는 유형.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시선은 그 아이로 향했다. 혹여나 눈이 마주칠까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괜한 나의 걱정이었다. 그 아이는 한 손에 펜을 쥐고 잠과 싸우는 중이었다. 고개가 위아래로 격력 하게 움직이고 있으며 작은 몸은 그걸 따라 들썩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을 참느라 정말 애썼다.
'시간을 그렇게 쓴다더니 뭐라니' 나는 그 아이의 그 말을 되새기며 기분 좋게 야자를 보냈다.
그 아이와의 대화는 이렇게 시작이 되었다. 그 아이는 확실히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재주가 있다. 사람을 무시하는 말투의, 질리게 하는 우등생 특유의 거들먹거림이 전혀 없었고, 자기가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 것 같다. 그 아이와의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고 있자면, 처음에 느낀 자격지심은 나의 괜한 생각이었다.
도무지 그 아이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나는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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