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중간고사가 어느덧 2주 앞으로 왔다. 나는 다른 과목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수학 문제를 푸는 것에는 꽤나 흥미가 있었다. 1학년 때의 수학 문제는 정말 재미없는 단원만 있었다고 생각했었지만, 2학년 때 배우는 수학 1은 재밌었다. 더군다나 선행으로 배우는 수학 2는 이것이 이과의 꽃이라고 할 정도로 놀라웠다. 이렇게 말하니 약간 괴짜 같게 느끼겠지만, 그 당시 수학에라도 흥미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던가.
요즘 매일 아침마다 그 아이의 수다가 시작된다. 어제 집에서 먹은 간식부터 시작해서 요즘 관심 있는 연예인, 즐겨보고 있는 드라마에 대해 그 아이는 차근차근 이야기를 읊조린다. 내가 조금이라도 집중을 안 한다 싶으면 그 아이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더욱 쏟아낸다. 밤새 안타리아의 평화를 찾고 오는 날이면, 다음날 그 시간이 어찌나 곤욕이던가. 빨개진 눈을 숨길 수 없었으니, 공부하다 밤을 새웠냐고 물어보는 그 아이 앞에서는 어찌 사실대로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잠깐, '뭐? 그 아이가 나에게 공부를 하다가 밤을 새웠냐고 물어봤다고?' 그 아이와의 첫 대화를 돌이켜보자면, '집에 가서 따로 공부는 하는 것 같지는 않고...' 정확히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걸 이해하기 위해서는 2일 전으로 다시 돌아가 봐야 알 수 있다.
"어쩔 거야? 중간고사 다다음주인데, 이제 와서 후회되지?"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 나에게 그 아이는 말을 걸어왔다.
"내가 시험을 못 봐도 네가 열람실 못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다그쳐서 뭐 하자는 거야? 나는 열람실보다 교실에서 더 집중이 잘돼서 그러는 거라고." 말은 이렇게 했지만, 진심은 아니었다.
"근현대사 교과서 내놔봐." 그 아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하게?" 나의 작은 반항의 몸부림은 먹혀들지 않았다.
"그냥 내놓으라니까!"
교과서를 준지 1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그 아이는 다시 교과서를 돌려주었다. 교과서를 열어보니 페이지마다 온통 형광펜이 그어져 있었고, 요점을 정리한 노트를 껴서 같이 주었다.
"형광펜으로만 한 곳만 잘 봐 둬. 그럼 중간고사는 문제없을 거야" 꽤나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매일 자습시간이 끝나면 여기 부분 외운 거 나한테 말해줘 한 개씩"
"어?" 나는 뭐라고 반박할 수 없었다.
"어긴 무슨 어? 야. 다 네가 자초한 일이지" 그 아이는 달력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는 수학은 잘하니 머리가 나쁜 건 아닌 거 같고, 다른 과목들은 엉망이니 공부하는 방법을 모를 뿐인 거야. 너는 네가 머리가 나쁜 거 같아?"
"..." 나는 그 아이의 똑 부러지는 말투와 그 눈망울에 아무 대꾸도 못했다.
"너 머리 나쁘냐니까?" 그 아이의 시선은 똑바로 나를 보며 다시 물었다.
"흥 내가 마음만 먹으면 열람실 그냥 들어가거든" 나는 겨우 대꾸를 하며 허세를 떨었다.
"그럼 증명해봐"
나는 멍하니 그 아이를 마주 바라보았다.
그날의 그 순간에는 복잡한 무언가가 내 가슴을 휘감았다.
"좋아 이번 중간고사 누가 더 성적이 높나 내기하자고."
그 당시 그 남학생은 자신감에 차 있던 것일까 아니면 자격지심이었을까. 그 이후로 나는 내기를 이기려고 자존심은 내려두고 쉬는 시간마다 그 아이와 공부를 했다. 아니 내기를 이기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냥 그 아이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점심시간에도 근현대사와 과학이론이 적힌 종이들을 가득 펼치고 토론을 하며,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중간고사 날까지 매일 아침 그 아이는 내 교과서에 형광펜을 남겼다. 나는 묵묵히 그걸 외웠다. 그리고 매번 쉬는 시간마다 그 아이와 토론하고 질문하고 대답했다.
'공부라는 것이 이렇게 힘든 거였다니.' 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야자시간을 보냈다. 나는 여태 무언가를 위해 노력을 해본 적이 없기에, 노력하는 사람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노력도 안 해본 사람이 노력한 사람을 깎아내린 지난날의 나를 되돌아보며 부끄러웠고 반성했다.
이렇게 중간고사가 끝이 나고 성적표를 받는 날이 왔다.
"떨려?" 그 아이의 시선은 교탁에서 성적표를 주고 있는 담임선생님을 고정한 채 물었다.
"별로."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속으로 무척 떨렸다. 이렇게 노력했는데 점수가 그대로면 내가 머리가 나쁘다는 것을 그 아이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드디어 담임선생님은 내 이름을 호명했고, 나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성적표를 받으러 갔다.
"오호 성적이 꽤나 많이 올랐네. 요즘 공부 좀 하나보다." 담임선생님의 시선은 나의 성적표에 고정된 채 말했다.
나는 천천히 자리로 돌아오면서 내 성적표를 봤다.
'수학 97... 국어 77... 영어 70... 과학 82... 근현대사 80...' 속으로 읽으며 자리에 앉았다.
"어때?" 그 아이는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내 성적표에 얼굴을 가져왔다.
"축하해" 그 아이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내기에서 이긴 내색은 전혀 하지 않았다.
"..."
"나는 이번에 14등을 했어. 아마 열람실을 들어갈 수 있을 거야." 그 아이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자 이번에 우리 반에서 열람실 인원이 7명이 나왔다. 2학년 중에서 제일 많아" 선생님의 목소리는 힘이 잔뜩 실렸다.
"다음 달 전국 모의고사도 열심히 매진하도록!"
나는 나의 앞자리가 2로 바뀐 것에 정말 놀랐다. 빌어먹을. 나는 그 아이의 축하한다는 말이 계속 귀에 맴돌았다. 그리고 내기를 이긴 것에 대한 언급을 하기 않은 것도.
시험이 끝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가 바뀌었다. 나는 속으로 계속 그 아이 옆에 있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내 자리는 그 아이 옆이 아닌 다른 자리였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일 주중 오후 업로드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