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좋아해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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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릉


그렇게 여름방학이 시작되었고 오늘은 고등학생의 여름방학 중 쉴 수 있는 며칠 안 되는 날이었다.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오고, 집에 키우고 있는 강아지가 꿈에서 어딜 그렇게 달려가는지, 허공에다 대고 발을 움직이는 모습이 보일 뿐이다. 침대에 누워서 시끄러운 매미소리를 듣고 있자니 몸이 근질거려 참을 수 없었다. 내 짝은 오늘 무얼 하고 있는지 문득 궁금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보냈다.


'오늘 뭐해? 저녁에 탄천으로 산책 안 갈래?'

문자를 보낸 뒤 답장이 언제 오는지 매분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었다.

'좋아. 이따가 사거리에서 만나' 위잉하는 진동소리가 채 끝나기 전에 나는 문자를 확인했다.


낮까지만 해도 화창했던 날씨가 약속시간이 다가오니 비가 올 것같이 새카맣게 변했다. 나는 비가 온다는 이유로 내 짝과의 만남을 취소하기 싫었다. 괜히 약속이 취소될까 봐 먼저 나가서 기다렸다.


'비 올 거 같은데 우산 있어?' 마침내 짝에게 문자가 왔다.

'아니 나 이미 밖에 나왔는데'

'알겠어 나도 지금 나갈게!'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 걸어오는 내 짝이 보였다. 교복 대신 나풀거리는 화사한 원피스를 입고 온 모습을 보자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안녕, 왜 봤으면서 인사 안 해?" 특유의 눈웃음을 보이며 내게 인사를 했다.

"어... 어 안녕!" 나는 쑥스러워하며 대답을 했다.

"오늘 금방 비 올 거 같은데 우산도 안 가져왔어?"
"어... 그게 아까 전에 서점에 좀 다녀오느냐고 그때는 날씨가 좋았거든"

우리는 그렇게 다시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굵은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짝은 들고 있던 우산을 펴서 나에게 기울여주었다.

나는 내 짝이 들고 있는 우산을 뺏어 든 뒤 내 짝이 비를 맞지 않도록 우산을 기울여 주었다. 그러느라 내 몸 반쪽은 다 젖어서, 빗물이 어깨를 타고 손끝으로 흘렀다.

"저기... 뭐 하나 물어봐도 돼?"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내 짝은 물어봤다.

"물어봐." 나는 비가 맞지 않은 얼굴 쪽을 돌려 짝의 얼굴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왜 손 안 잡는 거야?" 내 짝은 입술을 깨물었다.

움찔했다. 내 머릿속은 이미 혼란을 넘은 혼돈의 카오스였다.


내 짝은 걸음을 멈춰 서서 나를 쳐다보았다. 반드시 내 속마음을 읽어내고야 말겠다는 듯이 가느다란 눈웃음은 없고, 동그란 눈을 하고서 나를 쳐다보았다. 나의 난처한 마음은 알기나 할까.

"그건... 네가 나를 좋아할지 아닐지 모르니까" 나는 당황해서 말을 내뱉고 어쩔 줄 몰라했다.

내 짝은 순간 흠칫하더니 한참을 말없이 다시 빗속을 걷기 시작했다.

원래 가기로 한 탄천은 이미 빗물로 가득 차 산책로는 물로 가득 차서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흙탕물이 계속해서 빗물과 함께 흘러가고 있었다. 계속.

"네가 좋아하는 사람은 그 아이 아니야? 내 짝은 다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 나는 놀랐다.

"전에 내가 뒷자리에 앉아 있을 때, 너희 둘이 항상 붙어서 얘기하고 밥도 먹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 짝은 빗물에 넘친 탄천물을 쳐다보고 있었다. 탄천물은 금방이라도 다리까지 넘쳐 내 짝을 삼켜 달아날 듯 보였다.

"절대 아니야. 나랑 그 아이는 서로 얘기하는 걸 좋아하는 친구 사이일 뿐이야."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때는 그 아이는 너한테 아주 특별해 보였어. 너는 원래 우등생이랑은 잘 섞이지 않으니..." 내 짝은 혼잣말을 하듯 말했다.

"흥, 그 아이는 내게 참고서를 주며 공부를 하더라 하더라고. 세상에 그렇게 얘기하면 알겠습니다 하고 내가 공부를 하는 줄 알고." 나는 괜히 힘을 주어 말했다.

"..." 내 짝은 나를 바라보는 대신 계속하여 다리 밑 탄천을 내려보았다. 덕분에 나와 내 짝의 거리는 조금 멀어졌고 나의 등은 빗물로 가득 차 젖고 있었다.

"어쨌든, 나는 그 아이 좋아하는 거 아니야."

"그럼 좋아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어?" 내 짝은 우산을 타고 떨어지는 빗물을 손을 내밀어 받으며 물었다.

"그 아이는 그냥 내게 공부를 하라고 할 뿐이야." 나는 못을 박았다.


그렇게 되었다.


대화의 주제가 그 아이로 흘러가는 바람에, 나는 내 짝에게 고백할 최적의 시기를 놓쳤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손을 잡을 수 있는 기회도 같이 흘렀다.

굵은 빗방울이 내 얼굴을 타고 흘렀다.



"같이 집에 가자"라는 말은 정말 낭만적인 말이다.

"같이"라는 말은 혼자가 아닌 서로를 의미라고, "집에 가자"라는 말은 여기에 담긴 따스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처음으로 함께 집을 향해 걸은 사람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기억이라는 수단을 사용하여 지금도 눈을 감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그날의 분위기와 온도, 감정까지 또렷하게 느낄 수 있다.

검은 밤하늘 밑으로, 수줍은 내가 내 짝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걷던 장면을, 때론 초승달 밑이었고, 때론 보름달 밑을, 때론 구름이 가득하여 달빛이 우리를 비쳐주지 않았으며, 때론 날씨가 맑아 수많은 별빛 밑을 함께 걸었다.



가로등 밑을 걸으며 가슴속에 격정이 일어나 휘몰아치다 다시 쓸쓸해진다.


내 짝에 대한 기억은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는다. 작은 우산 하나와 오래되어 연필로 쓴 글자가 다 번져 읽기 힘들게 된, 마지막 쪽지 하나만 남아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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