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들아
우리가 이제까지 살면서 가장 먼 곳에 그리고 가장 오랫동안 떨어져 사는구나. 어린 너를 데리고 중국에서 그리고 홍콩으로 10여 년을 함께 다니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살면서 예측할 수 없는 드라마틱한 일들을 많이 겪고 살았구나. 그 당혹스러운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당시는 정신이 쏙 빠질 만큼 절박한 일들도 있었지만 지나간 것이 모두 아련한 추억이 되어 그립게 떠오르는구나. 이제는 너를 떠날 보낼 예행연습을 한다고 생각한다. 언제 가는 너를 우리 곁에서 훌쩍 떠나보낼 날이 올 테니 이번에 제대로 연습해 보련다.
새삼 이런 기회에 아들에게 편지를 쓰게 돼서 한편으론 새롭단다. 아빠 인생에 아들에게 이렇게 매일 많은 편지를 밤낮으로 보낼 시기가 언제 또 있을까. 잠시도 너에 대한 생각을 잊지 않고 떠올려 보는 것은 참 기쁜 일이다. 이따금 너의 손 편지가 아빠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어린 시절부터 아빠 껌딱지로 쉼 없이 종달새처럼 끊임없이 궁금함을 쏟아냈던 네가 사춘기를 지내면서 속 마음을 좀처럼 표현하지 않고 말수를 줄였지. 엄마, 아빠는 처음에 이 변화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아마도 너의 타고난 에너지와 호기심 그리고 자신의 존재가 뚜렷이 부각돼야 스스로 만족하는 너의 승부사 기질이 전혀 새로운 환경과 언어에 적응해 나가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힘들다, 어렵다는 말을 밖으로 내지 않는 너의 성격이 처해진 현실에서 스스로 강인한 생명력으로 뿌리내리려는 우리 아들의 치열한 고뇌의 결과임을 엄마 아빠는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가 선택한 이민 생활이 어찌 편안하고 행복한 쉼터가 될 수 있었겠니. 그런데 너는 우리보다 더 빨리 환경에 적응하고 빛이 났다. 그래서 더욱 우리 아들이 대견하고 또 자랑스러운 것이다.
물론 난 우리 아들의 승전가만을 예찬하진 않는단다. 때론 고약하게 심술부리기도 하고, 입대하기 전 날 술에 취해서 필름이 끊겨 집 앞에 오바이트하고 쓰러져 있는 너를 들러 매고 들어오기도 했다 이따금 골치 아픈 일에 엮여 엄마와 아빠를 곤란케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을 잘 이겨내고 몸도 마음도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네 모습이 사랑스럽고 대견한 것이다.
아빠가 청년의 때 심취했던 헤르만 헷세에 대해서 우리가 긴 시간을 두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헤르만 헤세의 <나르시스와 골드문트>, <크눌프: 삶으로부터의 세 이야기>, <데미안>를 함께 읽었지. 아빠가 헤르만 헤세의 이 작품들을 선택하고 너와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젊음의 고뇌와 방황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겪어 가면서, 몸과 마음이 성숙해지고 타인을 가슴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참다운 지식인이며 감성인으로 성장해 가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자신도 행복해지는 우리 아들의 모습을 발견해 가기를 바랐던 아빠의 심중을 너는 정확히 읽어 냈다.
헤르만 헤세는 누구나 거쳐가는 소년에서 청년의 시기에 자아를 탐구해나가며 그 과정에서 겪는 인간 내면의 갈등과 성장 과정에 주목하고 있다. 각 작품에서 그는 개인이 자신만의 진정성을 추구해 나가면서 사회적 규범과 충돌하며 자신만의 진정한 가치와 길을 찾는 이야기를 그려나가고 있으니, 바로 우리 삶의 이야기가 아니겠니.
우리 아들은 독서광에 스위트한 감수성과 뛰어난 운동 능력, 전공을 권유받을 만큼 피아노와 바이올린에 심취하는 예술적 감성을 모두 갖추고 있으니 우리에게는 과분한 아들을 하나님이 주셨다고 생각한다.
아들아 하나님께서 네게 주신 재능에 늘 감사를 잊지 말거라. 너 하나 잘 먹고살자고 하나님이 네게 여러 재능과 좋은 머리를 주신 것은 아닐 것이다. 아빠는 네가 이 세상에 생겨날 때부터 기도하며 네 이름을 지었단다. 세상에 빛이 되는 사람, 자신에겐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넓은 이해와 긍휼한 마음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으로 살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했단다.
아빠는 우리 아들이 그런 하나님의 사람이 될 꿈을 날마다 꾼단다. 그 꿈을 품고 오늘 하루도 승리하거라.
너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하나님의 사람이니까.
사랑하는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