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들아
벌써 목요일이네. 처음에는 날짜가 너무 안 가더니 훈련소에서 온 네 편지를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시간이 빨리빨리 가는구나. 저녁 먹고 엄마, 아빠가 운동하고 오니 우편함에 반가운 편지가 꽂혀 있었다. 집에 들어와서 겉 봉을 조심스럽게 가위로 자르고는 얼른 읽었다.
아들아, 첫머리부터 네 뒷바라지에 혼신에 힘을 다하는 엄마를 안쓰러워하는구나. 엄마가 너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그림 그리기를 멈춘 것이 늘 미안했구나. 아들아, 주변을 정돈하고 엄마가 다시 그림 그리기를 시작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준비를 해 놓을테니, 너무 염려 말거라.
요즘 우리들의 가장 큰 즐거움은 네 편지를 읽고 너를 생각하며 편지를 쓰는 일이다. 이보다 더 즐거운 기대가 어디 있겠니. 군인과 민간인, 이 구분은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지. 군인이 되는 순간 사고와 행동은 물론 일상의 습관까지 변화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전혀 과자를 먹지 않는 우리 아들이 과자들의 이름을 줄줄이 나열하고, 남은 것은 잘 숨겨 놓았다가 모두가 잠들면 조심스럽게 먹는 다니 믿기지 않는구나. 과일이나 요구르트는 먹을 수 있니? 너도 과자를 먹는다는 것을 알았으니 편안한 마음으로 먹는 것을 즐겨라.
아들아 아빠에게도 30여 년 전 훈련병 시절에, 간식에 얽힌 사연이 있단다. 지금 네가 훈련받을 때 보다 더 척박한 시대였으니 배고픈 훈련병 시절은 더 절박하게 우리를 괴롭혔단다. 그 시절에 우리도 역시 일주일에 한 번 주말에 주는 간식은 가뭄에 단비보다 더 간절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훈련병들은 회식 시간에 남긴 간식을 사물함에 넣었다가 전우와 화장실 뒤에서 먹곤 했다.
그날도 간식을 받아서 맛있게 먹고 잠자리에 누웠다. 아빠 옆에는 수원에서 함께 훈련을 받고 함께 대전 훈련소에 온 동료 두 명이 아빠 양쪽에 누워 있어서 외롭지 않았다. 점호가 끝나고 잠자리에 들고 불을 끈 지 1, 2시간 후에 양쪽 침상 전우들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조심스럽게 과자를 먹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바삭바삭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귀를 기울여 보니, 내무반 사방에서 과자 먹는 소리가 들리더구나. 그 당시에 다이제스티브를 줬는데 단 것을 먹지 못했던 훈련기간 동안에 과자는 더 달콤하고 고소하고 맛있었다. 그렇게 까무룩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내 왼쪽은 인하대를 다니다 온 운동 잘하고 성질 급한 경상도 사나이였는데, 버럭 욕을 하며 사물함에 있던 전투화를 꺼내서 얼굴이 벌겋게 돼서 서 있더구나. 사건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그 친구가 이불속에서 먹다 남은 다이제스티브를 사물함에 있는 군화 속에 집어넣고 위쪽을 양말로 막아 놓고 잤단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서 사물함을 열어보니, 쥐가 군화 뒤축의 가죽을 크게 갉아서 큰 구멍을 내놓고 그 안에 숨겨놓은 과자를 모두 먹어 버렸다. 그런데 이런 일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여기도 저기도 군화가 구멍 났다고 떠들썩했다. 아마도 훈련소에서 배고픈 것은 사람뿐이 아니었나 보다.
민간인에서 군인으로 체질을 바꿔가는 시간이 훈련병 기간이었다는 생각이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에 대해 온몸으로 느끼고 고민했던 시간이었다. 밤새 배가 고파서 허공을 응시하며 꼬르륵 대는 배를 움켜 쥐었고, 훈련을 마치고 식당에 와서는 5분도 못 되는 시간 안에 밥 먹기를 강요당했고, 진흙에서 뒹굴던 몸을 좁은 목욕탕에 떠밀려 들어가서 10분 안에 씻고 나와야 했다. 내 식사 습관과 좋아하는 음식, 내 샤워 습관과 잠자는 시간을 선택하는 자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인간적 한계를 경험했던 구보와 유격훈련 등 다시 돌이켜 보면 끔찍한 시간이었다. 인간의 기본적 욕구마저 충족되지 않던 시간, 어떻게 보면 인권을 유린당한 시간이기도 했다.
지금 아들의 훈련병 풍경은 어떨까? 아빠의 훈련병 그림과는 많이 다르겠지? 시대가 많이 바뀌고 인권의 문제가 진지하게 논의되는 시대이니. 그런대 아들아, 그런 끔찍한 군대를, 왜 아빠는 아들을 강제로 입대시켰을까?
아들아 그 대답은 우리 아들이 훈련병 시절과 자대 배치 후에 어느 정도 군복무를 하고 난 후에 마주 앉아서 얘기하도록 하자. 하지만 아들아, 아빠의 마음속엔 뚜렷한 확신이 있었다. 아빠는 군복무를 하는 동안 국가와 민족에 대한 책임감과 바른 시각이 생겼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무엇보다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나의 본성과 자아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대화하는 시간을 많이 갖었다. 단체 생활의 규율과 질서 그리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전우애도 배우게 됐다. 그리고 여가 시간을 잘 활용해서 독서와 공부를 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제대할 때는 32개월이나 되는 시간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너도 아빠 같은 생각을 가질 것이라는 확신 말이다.
아들아, 엄마 아빠에게 바쁜데 편지 쓰려고 애쓰지 말거라. 편지 쓰는 시간에 편하게 쉬고 에너지 충전하고 있어. 군대 동기들하고 충분히 얘기하고 개인시간을 충분히 누리도록해. 우리는 아들이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충분히 마음이 놓인다. 그냥, 엄마, 아빠가 보내는 편지만 즐겁게 읽어 주면 돼.
그리고 4월 1일 훈련소 면회를 위해 부대 앞에 펜션을 예약했다. 모든 음식은 집에서 엄마가 준비해 갈 거야. 엄마 계획은 김치찌개, 소고기 스테이크, 치킨, 던킨 도너츠, 과일, 탄산수, 아몬드, 밥을 준비해놓고, 브루스타와 고기판을 가져가서 직접 데우고 요리할 거야. 엄마의 정갈하고 맛있는 음식을 기대하도록해. 먹는 것이 삶에 매우 중요한 우리 아들 기대하거라.
이번 주 실전 훈련은 힘들지 않았니? 반짝 추위가 있어서 고생했지? 군장과 뜀걸음은 열외 허가를 받았다고 하던데, 어떤 식으로 했고 너는 그 시간에 뭐 했는지 궁금하구나. 만나면 많은 얘기를 나누도록 하자.
사랑한다, 아들아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