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월 31일 2차 편지-아빠가
사랑하는 아들아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연수를 받고 있다. 연수명은 "수박대가"이다. 뜻이 아리송하지? 수시대박 먹고 대학 간다는 뜻이다. 사교육에 치우친 대학입시 진학 정보를 공교육이 되찾자는 의도에서 뜻있는 고교진학진로교사들이 모임을 결성한 것이 그 출발이다. 그중에서 한 현직 고등학교교사가 전국대학의 수년의 입시정보 주요 자료를 정리한 약 1400페이지 책을 5시간가량 함께 읽어가면서 강의한다. 이정도의 책을 매년 업데이트 집필하고 강의하는 대단한 선생님이다. 강의를 듣기 위해 이 책을 구입한 진로진학 교사들이 서울뿐 아니라 제주도에서도 온다. 일 년에 두 번 개최되는 강연의 인기는 아이돌 그룹을 넘어선다. 참여 신청 웹사이트가 열리면 전쟁터다. 써버가 먹통이 되고 4000명 신청은 1분도 안돼 마감된다. 한국에서 좋은 대학 가는 일은 여전히 전쟁이다.
아빠가 대학 입시를 전쟁이라고 표현한 이유를 너는 선 듯 이해하기 어려울 거야. 초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한국을 떠난 너는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서 알게 된 정보가 전부일테니 실감 나지 않을 거다. 좋은 대학에 자녀를 입학시키기 위한 부모의 경쟁은 눈물겹다. 대입 경쟁이 극심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로 인해 공교육이 황폐화되면서 학생 한 명의 사교육비가 연 1,200만 원을 넘어섰다고 한다. 이것은 소득 상위 10%와 하위 10% 가구 간 8.3배의 교육격차로 이어졌다.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더 좋은 사교육의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지.
교육열이 좀 더 강한 부모들은 여건이 더 좋은 강남으로 이사를 간다. 강남·서초 학군 집값은 2024년 기준 아파트 평균이 30억 원이 넘는다. 전국 평균 대비 400% 이상 차이가 난다. 우리는 이것을 주거불평등이 심화된다고 한다. 전국 청소년의 68%가 수도권으로 모이기 시작하면서 지방에서는 고등학교 34%가 폐교 위기에 놓였고 2045년쯤에는 여러 지역이 소멸될 것이라 했다. 20대 청년층은 제대로 된 직업을 구하기 점점 어려워졌고 평균 1,800만 원의 학자금 대출 부담으로 졸업을 해도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지 못한 채 3040 세대 빈곤화로 직결되었다. 부모 보다 못 사는 세대가 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교육·주거·고용의 삼중고는 합계출산율 0.78명(2024년)이라는 초저출산 현상을 낳았다. 대한민국은 인구절벽에 따른 내수경제 위축까지 직면하게돼서 앞 날이 그리 밝지 않다고 하는구나.
진학진로 강연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어서 우울해있는데 갑자기 핸드폰에서 "1633"이 뜨는 거야 깜짝 놀라 뛰쳐나가서 전화를 받았다. 수신자 부담의 이 전화번호는 군대에서 오는 것, "우리 아들"의 반가운 목소리!, 언젠가부터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숫자가 되었다. 엄마는 전화벨만 울리면 "1633"을 기다린다. 이제나 그제나 우리 아들에게 전화 올까, 기다리다가
"우리 아들이 무릎이 아파서 이따금 훈련에 열외 해서 포상 전화 기회를 놓쳤나?"
하곤 하는데 예상치도 못한 시간에 우리 아들의 정겨운 목소리를 듣다니! 전화기 저편에서 굵고 듬직한 우리 아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반갑고 정겹던지. 평소 낭랑한 네 목소리가 아닌 것 같다고 했더니, 다소 쉰 목소리로 군가를 힘써 부르고 훈련을 받느라 그랬다며 걱정하지 말라는 네 목소리가 더욱 믿음직했다. "포상 전화"를 받으려고 힘 좀 썼다는 네 말에 웃음이 나왔다. 이 시간에 행여 엄마 아빠가 모두 네 전화를 못 받았으면 포상 전화의 기회는 놓친다고 했지? 이 한통의 전화가 네게 얼마나 소중했을까 생각하니 또 짢해졌다.
엄마는 이모네 집에 가있다. 오늘 아빠가 연수가 끝나면 집에 밤 10시쯤 도착할 거라 했더니 오랜만에 이모를 만나겠다고 했다. 이모와 이모부가 11시쯤에 와서 엄마를 태우고 이모집으로 간다고 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 목소리를 들은 오늘은 가슴속이 훈훈해지고 전화를 끊고도 한참 동안 네 웃음과 목소리가 아빠의 가슴에 평안한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가는구나. 하루의 피로가 말끔히 사라지는구나. 우리 아들은 아빠에게 그런 존대란다.
보고 싶구나. 4월 11일을 간절히 기다린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아들의 마음 가득히 차고 넘치는 나날이 되기 바란다.
아들아.
사랑하는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