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월 01일-아빠가
사랑하는 아들아
꽃샘바람이 제법 사납게 창틀을 흔든다. 그래도 소용없을 거야. 어제 교정에 연분홍 수채화빛 진달래가 활짝 피었고, 노란 산수유도 봄 햇살아래 환하게 피었다. 봄이 오고 시간은 가듯 곧 우리 아들의 수료식이 다가오고 있다.
참으로 보고 싶구나 우리 아들, 이런 밤이면 지적 목마름과 미래에 대한 소망과 열정이 가득한 우리 아들은 어떤 책을 읽을까? 이 시는 어떨까?
봄밤 /김수영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봄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 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이여
김수영의 시에는 여전히 어떤 힘과 생기가 느껴진다. 그의 시는 보편적으로 현대물질문명과 군사정권의 억압 속에서의 지식인의 내적 갈등, 전후세대의 정신적 방황에 대한 김수영 특유의 “반역의 정신”을 밖으로 발산한다. 이 시 <봄밤>은 자신의 내면을 구축하는 일도 함께 수행했던 것 같다. 이 시에서 김수영은 자신의 내면을 다지면서 근대성의 소용돌이 안으로 휘말리지 않겠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다섯 번 등장하는 “서둘지 말라”는 근대의 보폭에 절대 맞추지 않을 것을 다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시에서 우리는 어떤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을까? 어떻게 보면 문학은 미래의 불확실성에서 자유하는 최후의 방주이자 시간을 초월하는 생존 매뉴얼일 수 있다. 김수영은 "서둘지 말라"는 말을 통해 무한 경쟁의 시대에서 한 발짝 벗어나 "삶의 리듬"을 유지하길 호소하는 것은 아닐까? 계절이 꽃을 피우고 꽃잎을 떨어뜨리고 열매를 맺어가듯이 20대의 좌절은 30대의 열매를 맺기 위한 휴지기가 아닐까?
뉴미디어 시대, 디지털 유목민 세대에게 시적 상상력은 감정의 백업 시스템, 회복 탄력성의 기능이다. 우리 인간도 어쩌면 '땅속 벌레'처럼 정신적으로는 유기체적 성장 과정을 겪는 것일지도 모른다. 알에서 깨어나 애벌레가 되었다가 번데기 과정을 거쳐 성충이 되는 눈부신 사슴벌레나 나비가 그렇듯이.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미래의 삶은 어쩌면 시적 은유로 무장해야 할 수도 있다. '강물 위 불빛'처럼 흔들리되 꺼지지 않는 내적 불씨를 견고하게 간직할 때 급변하는 시대 조류에서 생존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수영이 봄을 재앙이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 시대의 모든 변화는 상처를 수반한다. 결국 이 시대에 흔들리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디지털 문명인이 아니라 문학적 각성인이 아닐까? 문학적 각성과 감성을 잃지 않는 사람만이 시대의 인간성을 지키는 방파제라 생각한다.
아빠는 현실을 치열하게 사는 너를 생각한다. 모든 일에 열정을 다하면서도 책을 사랑하는 너는 틈나는 대로 소설을 써서 이미 몇 편의 습작 소설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안도한다. 위에서 말했듯이 문학적 각성과 감성을 잃지 않는 사람만이 이 시대의 인간성을 지키는 그루터기가 될 것이다.
토요일 11시 40분이다. 주일이 20분 남았다. 홍콩에서, 하나님이 우리 가족을 특별히 사랑하셔서 토요일 이 시간이면 우리 가족이 교회에 모여서 기쁨과 감사로 주일 예배를 준비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립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아빠는 작은 규모의 교회 본당 마루에서 맨발로 엄마의 꽃꽂이 준비를 위해 본당의 의자를 모두 접어서 한쪽 벽에 세워놓는다. 두 아름 남짓되는 꽃을 정리해서 엄마 앞에 가지런히 꽃의 종류대로 펼쳐 놓으면, 엄마도 맨발로 꽃꽂이에 전념한다. 이즈음 이면 우리 아들이 공부하다가 친구와 함께 농구를 하고 나서 본당에 쑥 들어온다. 그리고 피아노 앞에 앉아 주일 찬양 준비를 한다.
아빠는 그 시간이 아빠의 일생에 가장 행복한 추억이다. 너는 한 30여분 기타와 피아노로 워밍업을 하다가 헌금 특송 찬양 바이올린 연주를 준비한다. 온 가족이 주일이 시작되는 첫 시간을 예배로 섬기는 레위인처럼 감사로 온 마음을 다한다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그래서 이 시간이면 그 모든 추억들이 떠올라 마음속이 훈훈해지고 때로는 가슴 뭉클해지기도 한다.
그 시간이 그립구나.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을 향해 기쁨으로 찬양드리고 섬길 기회를 또 주시겠지? 하나님 안에서 멋지게 성장한 우리 아들을 하나님께서 기대하고 쓰시리라 믿는다.
아들아 하나님의 은혜가 네 마음 가득히 차고 넘치는 주일이 되기 바란다.
사랑하는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