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월 02일- 아빠가
사랑하는 아들아
드디어 카운트 다운 9일이 남았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진눈깨비 내리던 영하의 날씨에 네가 논산 훈련소에 입소할 때는 이 훈련이 끝날 날이 올까 앞이 캄캄했지? 거꾸로 매달아 놓아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는 남자들의 속설이 이제 이해 갈 거야. 수료식 날이 눈앞에 성큼성큼 다가오는구나. 참으로 수고 많았다. 곧 구릿빛으로 태닝 된 탄탄한 근육의 늠름한 사나이를 볼 수 있겠구나.
아빠는 무엇보다 네가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기쁘다. 하루 훈련을 마치고 석양 무렵에 부대원들과 연병장 앞을 지나칠 때 국기 하강식 얘기는 가슴이 뭉클했다. 30여 년 전 아빠가 느꼈던 그 마음이었다. 국기 하강식을 할 때 듣는 애국가에 코끝이 찡하고 가슴이 먹먹했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 감동을 너도 느꼈다니! 하강식 후에 군가를 부르며 행진을 할 때는 가슴속이 뜨거워졌다는 네 말에 공감하면서 아빠의 모든 걱정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너와 군입대 문제를 두고 살얼음판을 걸었던 몇 개월 전의 시간을 떠올려 본다. 군대를 가지 않겠다던 너의 논리에는 모순이 없었다. 조국애와 국민의 의무, 사회적 평등의 실천 등을 주장하던 아빠의 논리가 오히려 모순 투성이란 것을 안다. 첫째는 강제성의 모순이다. 군복무를 하는 당사자인 너에게 조국애와 국민의 의무를 강요했다. 둘째는 평등의 허구다. 병역의 의무는 평등해 보이지만 실재로는 다양한 이유로 차별이 존재하고 회피 또는 교묘한 방법으로 선택의 자유를 갖기도 한다. 사지 멀쩡한데 군대 안 가는 놈이 많다는 것이다. 아빠의 만행은 무엇보다 개인 권리를 무시한 것이었다. 국민의 의무를 앞세워 개인의 양심과 신념을 배제한 아빠의 만행-자원입대에 표시해서 너를 입대시킨-은 자유민주주의의 원칙에 위배된 것이었다.
하지만 너의 군입대를 끝까지 강행한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신념에서 비롯된다. 사회와 완전히 단절된 공간에서 네 내면과 단독자로 만나는 시간이 필요하단 의도였다. 너의 내면 자아와 만나고 너를 만드신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하기를 원했다. 돌아보면 아빠에게 군복무 시간은 나머지 인생을 흔들림 없이 강건하게 살아가고 하나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계기가 되었다. 인생에서 이 두 가지면 족했다. 그래서 너도 이 경험을 하길 바랐다.
군생활 기간은 매슬로의 욕구 단계이론을 끌어 오지 않아도 인간이 지닌 가장 기본적인 욕구의 모든 단계를 경험한다. 그래서 내가 어떤 인간으로 살아갈지, 망가지거나 성숙시킬 수 있는 선택이 내게 달린 시간이었다. 생리적인 욕구-안전 욕구-소속감과 사랑의 욕구-존중 욕구-자아실현의 욕구를 모두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었다. 인간은 하위 욕구가 충족되어야 상위 욕구가 활성화된다는 이론이 실감 났다. 그의 이론이 물론 현대적 관점에서 비판의 요소가 있지만 여전히 인간 동기 이해의 핵심적인 도구가 된다고 생각한다. 아빠는 네가 이 시간을 치열하게 고뇌하고 네 인생을 돌아보기를 소망했다. 네가 입대를 앞둔 날부터 훈련을 시작한 매일매일을 아빠는 네게 사죄하는 마음을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너무 감사한 것은 네가 이 모든 기간을 씩씩하고 지혜롭게 이수했다는 것이다. 훈련의 모든 시간에 의미를 두고 몸의 상태에 따라 지혜롭게 훈련을 잘 받았고 자신의 내면을 조용히 돌아볼 시간을 많이 갖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훈련소에서 나눠준 파란색 기도온 성경이 두배로 부풀만큼 열심히 읽었다고도 했다.
홍콩배우 곽부성 스타일의 매력이 있는 우리 아들의 군복 핏은 어떨까? 훈련병 기념사진을 보았다. 옷이 커서 그런지 몸이 더 커지고 좀 촌스러워 보이기는 하지만 건강하고 자신감 넘쳐 보여서 좋았다. 교복, 유니폼을 유독 싫어하는 네가 군복을 입은 모습이 새롭구나. 5주간의 훈련으로 군복이 너의 신체의 일부처럼 착 달라붙겠지? 군복도 나름의 패션이 있단다. 자대에 배치되면 선임들이 다림질하는 법, 줄을 세우는 법과 옷 입는 법을 가르쳐 줄 거다. 아들아 군복도 핏이 제법 사는 옷이란다. 탄탄한 가슴 근육과 딱 벌어진 어깨가 있으면 군복은 제대로 폼이 난다. 그래서 수료식 때 우리 아들의 군복 입은 모습이 기대된다. 퍽 보기 좋을 것 같구나.
네가 영어 어학병으로 입대하는데 관심과 도움을 준 성훈이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금 한미 연합사에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수료식 날에 배속 부대를 발표한다고 하더구나. 네가 자기가 근무하는 연합사로 오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너에게도 얘기한 적이 있는 파병 얘기도 했다. 본인이 다녀와 보니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한다. 영어 통역병 사이에서도 파병 경쟁이 비교적 심하다고 한다.영어는 기본이고 제2외국어와 해외거주 5년 이상의 조건이 너와 맞는다고 했다. 빈자리로 봐서 자신이 다녀온 레바논 동명부대가 합격 가능성이 높단다. 하지만 이것은 나중에 천천히 얘기하도록 하자. 성훈이가 적극적으로 권유했지만 아빠는 그다지 마음이 가지는 않는다.
다시 연락할 때까지 건강하게 행복하게 잘 지내거라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