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월 01일- 아빠가
사랑하는 아들아
주일 아침 6시 30분이다. 교회 갈 준비로 분주한 시간이다. 베란다에 까치가 유난히 반갑게 노래하길래 다가갔더니 두 마리 까치가 울다가 훌쩍 날아갔다. 반가운 소식이 오려나? 아침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속설이 있다. 오늘 우리 아들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올까? 하는 가벼운 기대로 아침이 즐거워진다. 신앙인을 자처하는 아빠가 근거 없는 속설에 기댄다는 네 핀잔 소리가 들리는 듯하구나. 까치는 영리해서 낯선 사람이나 동물이 오면 경계를 한다고 한다. 그래서 까치가 운다는 건 낯선 사람이 온다는 경험에서 비롯된 속담이라는 설이 있다.
성경은 특정한 자연물을 통해 구체적 메시지를 언급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연물을 통해 하나님의 메시지를 깨닫게 해주는 수단으로 사용된 예를 도처에서 찾을 수 있다. 기드온의 양털 테스트가 한 예이다. 하나님이 기드온을 이스라엘을 전쟁의 위기에서 구할 자로 부르셨다. 의심 많은 기드온이 출정 목전에서 하나님에게 양털 테스트를 제안한다.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두르고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이튿날 기드온이 일찍이 일어나서 양털을 가져다가 그 양털에서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했다.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묻는다.
"원하건대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그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셔서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젖었다.
하나님은 이 테스트를 통해서 자신이 택한 백성에게 하나님의 존재와 돌보심을 끝까지 보여 주셨다. 하나님의 계획이 이뤄지도록 우리를 설득하고 이해시키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진다.
오늘 주일 예배 잘 드렸니? 예배를 드리고 나서 마음에 남는 여운이 있었니? 아빠도 군생활동안 특히 야간 보초를 설 때면 칠흑 같은 어둠 속 고요한 망루에 홀로 네다섯 시간 동안 초병을 섰다. 그때면 내면의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이제 어느 정도 나이가 드니 세상을 향했던 눈이 다시 내면을 향하게 되고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았나?'를 이따금 스스로 묻곤 한다. 자아의 본질에 대한 문제일 수도 있고 자아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세상과의 관계에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반성일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된다.
성경에서는 우리의 이런 고민에 대해서 "율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천국 백성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은 법률 문자 하나로 행위 결과로 판단하지만 예수님은 그 마음으로 기준을 삼는다."라고 말한다. 우리 자신을 판단하는 질문을 해보자. "스스로 평가하기에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한다면, 성경에서는 아직 은혜를 덜 받은 사람이라고 한다.
사도 바울은 평생을 주를 위해 헌신하고, 순교하기 전에는 "내가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가득한 삶을 사는 사람은 예수님 앞에 자신의 부끄러움이 드러나는 것이다. 우리는 이따금 타인을 비난하고 꾸짖을 때가 있다. 이것은 부모가 자식을 꾸짖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예수님도 그러했듯이,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예수님의 마음이다. 예수 믿는 우리가 불가피하게 타인에게 불편한 얘기를 하게 될 때는 이런 사랑의 마음으로 권면해야 한다. 그런 마음이 없으면 입을 닫고 기도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천국 백성의 삶을 살아야 한다.
사랑하는 아들아, 똑똑하고 또 판단력이 뛰어난 우리 아들의 눈에는 세상에 부조리한 것들이 눈에 많이 들어올 거다.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 될 때에는 마음에 분노가 생길 것이다. 그때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고 잠시 멈춰 서렴. 권면과 비판을 할 때에도 사랑의 마음을 담아서 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고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는다. 아빠도 늘 이 생각을 돌이켜 잊지 않으려 한다.
일기예보를 보니 오늘의 휴식이 지나면 이 편지를 받는 월요일은 반짝 추위로 고생하겠구나.
사랑하는 아들아 네 마음에 언제나 동행하시는 하나님께 늘 도우심을 구하거라.
사랑하는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