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들아
오늘은 야간 자율학습 감독이다. 저녁 7시 40분이다. 방과 후 자율학습을 신청한 학생들이 매일 남아서 개인 계획에 따라 공부하는 것이다. 70여 명이 남아서 공부하다가 5시에 학교에서 저녁을 먹고 지금은 30여 명 남아서 자기 계획대로 뭔가 열심히들 하고 있다. 저녁 9시까지 학생들과 함께 있다. 지금 네게 편지를 쓸 수 있어서 좋구나. 밖은 어둠 속에 잠겼다. 학생들의 책장 넘기는 소리와 길게 한숨 쉬는 소리만이 텅빈 공간에 울린다.
지난번 파병에 대해 네가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해서 K에게 연락했더니 흔쾌히 자료를 보내 주었다. 보내 준 K군의 메시지를 아래에 붙여 줄 테니 참고하렴. 카톡을 하면서 아빠가 선 듯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은 IS 때문이다. 레바논 동명부대는 파견부대로 가장 오래돼서 시설도 최고 수준이고 연합군 분위기도 최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중동 지역에 있고 시리아도 멀지 않단다. IS의 직접 위협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 K군이 보내준 정보를 옮겨 놓을 테니 궁금한 것이 있으면 또 연락하렴.
00이 아버님 K입니다.
아마 00 이는 레바논이나 UAE 두 군데만 지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남수단은 진교대 시기가 00이 전역일자에 비해 너무 늦게 나와서 힘들 것 같습니다. UAE는 특전사 부대라 낙하산 공수 훈련도 하고 월급도 약하고 그래서 비추천입니다. 뽑는 인원동 2명밖에 안되고요. 레바논은 IS 때문에 위험하기는 한데, 파병 수당도 가장 높고, 파병한 지 9년 정도 돼서 시설도 가장 좋습니다.
7명 정도 뽑는데 영어랑 제2 외국어, 출입국증명서 및 기타 자격증 제출하면 00 이가 붙을 확률이 높을 겁니다. 영어는 다들 잘해서 제2 외국어를 어느 정도 보는 것 같더라고요. 저랑 같이 온 병사 중에 한 형은 토익이 955점인데 해외거주 10년 이상이고 스페인어를 아주 잘해서 뽑힌 사람도 있습니다. 00 이는 영어 실력이 좋고 중국어를 잘하니까 거기에 지휘권 추천서 모두 A평가를 받으면 00 이가 선발될 확률이 높을 것 같습니다.
00 이가 꼭 연합사로 배치됐으면 좋겠네요ㅎㅎ. 그러면 제가 파병 조언도 해줄 수 있을 텐데ㅎㅎ
K 드림
사랑하는 아들아
K군은 참 훌륭한 인품을 가진 청년이다. K군에게 많은 것을 배운다. 누군가 도움을 청할 때는 거절하지 말고 상대가 감동할 수준까지 도와주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현재를 충실하게 살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상세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훌륭한 청년이지. K군이 홍콩에서 네 영어 선생님이었고 통역병으로 입대한 후에도 계속해서 연락을 했기에 도움을 청한 것이다.
너나 내 성격은 선천적으로 남에게 부탁하는 것이 아주 불편한 사람이다. 살아오면서 아빠나 너나 엄마에게 특별한 일을 제외하고는 소소한 심부름시킨 적이 없을 것이다. 교사로서도 학생들에게 교육적 목적 외에는 개인적인 심부름을 시켜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내가 하는 것이 훨씬 마음 편했다.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일도 마음이 불편하고 누군가 밥을 사준다고 해도 사양한다. 물론 그렇다고 사회성이 결여됐거나 사람 만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성훈이는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하며 환한 얼굴로 넘치도록 도와줬다.
하나님이 우리 아들의 인생을 여기까지 인도하신 분이니 아무 걱정도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도우심을 주는 분이시다. K군은 자신이 영어통역병으로 입대하고 너에게도 영어통역병을 추천한 사람이고 이번에는 자신이 다녀온 파병을 추천해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귀 기울여 보는 것이다.
하나님께 전적 신뢰를 하며 사는 것과 사람을 의지하는 일의 경계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네 입시가 한참 진행되고 있을 때다. 네가 일차로 원하던 전형에 떨어져 가족이 약간 기가 죽어 있을 때 너는 내 주머니에 슬그머니 쪽지를 집어넣고 외출했다.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으로 사는 **님이 되세요!"
“ 너희는 힘 있는 고관을 의지하지 말며, 구원할 능력이 없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아라.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그가 땅으로 돌아가고 그날에 그의 계획은 멸망할 것이라. 나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이가 너희를 돕는 자가 될 것이니라.(시편 146:3-5)”
아들의 눈에 그시기에 아빠가 세상 사람을 의지하고 있다고 보였나 보다. 해외 입시를 오래 해와서 이 분야에 대해 축적된 데이터가 많았다. 뿐만 아니라 각 대학의 입학팀에 사람들과도 친밀한 관계가 형성돼서 다른 사람보다는 입시에 대해서 좀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때였다. 네 말대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돌아서서는 인맥을 통해 상세한 데이터를 정리해 놓고 이것을 믿고 있었다. 사람을 의지한 것이다.
그후로 아들이 전해준 쪽지를 코팅해서 가지고 다니고 있는 것은 너도 알거다. 이것을 이따금 꺼내 보면서 마음을 다 잡는다. 우리가 마음으로 계획할지라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다시 일깨워줬다. 파병 문제는 시간을 두고 생각하자.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마태 6:34)
하나님을 사모하는 우리 아들
만날 날을 고대한다.
사랑하는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