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영편지(2부) 16

04월 03일- 아빠가

by 순례자

사랑하는 아들아


창밖에 어둠이 내렸다. 가로등 불빛 아래 가로수들이 우쭐우쭐 춤을 춘다. 바람이 세차게 분다.

엄마도 옆에서 네게 편지를 쓰고 있다. 화요일, 벽에 걸린 시계가 새벽 12시 18분을 가리키고 고요한 공간에 시계소리만 들린다. 뉴스에서 내일은 막바지 꽃샘추위라고 한다.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 따뜻한 봄날이 오겠지?


우리 아들 오늘은 어떻게 보냈니. 막바지 훈련은 고되지 않았니? 시간을 돌이켜 이 시기쯤 아빠가 훈련받던 생각을 해보니 각개전투의 포복과 30KM 행군이었던 것 같다. 포복 엎드려 약진! 하는 명령을 받았는데 헐렁하게 맨 요대가 흙바닥에 자꾸 걸려 앞으로 나가지 않아 허둥대던 생각이 난다. 내복을 입었는데도 팔꿈치와 무릎이 모두 까졌다. 게다가 새로 받은 군화가 벽돌같이 딱딱해서 뒤꿈치가 모두 까져 그 쓰라림에 온몸의 세포가 곤두섰던 기억이 난다. 그날 오후에는 점심을 먹고 숙영을 했다. 대학 때도 텐트 치고 야영하기를 좋아해서 전국을 다니며 야영을 했던 아빠가 가장 기다렸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밤은 어찌나 길고 춥던지 오들오들 떨며 뒤척거리다 한숨도 못 잤다. 기상과 동시에 텐트를 접으라고 해서 새벽부터 일어나 텐트를 접고 어둠 속에 가만히 앉아 동트기를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우리 아들도 이 모든 과정을 거치고 있겠지? 어린 시절부터 너도 야영을 좋아했다. 아빠와 전국의 산과 강을 다니며 텐트 치고 야영하며 여행 다니는 것을 무척 좋아했던 네게 군대의 숙영 훈련과 행군은 어땠을까? 궁금한 게 많지만 곧 만나니 직접 만나서 들어야 더 실감 나겠지? 그 모든 과정을 이겨낸 우리 아들의 팔과 다리, 가슴이 얼마나 탄탄할까? 검게 그을린 팔뚝과 구릿빛의 강인한 얼굴을 갖고 있겠지.


일전에 네 편지에서 말했던 너의 군가 부르는 모습을 상상해 봤다. 아버지로서 마음이 뿌듯하다. 우리는 이 나라의 국민이다. 할 말이 많지만 이 나라는 우리가 자랑스럽게 품고 살아야 할 내 조국이다. 하루의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은 언제나 국기 하강식과 맞물렸다. 저무는 석양에 전우들이 모두 멈춰 서서 경례를 하면 가슴이 벅차올랐다. 내겐 조국이 있고, 내가 지켜야 할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군복무 기간의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힘이 되었다. 우리 아들도 같은 감정을 느꼈다는 말에 아빠는 고맙고 감사했다.


사랑하는 아들아 제대 말년에는 떨어지는 가랑잎도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훈련소 수료식이 며칠 안 남았으니 매사에 신중하기를 바란다. 이제 군복무의 첫 단추를 꿰는 시간이 되었다. 군복무를 하다 보면 이따금 부조리한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정의감이 넘치는 너의 성품에 어긋나는 일들을 만나면 분노가 치밀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예수님께 기도하면서 상황을 지혜롭게 처리하고 인내할 힘을 달라고 기도하거라.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요한복음 18:37-38)


지금 이 장면은 예수님을 신문하는 광경에서 나온 말이다. 빌라도는 이미 대제사장의 집안에서 재판을 받고 그 종들을 통하여 심하게 매를 맞고 기진 맥진한 몸을 가지고 자기 앞에 나온 예수님을 앞에 두고 있다. 삶과 죽음이 빌라도의 손에 달린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두려움이 없었다. 그리고 빌라도의 신문에 항변하거나 저항하지 않았다. 빌라도는 진리에 대한 호기심만 가지고 있지 그 진리를 찾고 구하고 그 진리와 마주하려는 생각이 없다는 것을 예수님을 알고 계셨다.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자신의 왕권을 선포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으로 불의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는 지상적인 권력이나 정치를 넘어 영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예수님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곳에서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처럼 살아야 할까?

참된 신앙이란 그 신앙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하지 않을까? 지금 내가 사는 이곳에서 경건의 모양을 넘어서 경건의 능력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 내야 한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선한 행실을 행하고 약자를 돕고 사랑을 실천을 해야 한다. 날마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기를 멈추지 말아야 세상의 헛된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다.


훈련소 일정의 막바지에 다 달았고, 자대 배치를 앞두고 있구나. 우리 아들이 모든 상황에서 예수님께 지혜를 물어 잘 해결해 나갈 것이라 믿는다.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인 것은 죄를 짓지 않아서가 아니라 모든 일을 하나님께 묻고 행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아들아, 이제 아빠도 잠을 청해야겠구나.

우리 삶의 여정에서 엄마 아빠가 아들에게 이렇게 많은 편지를 쓸 일이 또 있을까? 네게 보낸 서신이 이 100장을 훌쩍 넘었구나. 아들에 대한 엄마와 아빠의 사랑의 작은 표현이라 생각하렴. 세월이 지나면 좋은 추억으로 되새길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것이 마무리된 후에 여유롭게 이글들을 볼 날을 고대한다.


단잠에 빠져 있을 너를 생각하며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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