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크는 아버지 5화

by 순례자

사건은 전혀 예상치 않았던 날에 우연히 터졌다.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난 후, 10월 중순경이었다. 교무실에 있다가 유리창이 깨지고 의자가 나둥그러지는 요란한 소리를 듣고 나는 복도로 뛰어나왔다. 복도에는 세 사람이 날 선 눈빛과 극도의 긴장 상태로 서 있었고, 학생들과 교사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학생부를 맡았던 나는 학생들을 교실로 들여보내고 주변을 수습한 후에 교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사건의 당사자는 P 여선생님과 중3 남학생 L 군 그리고 교부무장 S선생이었다. 수업 중에 책상 밑에서 몰래 게임기를 가지고 놀고 있던 L학생을 P 선생이 못하게 하자, P군은 이내 엎드려 잤고, 자는 것을 깨우는 P 선생에게 책상을 걷어차며 욕설을 하며 대들었다. 옆반에서 수업을 하던 교무부장 S 선생이 이 소동을 듣고 그 교실에 들어갔고, 꾸중을 하는 중에도 난동이 계속되자 L군의 뺨을 때렸고, L군이 복도 유리창을 향해 의자를 집어던진 것이다.



L군은 지난 주말에도 이웃 국제학교 학생들과 패싸움을 해서 학생부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기도 했다. L군은 돌격대장 스타일의 아이였다. 누군가의 뒤를 따라다니며 어깨에 힘을 주고 몰려다니며 힘을 과시하는 그런 류의 아이로, 학교 내에서는 그다지 폭력적인 성향을 보인 적이 없었다.


나는 일련의 상황을 정리해서 P 교장에게 보고 했고, 징계위원회에서 L군에게 5일 유기정학이 내려졌다. 사건이 이 정도에서 일단락이 되는 줄 알았다. L 군의 유기정학이 통보된 다음 날, L군의 부모가 학생부에 찾아왔다. 들어오는 순간부터 찬바람이 쌩쌩했다. L 군의 부모는 분노에 차서 목소리 마저 떨렸다.


"그래 우리 아이는 그렇다고 칩시다. 우리 얘를 때린 그 선생은 어떻게 할 거요?"

"모든 정황을 충분히 살펴서 K 군이 충분히 반성할 수 있도록 배려한 징계입니다."


L군의 부모는 애초부터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는 듯 길길이 뛰다 갔다.


다음 날 L 군의 아버지는 몇 명의 남자들과 함께 와서 교무부장 S선생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상담실에 S선생과 L군의 아버지가 앉았고, 나는 그 옆에 앉아서 기록을 했다. 상담실 밖 복도에는 L군의 아버지가 데리고 온 남자들이 서 있었다. S교무부장은 난처한 표정으로


“하참~. 애초부터 일이 이렇게 커질 것이라 생각 안 했습니다. 우리는 K군이 누구보다 잘 되기를 바라고 교육하는 것이니 그만 노여움을 푸세요. 이후에도 K군이 학교에 잘 적응하도록 우리가 도울 것입니다.”


“뭐라고요? 아니 남의 금쪽같은 새끼 뺨 떼기를 사정없이 두들겨 패고는 5일 정학을 준 것이 아이를 위한 일이라고요? 우리 아이의 미래는요? 이제 다 망했어요. 당신도 똑 같이 한번 당해 보시오. 우리 아이와 내 앞에서 무릎 꿇고 빌고, 처벌도 돌려놓으세요. 안 그러면 나도 끝장을 볼 겁니다.”


그는 험한 표정을 짓고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얘기가 격해지고 S선생과 L군의 아버지는 언성이 높아지다가 급기야는 서로 멱살 잡이를 하고 떠다밀며 실랑이를 했다. 상담실 책장의 유리까지 깨질 만큼 격한 몸싸움이 이어졌다. 밖에 섰던 남자들이 상담실로 급히 뛰어 들어왔다. 곁에서 말리던 나는 K군의 아버지를 향해


“이게 상담을 하러 온 학부모의 태돕니까? 깡패나 하는 짓이지 협박하려면 학교에 뭐 하러 왔습니까? 본인멋대로 행동하는 게 처벌받은 학부모가 할 일입니까?”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아차 싶어 서둘러 사태를 진정시키고 L군의 아버지와 일행을 간신히 달래서 돌려보냈다.


다음 주 T시 지역 한인 신문에 'T 한국학교 폭력 교사들의 추악한 실태'라는 제하의 칼럼에, 교사들이 작당해서 힘없는 학생을 비행, 폭력 청소년으로 매도했고, 상담으로 찾아간 부모에게도 폭력을 행사했다고 실었다. L군의 아버지는 학운위 위원장이었고, 지역 한인신문 대표였고, 호텔, 음식점 등을 경영하는 한인 상공회 간부이기도 했다.


이 사건이 터지기 이전까지 L 군의 아버지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교양은 좀 부족했지만, 솔직하고 화통한 화법과 성격으로 선생님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후원자였다. 학교 체육대회 등의 행사에 음료수와 간식을 준비해 주는가 하면, 기념일에는 전체 회식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의 두 아들이 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장남이었던 L군의 이번 사건으로 그는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다. 그의 표정과 태도가 완전히 돌변했다. 학교에 들어오면서부터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 거칠게 말했다.


이 사건의 파장은 우리 학교뿐 아니라 T시 한인 사회에 들불처럼 확산됐다. L군의 아버지는 아이의 뺨을 때린 S교사의 파면을 거론했고, 옆에서 그의 심기를 건드린 나 역시 ‘학부모에게 무례한 교사’로서 징계를 요청했다. 그의 영향력을 이용해서 주변 사람들의 연서를 받아서 학교장에 제츨하고, 한국의 교육부에까지 탄원서를 제출했다. 학교 분위기는 그야말로 초상집 같았다.


*<해외교사로 십 년을 살아보니 1>, '23화 T시의 절벽 위에서다(1/3)'에 게재한 내용을 인용했습니다.


* 이 글은 2000년대 초반 제가 근무했던 때의 일을 적은 것 입니다. 지금의 학교와는 전혀 관련 없는 먼 옛날의 일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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