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군의 아버지가 학교를 찾아왔고 교장실에서 마주 앉았다. 사건은 이미 파국의 국면이어서 서로의 감정을 오히려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었다. 이제 이 상황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논쟁할 일만 남았다. 교장실의 공간은 숨 가쁜 정적으로 위태롭고 불안했다. P교장이 애써 편안한 웃음을 지으며 얘기를 시작했다.
“자, 어려운 자리에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먼저 차 한잔 드시고 천천히 얘기하시지요. L군 아버님이 먼저얘기해 보시지요.”
“학생에게 폭언을 하고 손찌검하는 선생을, 학운위위원장이기에 앞서,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 도저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 S선생은 중징계해야 합니다. 게다가 그런 상황에서 학부모에게 모욕적 언사를 한 K선생도 징계해야 합니다.” .
L군의 아버지는 얘기하는 중에 그때 일이 기억났는지, 얼굴이 벌게져서 작정하고 분노를 쏟아냈다. 그의 말이 끝나고, 잠시 후 벽시계 소리가 들릴 만큼 정적이 흘렀다. 길게 한숨을 쉬고 나서 P 교장이 말문을 열었다.
“음~. 위원장님, 제가 만일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L 군의 아버지가 예상 못했다는 듯 멍하게 쳐다봤다.
“제가 만일 그 자리에 있었다면 말입니다. 저도 똑같이 했을 겁니다. 당장에 뛰어 들어가, 뺨을 후려쳤을 겁니다. 선생이 자는 학생의 잠을 깨우고 게임을 못하게 했다고, 욕설을 퍼붓고 의자를 집어던지는 자녀를 그대로 두면 그게 선생입니까? 누가 누구를 징계합니까? 어디 맘대로 해보십시오. 더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다 하셨으면, 이만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P교장은 고개를 꽃꽂이 세우고 L군의 아버지를 똑똑히 보고 말했다. 그날의 회의는 예상외로 너무 짧게, 맥없이 끝났다.
다행히 이 사건은 빠르게 수습됐다. T시의 한인상공회 회의가 우리 학교 회의실에서 긴급하게 열렸다. 회의 결과는 L군의 아버지와 교장에게 통보됐다. L군의 아버지에게
“사태를 수습하고 자기 신문사를 비롯한 T시 한인 신문에 학교와 해당 교사들에게 물의를 일으킨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글을 올리라.”
라는 최종 결의를 했다.
그리고 사직 의사를 밝힌 나를 그날의 회의에 불렀다. 30여 명의 T시 상공인들이 모여있었다. 회장이 말했다.
“K 선생님, 말도 안 되는 일로 근 한 달간 고생이 많았습니다. S 교무부장 선생님은 어차피 한국으로 귀임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K 선생님마저 가시면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합니까? 마음이 상하셨더라도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곳에 남아 주십시오.”
“죄송합니다만, 그간의 일로 학생들에게 해당 교사들이 본이 되지 못한 모습을 너무 많이 보였습니다. 교육적이지 못했습니다. 저는 한 번 마음이 떠나면 그 자리에 있지 못합니다. 저도 어쩔 수 없으니 양해해 주십시오.”
그렇게 대화는 끝났고, 나는 다음 계획도 준비하지 않은 채 학교에 사직서를 냈다.
다음 날 P교장이 불렀다.
“K 선생님 마음은 이해합니다. 학교 형편상 K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모두 정리됐으니 함께 일합시다.”
“교장 선생님의 관리자로서의 대처 방법에 존경을 표합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그만 사직하겠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일주일 뒤에도 같은 마음인지 얘기해 주세요. 사직서는 그냥 가지고 있겠습니다.”
다시 일주일이 흘렀고, 나는 교장실에 가서 마음이 변함이 없음을 알렸다.
P 교장은
“삼세번이란 말이 있지요. 일주일만 더 생각하고 오세요. 2년 계약 중에 1년만 하고 돌아가시면, 행정상 여러 가지 페널티가 있을 수 있어요. 다시 한국의 원적교로 돌아가셔야 하고, 여러 가지 손해가 많을 거예요. 다시 1주일만 더 생각해 봅시다. 그때도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내가 안 잡을게.”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해봤다. 한국을 떠나올 때의 그 많은 절차와 번거로운 일들이 떠올랐다. 차도 집도 팔고 환송회도 여러 차례하고 떠들썩하게 나왔는데, 1년 만에 맥없이 돌아갈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했다. 하지만, 뭐라고 설명하기 어렵지만, 이곳에서 마음이 떠났다. 머리로는 남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은 이미 냉랭해졌다. 나는 공식적으로 최종 사직을 결정했고, P 교장도 더 이상 잡지 못했다.
이 사건의 불똥이, 내게 이렇게 큰 파장을 불러올 줄은 몰랐다. 약 한 달간 대여섯 차례 만났던 악의에 찬 사람들의 모습에서 냉혹한 인간의 내면을 생생하게 보았다. 물론, 내게도 확고한 원칙이 있다. 학교 현장에서는 의도하지 않았던 사건으로, 학생과 학부모가 어떤 과도한 반응을 보여도, 난 어떤 분노나 원망도 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연장선상에서 이 사건도 마찬가지다. L군의 부모 역시 자녀에 대해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자녀는 그들의 분신이고, 목숨도 대신할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에 한걸음 떨어져 생각하면 그들을 이해 못 할 것도 없었다.
그렇지만 이 일이 진행되면서 파생된 사람에 대한 실망과 고성이 오갔던 교실과 교무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 공기와 긴장된 분위기, 분노의 눈빛이 가득 찼던 곳에서 처음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근무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L군의 부모가 사람들을 몰고 학교로 찾아와 거칠게 항의할 때마다 다툼은 교무실을 넘어서 복도로 이어졌다. 그때마다 교실 안에서나 창가, 복도에서 거친 말과 삿대질을 해대는 우리 어른들을 학생들이 둘러서서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싸움을 지켜보던 그들의 눈빛을 나는 잊을 수 없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다. 다툼이 있던 날 교실에 들어가서, 거짓 웃음을 지어가며 아무렇지도 않게 수업하는 내 모습이 혐오스러웠다.
그렇게. 나는 1년 만에 학교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이 사건으로 나는 당장 갈 곳을 잃었다. 하지만 교사로 살면서 멘토가 될만한 한 사람을 만난 행운을 얻었다. P 교장은 교사로서의 열정과 관리자로서의 권위를 모두 갖춘 교육자로, 내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줬다. 후배 교사의 올곧은 신념을 믿고, 외부의 부당한 압력을 온몸으로 막아준 멋진 사람이었다.
* 이 글은 2000년대 초반 제가 근무했던 때의 일을 적은 것 입니다. 지금의 학교와는 전혀 관련 없는 먼 옛날의 일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