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크는 아버지 7화

by 순례자

나는 그 후로 여러 관리자들을 만났지만, 부분 자기 유익에 충실한 사람들이었다. 권위를 내세웠지만, 어떤 일도 책임지지 않았고, 자신이 손해 볼 일은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교장의 직함이 필요했고, 그 직함에 맞는 그 이상도 그 이하의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어느 조직이 문제는 생긴다. 학교 사회는 관계를 통해서 학생들의 성장을 돕고 기록하는 곳이다. 많은 아이들과 교사들이 하루 종일 함께 있으니 언제나 문제가 생겼다. 들은 문제가 생기면 교사를 탓했고, 원칙을 끌어 붙여 교사에게 책임을 추궁했다. 교장실 문 항상 열려 일으니, 언제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오라고 한다. 하지만 정작 문제를 제기하면 권위에 도전한다고 불쾌해하고, 내가 K 선생에게 뭐 잘못한 게 있냐고 정색을 한다.


내가 가장 혐오하는,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했다. 어떤 때는 그들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학교일까, 학생일까, 아니면?


그런 세상에서 P교장은 더 크게 보였다. 역지사지, 상대의 입장에서 듣고 오래 생각한 후에, 문제를 책임지고 교사의 방패 막이가 됐다, 본인의 권위 최대한 발휘해서, 떠나는 사람을 위해 교육부와 조율하는데 남보르게 애를 썼다. '학교의 혼란기에 피해 교사로 불가피하게 임지를 옮기게 되었다'는 사유서를 교육부에 제출해서 내가 곧바로 한국에 돌아가지 않아도 되도록 행정처리를 했다. 이 일련의 이야기도 행정실장의 통해서 나중에야 듣게 됐다.


그렇다, 권위는 이렇게 쓰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어떤 생색도 내지 않았다. 어쨌거나 이번 일로 결국 나는 T한국국제학교를 떠나기로 했다.


아내와 몇 날을 얘기했다. 아내는 내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자기, 그래도 우리가 이렇게 나왔는데 1년 만에 돌아가는 것은 아닌 것 같아. 다른 나라에 갈 곳을 정하고 나서 이곳을 떠나는 것은 어때?”


“내가 경솔했던 것 같아. 학교에 이미 사직서를 내서 수리됐는데..., 한국에 돌아가지 않고 갈 수 있는 나라를 찾아볼게.”


아내를 안정시키고, 초빙 공고를 살폈다. 12월 초순이 지났다. 시기적으로 대부분의 학교가 초빙 공고 일정을 종료했다. 다행히 H 한국국제학교, V한국국제학교 두 곳만, 그것도 지원서 종료 이틀만 남았다. 그날 밤을 꼬박 새워서 서류를 작성해서 보내고 잠이 들었다.


그날 밤 꿈을 꿨다. 짙은 어둠 속에서 트렁크를 잔뜩 챙겨 T시 공항에 서 있는 우리 가족을 꿈에서 보았다.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긴 한숨을 쉬었다. 그만큼 마음이 다급해졌.


시계를 보니 새벽 4시가 조금 넘었다. 서둘러 옷을 입고 자전거를 탔다. 사방은 어둠과 정적에 휩싸여 고요했고, 밤 사이에 내린 눈으로 세상이 온통 하얗게 빛났다. 집에서 자전거로 10분 떨어진 D 한인교회로 향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막다른 절벽에 서면 찾아가는 한 분, 하나님을 만나러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몇 번이나 자전거 바퀴가 눈길에 획획 돌았다. 새벽이라 도로에 차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새벽 예배에 도착했다. 예배당 문을 열자 찬송가 ‘참 좋으신 주님’의 가사가 들렸다.


"참 좋으신 주님 귀하신 나의 주, 늘 가까이 계시니 나 두려움 없네. 내 영이 곤할 때 내 맘 낙심될 때, 내 품에 안기라 주 말씀하셨네. 광야 같은 세상 주만 의지하며, 주의 인도하심 날 강건케 하시며~"


앉아서 찬송가 가사를 묵묵히 듣고 입으로 조용히 읊조렸다. 목사의 설교가 끝나자 불이 꺼지고 개인 기도를 알리는 찬송가 소리를 들으며 기도를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디선가 출렁이는 물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고 배 한 척이 바다를 향해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아들아 평안히 가거라”


라는 음성이 깊은 곳에서 울려 나왔다. 번뜩 고개를 드니 교회 기도실이었다. 며칠째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가 곤하게 잠들었던 모양이다.


교회를 나와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아들아 평안히 가거라”라는 그 크고 깊은 울림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았다. 하지만, 억지로 의미를 두지 않기로 했다. 애써 뭔가 가능성을 연결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아내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순간 자전거의 앞 핸들이 획하고 돌서 도로 쪽으로 모질게 엎어졌다. 자전거와 함께 그대로 도로에 철퍼덕하고 나뒹굴었다. 도로 표면이 움푹 파인 곳에 눈이 쌓여서 미처 보지 못한 것이다. 다행히 차가 없었고 눈이 쌓여 있어서 별로 다치지 않았다. 눈을 툭툭 털고 터널 거리며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 해가 환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 이 글은 2000년대 초반 제가 근무했던 때의 일을 적은 것 입니다. 지금의 학교와는 전혀 관련 없는 먼 옛날의 일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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