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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례자 May 13. 2024

01 14년 한국 교사 생활 안녕!

    8월의 태양이 구름 한 조각 없는 하늘의 중천에서 이글거리는 열기를 쏟아붓고 있다. 집 근처 산 등성이 가파른 바위산을 한참 오르다가 상수리나무 그늘진 바위 옆에 앉다. 목덜미를 후려치는 햇볕 때문에 머릿속이 윙윙거렸고,  바위 산에서 뿜어 내는 열기로 아찔한 현기증마저 느꼈다.


  바위틈바구니를 비집고 뿌리박은 아담한 상수리나무가 그나마 우산 만한 그늘을 만들었다. 듬성듬성한 잎사귀마저 금세라도 바스러질 것 마냥 누렇게 떠있다. 바람 한 점 없이 이글거리는 태양에, 땀마저 마른  피부는 마른 버섯처럼 버석거렸고, 피로에 지쳐 정신마저 몽롱했다. 잠시 눈을 감다. 지난 일주일 간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 다른 반에서는 유출된 문제로 수행평가를 보는데 이건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나요?”, “불공평해요. 우리가 손해지요.” “맞아요. 이 문제지를 다운로드해서 이미 돌려 보고 있었다고요!


     중간고사 수행평가를 치르는 시간이었다. 평소에 늘 내 주변을 어른거리며 점수에 민감을 떨던 A와 B 가 불평을 터뜨렸다. 잠시 시험을 멈추고 수행 평가를 출제한 C 교사의 반으로 서둘러 갔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다시 교실로 돌아왔다. 잠시 후에 C 교사가 찾아와 상황을 정리한다.


     “ 학교 평가 계획을 업로드한 사이트에서 D 학생이 다운로드한 것을 몇몇 학생들에게 자랑했어요. 하지만 지문  일부만 같고, 문제는 전혀 달라서 그대로 진행해도 될 것 같아요. 담당 부장도 괜찮을 것 같다고 했어요. “


    교실로 돌아와 수행 평가를 실시하고 다른 반도 모두 계획대로 마쳤다. 그리고 다음 날 수행 평가 점수를 알려 줬다. 문제를 제기했던 A와 B 학생 그리고 다운로드하였던 D학생 모두 만점을 받지 못했다. 그날 오후 퇴근 준비를 하는데 C 교사가 다급하게 찾아왔다. A 학생의 학부모로부터 ‘수행평가 문제 유출’을 문제 삼겠다는 항의 전화를 받았다는 것이다.

  

    다음 날 아침, C교사를 찾는 교감의 호출이다.  출제했던 신임 C 교사가 추궁을 당할 것 같아 대신 갔다.


    “원칙대로 실시했고 별 문제없습니다. 출제 문제도 전혀 다르고 문제가 된다면, 학교 평가 계획안에 문제까지 공개한 담당 부서의 잘못이지요. 재시험은  없습니다.”


    재 시험을 하지 않겠다는  내 말에 교감은 날 선 닦달을 했고, 나는  더 화를 내며 대거리를 했다. 평소에 교감과 좋은 관계였다. 상황 설명을 하면 문제없이 넘어갈 일이라는 기대를 갖고 C 교사 대신 간 것이다. 그런 내 예측은 보기 좋게 빗 나갔다. 찬바람이 쌩쌩 나는 표정으로, 빨간 줄이 쭉쭉 쳐져 있는 규정을 들이대며 언성을 높여 책임 추궁을 하는 게 아닌가. 그 바람에 열이 확 치받아, 내가 더 크게 소리쳤다. 교감 말이 안 통한다며 교장실로 자고 했다.

 

     “아니, 이런 식으로 나오시면 제가 더 이상 선생님 편이 드리지 못해요. “


    상황을 들어 보않고 교장이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  닥을 바라보고 대뜸 한 소리한다. 그들 끼리는 이미 상황을 공유했나 보다.


     “저는 문제없다고 생각합니다. 교과 협의회에서 재시험을 권고하면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니 왜 말을 안 들어요. 이런 식이면 더 이상 선생님을 보호할 수 없어요. 그럼 대로 하세요!”


    교장이 하고 소리쳤다. 협의끝나다시 오겠습니다. “


   나는 한 발도 양보하지 않고 교장실을 나왔다. 교장과 교감의 궁정대는 불평을 뒤로하고  문을 꽝 소리 나게 닫고 나왔다.

  협의회에서는 여러 논의 끝에 재시험을 치르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고 교감에게도 그렇게 렸다.


  그런데 일은 엉뚱한 데서 터졌다. F 교사가  문제가 됐던 반 수업에 들어가서 화 중에


     “ 니들이 하도 난리를 쳐서 재시험을 치르는 것 아니야?”


     라고 했다고,  아이들 사이에서 돌았고 맘카페에 ‘재시험 루머’가, 기정사실이 돼서 실렸다고 한다. 게다가 C 교사 문제를 다운로드했다는  학생을 협박했다누명 뒤집어쓰고 교육청에 신고됐다고도 했다.


  래서 결국 수행평가를 다시 치르게 됐다.  다음 주 첫날 전체 반 수행 평가를 다시 치렀고,   A와 B, D 학생 모두 수행평가 백점을 받았다. 그렇게 수행평가 사건 거짓처럼 조용히 끝이 났다. 상황을 알리러 교장실에 갔다.


    “ 선생님이 출제 안 했는데 후배 교사 대신 왔다는 말을 조금 전에 들었어요. 애초부터 문제 안될 일이 자꾸 꼬인 거지요. 어쨌든 수고 많았어요.”


    교장이 그 긴 얼굴에 애써 웃음 지으며 차 한잔하고 가라고 청한다.


    지난 14년 간의 기억 떠 올랐다. 마치 바람벽에 비친 사기 처럼, 빛바랜  들이 간의 저편에서 올라와 빠르게 스쳐 간다.


   0교시 출근 후 아침 보충 수업 1시간 , 정규 7교시를 마치면 종례  연속 2시간,  8, 9교시 보충 수업을 숨 가쁘게 한다. 수업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와  잠시 눈을 감는다. 물먹은 솜처럼 무겁고 지친 몸이 우물 밑바닥으로 가라앉는 아득한 현기증을 느낀다. 컴컴한 심연의 밑바닥으로 꺼질 것 같은 생각이 들 때 눈을 번쩍 뜨곤 한다. 못 깨어 날 것 같은 두움이 엄습한다.

   수업이 없는 빈 시간은, 밀린 공문처리와 아이들 진학 상담으로 채운다. 그리고 일주일에 2번씩은 10시까지 자율학습 감독이다.


   이비인후과를 2주째 다녀도 목의 통증은 가시지 않는다. 매 년 학기초면 겪는 고질병이 됐다. 의사는 한 동안 목을 쓰지 말라는 처방을 내린다.

  실천 불가능한 처방을 듣고 무거운 다리를 끌고 터벅거리며 집으로 돌아온다. 해가 뜨면, 언제나 같은 날이 일주일 내내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반복된다. 몸도 마음도 번 아웃 됐다. 숨 쉴 공간이 필요하다. 이렇게 평생을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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