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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례자 May 13. 2024

05  삶은 너무 복잡해

  이사할 때 비로소, 살아온 세월만큼 처리할 일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 터전을 유지하며 사는 일이 이렇게 복잡하게 많은 일로 얽혀 있는 줄 미처 몰랐다. 휴직 과정에 필요한 서류도 많았고 의료 보험, 통신, 각종 세금, 보험, 가족 관계, 자동차 등이 감자 줄기 마냥, 하나를 끝내고 추스르면  또 다른 줄기들이 줄줄이 머리를 들었다.


   이것저것 처리를 마무리할 즈음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집이었다. 출국이  3개월 남짓 남았는데, 전세를 내놓아도 보러 오는 사람이 없다. 부동산을 몇 차례나 들락거리고, 전화통을 들었다 놓았다 해도, 딱히 응답이 없었다. 그렇게 두 주가 지나던 어느 날, 부동산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줄잡아 70대. 중반은 됨직한 노인의, 늘어진 바이올린 줄 같은 목소리가, 느릿느릿하고 걸걸하게 전화기 밖으로 흘러나왔다.


     “ 사장님~. 예산과 시기가 딱 맞는 사람이 있으니~, 아,  이 참에 아예 매매로 갑시다요~. 애~. 전세는 보러 오는 사람도 없어요~. 게다가 값도 좋은데, 이런 기회도 흔치 않아요~. 예?”


 집 보러 오겠다는 사람이 적극 적었다. 내 출국 시기와도 맞아떨어지고, 시세보다 좋은 가격이다. 구두로 가계약을 하고, 다음 날 부동산에서 만나기로 했다.


    하지만, 세상만사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퇴근 후 약속한 부동산으로 가는 차 안에서, 아내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여보! 어디야? 우리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했어. 빨리 영어 학원으로 가봐! 나도 그쪽으로 가고 있어.”


   부동산을 코 앞에 두고, 방향을 틀어 아들이 다니는 명일동 영어 학원으로 정신없이 차를 몰았다. 20분 정도 떨어진 학원으로 가면서,  나는 절박하게 하나님께 아이의 안전을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하나님 우리 아이의 생명을 보호해 주소서, 제 생명을 대신해서라도, 그 대가를 치르겠습니다. 분별없이 일탈을 시도하는 내 계획을 멈추라는 신호인가요?’


  별의별 생각에 사로잡혀 허대다가  현장에 도착했다. 웅성거리며 모여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 속에, 넋 고 앉아 있는 아들이 나를 보더니 크게 한숨을 쉰다.


  “그래, 괜찮니 다친 데는 없고, 어디 보자 한 번 일어서 봐. “


  나는 아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훑으며, 손으로는 머리며 팔과 다리를 황급히 쓸어 봤다.


    “아빠, 내가 차를 타려고 막 뛰어갔는데, 그다음은 잘 생각이 안 나.” “ 그래 그래 괜찮아, 다친데 없으면 괜찮아.”


     겉으로 봐선 다친 곳도 없어 보였고, 말씨도 또렷했으며 눈빛도 평소에 아이처럼 반짝거렸다. 나는 일단 안도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학원 버스는 수업을 마친 아이들을 집에 데려다 주기 위해 학원 건너편에 정차해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화장실에 다녀온 아이는 막 출발하려는 셔틀버스를 타려고 건널목의 파란 신호등이 깜박이는 것을 보고 뛰었고, 때마침 우회전하며 들어오는 학원 버스와 충돌했다고 했다.



     “ 우린 무슨 큰일이 난 줄 알았어요. 암요, 아이가 버스에 부딪혀 한 2미터는 떴다가 떨어졌어요.”


   한 아주머니가 고개를 길게 빼고 서성이다가, 불안에 떨며 달려온 나를 향해, 아이가 무사한 건 천운이라며 혀를 차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를 데리고 사고 운전사와 함께 인근 병원으로 갔다. 차에 태우고, 자리에 앉히고 나서야 웃옷의 팔꿈치와 무릎 언저리가 찢어진 것이 눈에 띄었다. 아마도 아스팔트에 떨어질 때 찢겼으리라. 사고를 낸 60대의 학원 운전기사는, 앞자리에 앉아서 연신 고개를 숙이며 두꺼운 돋보기안경 너머로 힐끗힐끗 나를 보면서 말했다.


    “내가 신호를 좀 더 기다렸어야 하는데…, 그만 배차 시간이 늦어져서…, 아이를 못 봤어요. 아무쪼록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아무 일도 없겠지요?”


  초췌한 그의 얼굴은 피로에 지쳐 있었고, 그 와중에도 꾸벅 대며 졸기까지 한다.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은


    “아빠, 분명히 차가 없었거든, 화장실 갔다 오는데 그만 차가 출발하잖아. 난 아무 데도 다친데 없어. 걱정하지 마. 응? “,  “ 그래 그래, 알았어. 알았어. 어디 아픈 데는 없지? 어지럽지는 않아?”


  아들은 사고를 당한 그 긴박한 순간보다 자신을 타박할지도 모를 아빠, 엄마가 더 신경 쓰였는지 팔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아무렇지 않다는 시늉을 지어 보였다. 그동안 나는 아이에게 어떤 아빠였을까, 의사는


      “다행입니다. 여러 검사에서 별 이상이 없었어요. 골절이나 타박상 흔적도 없고요. 하늘이 구하셨네요. 뇌진탕 증상이 있을지 모르니, 혹시 어지럼증을 호소하거나 토하거나 하면 즉시 데리고 오세요. 일단은 그냥 퇴원해도 됩니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쩔 줄 몰라 더듬대며 사죄하는, 운전기사 아저씨를 안심시켜 돌려보내고,  우리도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목욕시키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이의 몸을 꼼꼼히 살폈다. 신기하리만큼 아이의 몸은 말끔했다. 웃옷의 팔꿈치가 심하게 찢겨 있는 것으로 봐서, 충격이 꽤 컸을 텐데, 찰과상 하나 없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 밤 아이 침대 머리맡을 꼬박 지켰다. 다행히 아이는 몹시 곤한 하루를 보낸 후라, 알아들을 수 없는 잠꼬대를 몇 차례 할 뿐, 곤한 숨을 몰아 쉬며 한 번도 깨지 않고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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