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드디어 생에 첫 집을 처
아이를 재운 뒤 새벽녘이 돼서야 핸드폰을 열었다. 부동산에서 여러 번 전화가 와있었다. 다음 날 퇴근 후에 곧바로 부동산을 향했다. 낡은 의자에 두꺼비처럼 웅크려 앉아 있던 사장은, 나를 외면하고 천장에 눈길을 고정한 채, 느릿느릿 들릴 듯 말듯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나원 참, 이미 늦었어. 당최 연락이 돼야지. 음~. 이런 경우는 처음이야. 매수자가 30분을 기다렸어요. 그런데 때 마침 같은 동에 집이 하나 나왔지 뭐야. 그 집에 갔다가 그 자리에서 계약해 버렸어.”
몇 번이나 머리를 조아리며 부동산을 나왔다. 이렇게 기회는 지나가 버렸다. 하지만 그것이 조금도 아쉽거나 아깝지 않았다. 설령 이대로 집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떠난다 해도 아이가 무사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아이는 그 후로 어떤 후유증도 보이지 않았다. 출국 한 달 남짓 남았건만, 부동산에선 이렇다 할 소식이 없었다. 애써 태연한 척 해도 달력을 들춰 보고 하루하루 시간이 가면서 가슴은 가뭄에 논바닥처럼 바싹바싹 타 들어가고 있었다. 아내에게는 불안한 마음을 애써 감추었다.
그러던 토요일 오후 전화벨 소리와 거의 동시에 현관 벨이 울렸다. 두꺼비 같은 부동산 사장이 문 밖에 서 있었다. 집에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무작정 왔다고 한다. 금테 안경을 쓴 둥그렇고 살집이 있는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와 분홍빛 원피스를 단정하게 차려입은, 딸로 보이는 20대 후반의 여자가 웃음 담은 얼굴로 함께 서 있었다. 방이며, 화장실, 주방, 건넌방을 발끝으로 조심스럽게 오고 간다. 두 모녀가 건넌방에서 두런두런 말을 주고받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우리가 서둘러 이사 가는 이유와 이사 날짜 등 몇 가지 상황을 묻고는 고개를 까닥이고 돌아갔다.
다음 날 슬리퍼를 끌고 아내와 집 앞 부동산에 갔다. 어제의 두 모녀가 가지런히 다리를 포개고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고, 두꺼비 사장은 책상에 웅크리고 앉아 뭔가를 뒤적거리다 우리를 맞았다. 몇 장의 서류에 서명하고 계약금을 받고, 영수증을 받았다. 수년을 손꼽아 기다리며 그렇게 고대하며 마련했던 집이 이렇게 간단하게 넘겨질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드디어 집을 팔았다.
우리 생애 처음 마련한 집을 고민도 없이 팔아 버렸다. 이제 약 한 달 뒤면 이 집을 떠나야 한다. 우리 가족에게는 생애 첫 집이고, 내 애정의 손길과 우리 가족의 웃음과 슬픔과 다툼이 벽지 곳곳에, 구석구석에 켜켜이 배어 있어서, 손으로 쓱 문지르기만 해도 감정이 그대로 묻어 날 것만 같은 집이었다. 그런 이 집이 이제 한 달 뒤면 완전히 남의 것이 된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 한 곳이 휑하게 찬 바람이 일었다. 이제 떠나는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