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훌쩍 한국을 떠난 이유는 오롯이 개미 탓이었다.
내 시선을 빼앗은 것은 발 밑 거친 땅 위를 오가는 개미의 분주한 움직임이었다. 그 검고 작은 몸이 정오의 태양에 오히려 또렷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한참을 지켜봤다. 저마다 크고 작은 뭔가를 입에 물고, 혼신의 힘을 다해 쉴 새 없이 오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문득 나를 떠 올렸다.
일개미는 쉼 없이 분주하게 살다가, 짧게는 6개월 최대 1~2년이면 생명을 다 한다. 수명을 다한 개미는 새로운 개체로 대체될 뿐이다. 개미는 자기 서식지에서 13미터의 행동반경을 두고, 잎과 먹이를 구한다고 한다. 사람으로 치면 4km에 해당하는 거리다.
기억 속에 나 역시 개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학창 시절은 집과 학교를, 그나마 잠시 떠난 부산에서의 군생활을 거쳐, 다시 집과 직장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살아왔다. 반경 4Km 안의 공간이다.
그래도 개미는 해가 지면 노동을 멈춘다.
물론 오뉴월 장마의 먹구름에도, 이따금 눈부시게 빛나는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듯, 직장 생활이 늘 고된 것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14년 차가 될 즈음에는, 반복되는 고된 일상에 몸과 마음은 지쳐 있었다. 언제부터 인가 발은 삶의 일상에 자석처럼 붙어서, 시선은 막연히 창밖 세상을 동경하고 있었다.
이 울타리 너머 세상에는, 뭔가 새롭고 신선한 일들이 샘물처럼 솟아날 것 같은 생각이, 문득문득 의식 저편에서 아침 태양처럼 고개를 들었다.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자신을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헤르만 헤세의 말이, 늦은 밤 일상에 지쳐 책상에 앉은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개미처럼 좁은 서식지를 평생 오가다 끝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 , 의자에서 용수철처럼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