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쇼생크의 탈출 앤디 듀프레인처럼
그날로부터 내 사고의 도화선에 불이 댕겨졌다. 내 생명을 사랑하는 길을 선택해 보자. 그래 떠나자. 가슴이 떨릴 때 익숙한 일상을 벗어나 낯선 땅, 낯선 사람들, 낯선 문화 속에 던져져 살아 보자. 그런 생각에 도달하자 가슴이 뜨거워졌다.
책상에 앉아, 모든 것을 버려두고 홀가분하게 떠날 날을 기대하며, 나는 ‘일상 탈출’의 설계도를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간단한 원칙을 정했다. 먼저 이 나라를 떠난다. 다음은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경제적인 문제는 현지에서 해결한다. 돌아올 때는 더 나은 삶의 기쁨을 가슴 가득 안고 온다.
늦은 밤가족들이 잠들고 나면 나의 하루는 새롭게 시작됐다. 라켈 웰치의 가죽 비키니 포스터 뒤에서 락해머로 독방 벽을 긁어 대던 쇼생크의 탈출의 주인공 앤디 듀프레인처럼 밤의 장막이 쳐지면 어둠 속에서 해외로 탈출할 일탈의 노동을 은밀하게 시작했다. 그렇게 먼동이 터올 때면 안개처럼 스미는 새벽 미명의 나른한 피로가 나를 오히려 설레게 했다.
첫 시도는 경제적인 문제까지 고려한 유학을 생각했다. 예전에 준비했던 자료를 뒤적이면서 한국학이 비교적 잘 갖춰진 하와이 대학과 캐나다의 3개 대학을 정하고 지원서를 작성하고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서 발송하는데 한 달이 걸렸다.
손꼽아 기다리던 결과를 받았다. 내 요청은 박사과정 입학과 함께 TA(학부 한국어 강사 자격) 자격으로 일을 해서 학비, 장학금 지원을 받는 것이었다. 하와이 대학은 조건부 박사 입학을 허락하되 TA는 거절했고, 캐나다의 두 개 대학은 한국학 박사 과정이 개설돼 있지 않았으며, 토론토 대학에서는 조건부 박사과정은 허락하지만 내 영어 구사 능력을 입증할 수 없으니 한 학기 검증한 후에 결정하겠다는 대답이다.
무조건 떠난 다고는 했지만, 막상 있는 것을 쓸어 모아 새로운 도전에 쏟아부을 용기가 없었다. 게다가 현재 근무하는 직장에서는 휴직이 안되고, 퇴직을 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아내에게 그간의 준비 사실을 알렸다. 아내는 내가 뭔가 꿍꿍이를 가지고 골몰하고 있다는 것을 오래전에 눈치챘다고 했다. 그리고 내 결정에 흔쾌히 동조했고, 망설임 없이 퇴직하고 가자고 했다. 하지만, 가장으로서 앞으로 펼쳐질 경제적 문제와 돌아 올 직장이 없는 불투명한 미래 앞에서, 나는 두 주간 끙끙거렸고 결국 떨치고 가겠다는 처음의 호기로운 배짱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쭈그러들었고, 의기 소침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