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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례자 Jun 14. 2024

18 가자,소주,항주(Suzhou, Hangzhou)!

  상해 여행을 마무리하고, 우리는 소주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는 천천히 상해 시내를 벗어나더니, 넓은 들판에 고즈넉이 펼쳐진 농촌 마을과 그 뒤로 병풍처럼 둘러싼 짙푸른 산들과 나란히 달렸다. 초록색 들판과 구릉이 나타나는가 하면 다시 마을이 나타나고 들판과 구릉이 이어지고 짙푸를 산들이 다시 나타나서, 마치 어린 시절 둥그런 원형 종이판에 손톱만 한 필름이 동그랗게 박혀있는 판을 끼워 놓은 플라스틱 영사기에 눈을 붙이고, 셔터를 돌리면 연속해서 한 컷씩  볼 수 있던 핀휠(view master)을 떠오르게 했다. 하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적당한 속도로 달리는 기차에 몸을 맡기고 안한 마음으로 창밖 풍경을 바라보니 한적하면서도 정겨운 느낌마저 들었다.     


  "저 아름다운 시골 풍경을 봐요. 마음에 강물이 흐르는 것 같아요."     


  아내는 천천히 시선을 돌리며, 시골의 편안하고 잔잔한 풍경을 바라봤고 내 마음에도 강물이 흐르는 듯했다.

  약 1시간 30분 만에 기차는 소주 역에 도착했다.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정오의 햇살 아래서 우리는 소주 시내를 걷기 시작했다. 새로운 여행지에서 낯선 풍경을 마주 대하며 또 다른 모험을 생각했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소주는 도시 전체가 아름다운 정원 운하 고건축물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 꿈결 같은 공간이었다. 실크로드와 운하를 따라 조성된 쑹장 정원의 아름답고 세련된 산책로 속을 천천히 거니는 시간은 우리를 행복하게 했다. 쑹장정원은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공식 등재되었다. 중국에서 정원 문화유산으로는 처음으로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장소로,  유네스코 위원회는 중국 고전 정원 설계의 걸작이자, 중국 문화와 자연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평가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또 있을까?’ 이 정원을 걷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위로를 받았다.


  중국 시인 소식은 그의 시 <금릉청벽루>에서


금릉청벽루에 오르다

푸른 하늘 구름 떠가고

맑은 물 흐르는 소주 풍경

천년의 역사 깊이 새겨져 있어

바라보노라 마음이 저절로 빠져들어

늘 푸른 언덕과 초록빛 물결

구름 속 멀리 그림처럼 펼쳐진 세상

세월 따라 변화하지 않는 아름다운 모습

시인의 영혼마저 사로잡네

산하의 경치 화폭처럼 눈에 들어오고

대자연의 신비로움에 마음이 들뜨니

천년 역사와 문화가 자연 속에 살아 숨 쉬는

소주의 풍경에 정신이 혼미해지는구나


   중국의 시인들은 소주의 역사와 풍경 세밀하게 관찰하고 그림처럼 묘사해서, 소주에 대한 깊은 애정과 동경의 마음을 유려한 문장에 담았다.

  

    소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음식이었다. 소주의 대표 요리 "양쯔리 수제비"와 "낙지 전"이다. 양쯔리 수제비는 잘 익은 소고기와 채소를 넣어 만든 전통 수제비 요리다. 육수에 부드러운 수제비 면발을 담그고, 고슬고슬한 소고기와 싱싱한 야채를 올려 먹는다. 시원한 음료수와 함께 먹으면 입안에 개운한 감칠맛이 돈다.

  낙지 전은 신선한 낙지를 얇게 저며 달걀물에 버무려 지진 요리다. 바삭한 식감과 달콤 짭조름한 맛이 특징인데, 소금과 식초를 찍어 먹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다. 이 요리는 소주의 전통 안주로 유명하다고 한다.

  이 외에도 소주의 대표 찐빵 "샤오롱바오", 담백한 "양꼬치", 매콤한 "마파두부" 등도 곁들여 먹었는데 맛있었다.           


  소주에서의 여행을 마무리하고, 우리는 항주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는 소주 시내를 빠져나가더니, 점차 시골로 들어섰다. 창밖으로는 평화롭고 단정한 농가와 넓고 푸른 구릉이 끝없이 펼쳐졌다. 때로는 파란 호수와 아름다운 강이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우리는 창밖 풍경에 푹 빠져 2시간 동안 달리는 차 안에서 피곤함도 잊은 채 또 다른 기대로 즐거웠다.     

  어느새 버스가 서서히 항주 시내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우리의 시선은 유명한 서호로 향했다.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서호는 거울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맑고 잔잔한 호수 표면에는 아름다운 정원과 전통 건축물들이 비쳤. 호수 주변으로는 화려한 색채의 정교한 다리들이 늘어서 있었고, 곳곳에 분수와 조각상들이 그림처럼 조화를 이루었다. 세상의 풍경이 아닌듯했다.     


 중국의 시인 백거이는 <서호를 추억하며>에서 서호의 아름답고 고요한 풍경을  이렇게 노래했다.


푸른 물결에 가을 달이 비추고,

모래 언덕에 봄 버들이 늘어졌네.

과거의 일들은 깊은 바다와 같이 멀어졌지만,

세월의 변화에도 호수와 산은 여전하구나.

이제는 드물어진 호숫가의 손님들,

해마다 여기서 강가에서 잠을 청하는 이들이 있다네.     


  백거이는 푸른 호수 위로 가을 달이 환하게 비치고, 물가에 봄 버들이 늘어져 있는 모습을 정겹게 그렸다.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아름답게 남아있는 서호의 모습에서 ,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도 자연을 누리며 여유롭게 살아가는 항주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고, 그들에게서 백거이의 모습이 엿보이기도 했다.     


   "와, 호수가 아니고 바다 같아요. 정말 크고 아름답네요. 푸른 물결이 햇살에 반짝반짝 빛나고, 주변의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다리, 분수까지 완벽하게 어우러져 있어요."     


 아내가 호수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호수 주변을 따라 걸으며 우리는 정교한 조경과 멋진 건축물들을. 보았다. 어디에 시선을 돌려도  아름답게 정돈된 풍경이 펼쳐졌다. 


  우리는 둘레가 약 15km 정도 되는 서호를 유람선을 이용해서 30분 정도 둘러보았다. 정식으로 보려면 1-2시간은 걸린다고 한다. 유람선 투어가 정해진 코스와 시간표에 따라 운영돼서, 주요 명소들을 한 번에 둘러보며  편안하게 경치를 볼 수 있었다.


  서호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은 구포, 링잉, 뤄신 등 대표적인 관광지들을 품고 있다. 보통 전기 카트로 이동하며 둘러보는데 최소 2-3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유명 사찰인 링잉사와 소룽탕, 그리고 황룡관 등의 명소들을 함께 방문하면 하루 정도의 여유로운 시간이 필요하다.     

  항주의 서호가 왜 중국의 3대 명원 중 하나로 손꼽히는지 실감했다. 맑고 큰 호수와 정교하고 풍성한 정원, 고풍스러우면서도 세련된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며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것 같았다.

   

   

   땅거미가 시나브로 내려앉자 마음이 편안해졌고, 우리는 항주 전시관과 박물관을 돌아보았다. 내가 항주의 매력에 푹 빠져 아련한 추억의 공간으로 항주를 기억하고,  그 후로 다시 찾은 이유도 항주의 밤 풍경 때문이다. 물의 도시 항주의 밤은 아름다웠다. 작은 규모의 전시관과 박물관이 호수를 따라 곳곳에 자리 잡았고, 물빛 은은한  조명을 밝히고 신랑을 기다리는 새색시처럼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시실 입구는 수채화빛 루미나르 조명으로 물들어 있어서 몽환스럽기까지 했다. 마치 시대와 경계를 넘어서는 빛의 세계로 발을 내딛는 듯한 신비하면서도 따듯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곳곳마다 은은한 불빛이 고풍스러운 건물 외부와 내부를 아름답게 밝혔다. 이  다채로운 조명과 서호 주변의 몽환적 풍은 여전히  잊지 못할 영상으로  억의 저편을 곱게 물들이고 있다.

   첫 번째 방문한 전시실에는 고대 도자기들이 정숙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은은한 조명을 받은 백자 항아리와 청자 꽃병들은 빛에 휩싸여 더욱 고아한 자태를 뽐냈다. 유물 하나하나에 스며든 역사의 숨결이 전시실 공기를 가득 채웠다.

  그 옆의 전시실에서는 수묵화와 문인화 작품들이 고즈넉이 걸려있었다. 화선지 위에 담긴 산수와 인물, 꽃들이 루미나르의 따뜻한 빛에 물들어 우아하고 품위 있는 모습으로 관람객을 맞이했다. 마치 천천히 피어나는 꽃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다.

  뒤편의 마지막 전시실에 조각품과 비단 공예  그리고 옛 서적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고대의 역사와 문화가 숨 쉬는 듯한 전시물들이 박물관의 저녁 빛 속에 잠겨 있었다. 이 모습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옮기는 내 마음속에는 아름답고 고즈넉한 항주의 그림이 새겨졌다.     


  "이렇게 아름다운 분위기 속에서 시대를 넘어서는 유물들과 다양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니, 감동적이에요."     


 아들이 작품마다 눈길을 머물며  말했다. 아름다운 자연과 고즈넉한 전시관, 박물관들을 언제나 찾을 수 있고,  풍성한 귀중한 문화재들을 누구나 볼 수 있게 배려한 항주의 마음이 향기롭고 따뜻하게 전해졌다.


  중국의 시인 왕안민은 항주의 장엄하고 아름다우며, 고요한 풍경을 다음과 같이 썼다.  


서호를 바라보며 장오에게 보내다

푸른 하늘 아래 수면이 넓게 펼쳐지고

백구 한 마리 홀로 날아다니네

아득한 하늘과 에메랄드빛 물결이

하나가 되어 펼쳐져 있구나

장쾌한 홍수가 밀려오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지만

꿈결에나 보이는 듯한 서호의 풍경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이로다

강산이 변하는데도 서호는

고요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천년 동안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있네

그 모습 보며 내 마음도 고요해집니다  

   시인은 서호의 정원을 거닐며, 푸른 강물과 푸른 산들이 조화를 이루며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항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시인 홀로 거니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머릿속에 그려졌다.     


   항주가 대대로 중국의 대표적인 견직물 생산지가 된 이유도 이 아름다운 도시의 자연환경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푸른 산과 맑은 강이 어우러진 항주의 지형은 누에고치 생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계절마다 변화하는 온도와 습도, 그리고 풍부한 수자원은 최상품 누에고치를 키워낼 수 있게 했다. 이렇게 생산된 고품질의 생사는 항주 일대의 방직공장에서 정교하게 가공되었고, 숙련된 기술자들의 손길이 더해져 화사하고 부드러운 비단이 탄생했다. 장인의 기술은 대를 이어 전수되어 항주 비단의 독특한 품질과 아름다운 문양을 만들었다고 한다. 황실과 귀족들의 사랑을 받으며 항주는 견직물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고, 중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그 명성이 높아졌다. 자연과 사람의 조화로 빚어낸 이 도시의 아름다운 면모는 오늘날까지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선명한 기억의 마침표는 현지 요리를 맛 보는 것이다. 소흥태호어(소흥 태호 호수의 생선)로 유명한 '송료첸'이라는 식당을 찾았다. 신선한 호수 생선으로 만든 탕수어와 소고기 요리가 정말 맛있었다. 지역 특산 채소와 버섯 요리들이 우리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생선이 싱싱하고, 채소도 신선해서 요리들이 정말 맛있어요,  가격도 이 정도면 적당하고요."     

  아내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는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호텔에 도착한 우리는 지난 며칠의 행복한 일정을 서로 얘기하며 여행을 되돌아보았다. 와이탄의 아름다운 풍경부터 소주와 항주에서 만난 천상의 경치와 맛깔난 요리, 그리고 우리를 매료시킨 중국 전통문화와 유물까지, 이번 여행을 통해 우리는 중국 동부 지역의 풍경과 문화의 매력을 마음속 깊이 담았다.      

 

   "오늘 하루 정말 재밌었어요. 멋진 풍경, 아름다운 박물관, 이렇게 다양하고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아들이 피곤해서 눈이 반쯤 감기면서 잠꼬대처럼 말했다. 그날 밤 우리 가족은  서호 주변의 아름다운 박물관 거리를 거니는 꿈을 꾸며 편안히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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