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에 뭉게구름이 그림처럼 펼쳐진 7월의 눈부신 햇살 아래, 비행기가 천천히 속도를 높여 활주로를 질주하다가 빨랫줄처럼 긴 사선을 그으며 힘차게 이륙했다. 창밖으로 항주 시내의 아름다운 모습이 서서히 멀어지더니 공항의 건물들이 모래알처럼 작아져 갔다. 비행기가 높이 올라가 수평을 유지하자 아득한 산악 지대와 끝없이 펼쳐진 농촌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구름을 뚫고 올라가는 동안 비행기 아래로 푸른 호수와 굽이치는 강이 땅 위에 긴 흔적을 남기며 시야에서 멀어졌다. 항주 시내가 손바닥 만하게 보인다. 이때 쯤이면 이따금 이런 생각을 한다. 저 작은 곳에서 더 가지려고 다투는 우리 사람들의 욕망과 맹목이 얼마나 부질없고 하찮은가? 이 작은 세상에 몰두해 있는 우리 사람은 언제 평안을 찾을 수 있을까?
비행기가 높이 올라가면서난기류에 동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잠시 긴장했다. 비행기가 안정을 되찾은 후에 창밖을 보니 아득한 산악 지대와 끝없는 초록의 물결이 이어진다. 온 세상이 푸른 하늘과 바다, 초록의 녹음, 두 가지 색으로만 칠해진 듯 단조롭다.
잠시 후에 바다가 모습을 드러냈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 위로 비행기가 속도를 내며 날아갔다. 약 1시간 30분 만에 청도 공항에 도착했다. 활주로 양옆으로 늘어선 소나무 숲이 보였고, 공항 건물은 깨끗하고 단정해서 한산해 보이기까지 했다.
공항에 내린 여행객들은 직원들의 친절한 안내로 신속하게 출국 수속을 마칠 수 있었다. 공항 주변으로는 아름다운 해안가와 푸른 소나무 숲이 펼쳐져 있었다. 규모가 좁은 백사장이 해안가를 둘러서 이어졌고 푸른 바다, 그리고 바닷가를 따라 지어진 유럽식 건물들이 시야를 사로잡았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이국적이었다. 중국이 아니라 유럽의 어느 한 도시를 지나가는듯 했다. 석양이 지는 바다는 붉은 물감을 마구 흩뿌려 놓은 듯 수채화 빛으로 서서히 물들어 갔다. 푸른 바다와 하얀 모래사장, 그리고 바닷가를 따라 늘어선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우리는 숙소로 가는 택시 안에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청도 여행의 설레는 첫 발을 내디뎠다.
잠시 후에 가파른 해변가 위에 우뚝 세워진 아담한 유럽풍 3층 건물에 도착했다. 건물 뒤로 파란 바다가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인터폰을 누르자, 훈훈한 미소와 함께 "어서 오세요"라며 주인 부부가 우리를 맞이했다. 50대 중반은 됨직한 둥글고 큰 얼굴에 살집이 있는 체격이 큰 남자와 작은 체구에 밝고 경쾌한 목소리를 가진 여자가 나란히 나온다. 한국사람이다. 주인부부의 안내로 집에 들어섰다. 세련된 유럽풍 인테리어로 잘 꾸며진 집 안의 벽면에는 각종 여행 장식품과 액자와 사진들이 빼곡히 걸려있었다.
"유럽풍 건물이지만, 한국 분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휴식 공간을 신경 써서 만들었습니다. 차를 마시면서 다른 분들과 얘기 나누며 잠시 기다리시면 저녁을 준비할게요."
안 주인이 웃으며 밝고 경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넓은 거실에는 이미 다른 한국 민박객들이 모여 앉아 차를 마시며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 집에 오시는 분들은 주로 한국 분들이에요. 서로 여행 정보도 공유하고 한국 소식도 나누면서 서로 인사 나누세요."
주인 부부의 안내로 우리 가족도 자연스럽게 그들의 대화에 끼어서 중국 여행의 경험들을 나눴다. 그리고 청도의 아름다운 바다, 명소, 맛집 정보를 서로 공유하며 여행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주방에서는 오랜만에 얼큰한 김치찌개와 구수한 된장찌개 그리고 지짐 냄새가 퍼져 나왔다. 우리는 넓은 거실에서 한상에 둘러앉아 주인 부부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한국 음식을 함께 먹으며 떠들썩하게 저녁 시간을 보냈다.
민박집 주변의 아름다운 청도 해변 풍경과 주인 부부의 한국인 특유의 정감 넘치는 분위기 그리고 거실 베란다 창가에 가득 찬 붉은 저녁노을과 넘실대는 파란 바다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청도는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더불어 근대 역사의 흔적이 가득한 도시다. 청도 해안가에는 유럽풍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해안선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는데, 청도가 과거 영국, 독일, 일본 등 외세의 점령을 받았던 굴곡진 역사의 현장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건축물들이었다. 1840년아편전쟁 이후 개항된 청도는 영국, 독일, 일본 등 세계열강들의 각축장이 되었다. 1898년 독일은 조차 협약을 통해 청도를 장악하고, 요새와 항구를 구축하며 그 지배력을 강화해 나갔다. 그리고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기회를 노려 독일이 청도를 완전히 점령했고, 1922년 워싱턴 회의에서는 독일의 권리가 일본에 양도되며, 청도는 장기간 일본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다.
이렇듯 열강들의 각축장이 되면서 청도는 문화와 건축양식, 경제 구조 등에 유럽과 일본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서양식 주택과 산업이 발달했지만, 한편으로는 외국 자본의 독점으로 사회, 경제적 불균형도 가져왔다. 청도항은 외국 상선의 주요 기항지가 되었고, 식민지 지배의 상징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래서 청도에는 유럽풍 은행, 저택, 교회 등이 줄지어 들어선 것이다.
청도의 매력은 단순히 그런 역사의 흔적에만 있지 않았다. 청도는 아름다운 자연과 맑은 물 그리고 포도와 와인, 맥주로 유명했다. 특히 매년 열리는 청도 맥주 축제는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행사였다.
우리가 청도를 방문했을 때 청도 맥주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청도 맥주 축제 장소를 찾았다. 세계 각국의 맥주와 전통 요리들로 가득한 축제 현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흥겹게 춤추며 축제의 열기를 만끽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음악과 춤을 즐겼다. 푸른 물결이 부드럽게 밀려드는 청도의 해안 절벽을 등지고 설치된 축제 장소는 규모가 매우 컸고,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이 축제의 즐거움을 누리며 떠들썩하게 몰려다녔다. 우리 가족도 관광객들의 흐름을 따라서 각 나라의 맥주 축제 부스를 방문했다. 부스마다 각 나라의 전통 복장을 한 사람들이 음악을 연주하고, 맥주 시음과 함께 즉석 공연도 하며 참가자들과 즐겁게 어울렸다. 매캐한 서로 다른 맥주 향이 코끝을 자극했고, 신나는 음악에 마음마저 들썩였다. 어깨를 들썩이며 흥겹게 춤추는 사람들과 어울려 우리도 어색한 표정과 몸짓으로 축제의 분위기에 참여했다.
어둠이 짙게 깔리면서 하늘을 수놓은 화려한 불꽃놀이가 시작됐고 모두들 기쁨의 탄성을 지르며 축제의 밤은 점점 무르익어 갔다.
한 부스에서 한국인 교민들의 모습이 눈에 띄어 찾아갔다. 그들은 한국 가요를 틀어 놓고, 노래도 따라 부르고 기타 연주도 했다. 우리도 같이 앉아서 청도에서 살아온 그들의 얘기를 듣고, 고국을 떠나 사는 사람들의 애환도 나눴다. 그들은 그들의 힘으로 세운 청도청운한국학교에 대한 얘기를 시작했다. 2006년 1월에 칭다오세종한국학교 설립 팀을 구성하고 초등학교로부터 개교를 시작했다. 당시 청도에 정착한 한국인들이 그들의 자녀를 위해 한국어 교육을 하고 전통문화 계승을 하기 위해 학교 설립을 계획했다. 청도에 사는 한국 교민들이 주축이 돼서 학교 건립을 위한 자금을 마련한 뒤에, 한국 정부의 재정적, 행정적 후원을 받아 2009년 8월에 지금의 학교로 이전했다. 그들의 긴 얘기 속에는 그간의 애환이 묻어났고, 자부심도 넘쳤다.
한국인은 해외 어디를 가든 어느 정도 삶의 터전을 잡으면 학교 먼저 세운다고 한다. 한국인의 교육에 대한 열정이 오늘의 한국을 있게 만든 힘이다. 청도청운한국국제학교도 이런 한국인의 열정과 땀의 결실이다.
조용한 산자락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이 학교에는 약 300여 명의 한국 학생들이 재학 중이었다. 교정은 깨끗하게 잘 정돈돼 있었고 교실과 복도, 다목적실을 돌아보면서 많은 사람들의 정성스런 손길이 스쳐갔음을 느꼈다. 교실의 벽면과 게시판만 봐도 선생님들이 학교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었다.
해외 한국학교는 한국어 기본교육과정을 바탕으로 현지에 필요한 교육과정과 외국어를 강화해서 글로벌 인재로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학교를 둘러보는 동안 처음 만난 우리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아이들의 밝고 활기찬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청도에서도 한국인 교민들은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이어가며 미래를 위해 자녀 교육에 힘을 다하는 모습을 보았다.
청도의 아름다운 풍경과 풍요로운 자연, 그리고 활기찬 축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근대 중국 역사의 단면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과거부터 공업 및 무역의 중심지였던 청도는 개혁개방 이후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루었지만, 환경오염, 물 부족, 교통 문제 등 도시화의 부작용을 겪고 있었다. 또한 주거난 등 젊은 층의 어려움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이처럼 청도는 역사적 영광과 현대적 애환이 공존하는 도시지만,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장기적인 발전의 청사진을 마련하느라 애쓰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푸른 산과 맑은 물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청도에 의외로 특별한 요리는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청도에 오면 꼭 먹어야 할 세 가지 음식이 있다고 하길래, 민박집주인 부부가 알려준 전통 음식점을 찾았다. 술을 먹지 않는 내게, 술안주로 최고라며 첫 번째 추천한 음식이 매운 바지락 볶음(라오차 오갈라)이었다. 칭다오 사람들에게는 '칭다오 맥주는 바지락 볶음과 같이 먹어야 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맥주와 궁합이 좋다고 한다. 신선한 바지락에 고추, 다진 마늘 등을 넣고 센 불에 볶아낸 요리로 바지락 본연의 맛과 매콤한 소스가 더해져 중독성 강한 맛을 낸다. 밥과 같이 먹기 좋았고, 음료수를 마시며 기분을 내보았다.
돼지갈비탕(파이구미판)도 좋았다. 칭다오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일상식으로 돼지등뼈를 간장 국물에 푹 끓여 밥과 함께 먹는다. 보기엔 감자탕을 연상시키지만, 우리의 갈비탕 맛에 가깝다. 각종 약재와 함께 넣은 육수는 짜지 않고,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다. 칭다오에만 천여 개가 넘는 파이구미판집이 있을 정도로 칭다오 이 대표적인 메뉴이다. 다음으로 어만두(위수이지아오)도 맛있었다. 만두가 유명한 중국, 그중에서도 칭다오는 생선소를 넣은 교자(물만두)가 유명하다. 특히 칭다오 근해에서 가장 많이 잡히는 삼치를 다져, 부추와 함께 삼치어만두를 즐겨 먹는다. 생선살을 넣어 맛이 담백하고, 고기만두와는 다른 풍미가 있었다.
우리 저녁을 맛있게 먹고 해안 산책로를 걸으면서 하루를 돌아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해는 저물었고 , 오렌지색 가로등이 환하게 밝혀진 해안 산책로 뒤에서 빛을 잃은 거대한 밤 바다의 검은 파도 소리가 음악처럼 리드믹칼하게 들려온다. 우리는 완만하게 긴 포물선을 그린 산책로를 30분쯤 걸어서 민박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