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방학이다. 드디어 본격적인 중국 여행을 시작했다. 가족들과 함께 T 시에서 시작해서 북경-상해-소주-항주-청도-홍콩에서 다시 T 시로 돌아오는 여행을 떠나기로 계획했다. 중국 지도를 펼쳐서 여행 동선을 그려 넣고, 교통편이며 숙소를 빼곡하게 노트에 메모하며, 가족들과 여러 날을 머리를 맞대고 연구했다. 돌이켜보면 ‘용감'했다. 초보 중국어 수준으로 10여 일의 일정을 가족과 배낭여행을 떠나다니. 2000년대 초반 중국은 여행 일정을 예약하기 쉽지 않았고, 게다가 호텔 숙박과 비행 일정이 예고 없이 취소돼, 현장에 도착해서 여러 번 당황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그런 여행은 하지 않을 것이다. 무지하면 ‘용감’하다.
T시에서 북경행 열차에 올랐다. 창밖으로 펼쳐진 광활한 평야와 작은 마을들이 아름답게 펼쳐졌다. 중국 땅이 넓다는 말을 실감했다. 끝없이 펼쳐지는 평야는 붉은 황토밭이었고 일하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대부분은 개간하지 않고 버려둔 땅처럼 보였다.
출발부터 창밖에서 눈을 떼지 않았던 아내는
" 끝없이 푸른 들판, 붉은 황토의 광야와 붉은 지붕의 집들이 조화롭네요. 한가롭고 여유로운 시골 풍경이 느껴져요."
드디어 북경역에 도착했다. 우리는 천안문 광장으로 향했다.
이 광장이 역사적으로 큰 사건이 일어났던 곳이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웠다. 1989년, 이 광장에서 학생들과 시민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거대한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무자비하게 진압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정확한 숫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소 수백 명에서 수천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 비극적인 사건 이후, 중국 정부는 강력한 통제 체제를 구축했다. 경제는 성장했지만 정치적 자유는 크게 제한되었다. 민주화 운동의 실패가 중국 사회에 미친 영향은 지대했던 것 같다.
천안문 광장을 천천히 걸으며, 나는 과거 이 자리에서 일어났던 참혹한 일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의 현장에 서 있다는 사실에 숙연해졌고, 그 비극적인 사건이 오늘 이 거리를 함께 걷는 중국의 청년들에게는 어떤 의미일지 묻고 싶었다. 중국이 민주화와 자유를 향한 길에서 이렇게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는데, 오늘의 그들은 얼마나 자유로워졌을까?
발걸음을 옮기자마자 우리를 압도한 것은 웅장한 붉은색의 천안문이었다. 마치 천장을 찌를 듯한 거대한 붉은 문이 우리를 압도했고, 그 너머로 펼쳐진 광활한 광장은 그 끝이 보이지 않아, 눈을 뗄 수 없었다. 거대하고 높이 솟은 문이 우리를 문 안의 세상으로 스며들지 못하게 가로막는 것만 같았다.
"아빠, 이 대문 정말 커요. 그리고 이렇게 넓은 광장은 처음 봐요. 중국이 이렇게 큰 나라라는 걸, 이 문만 봐도 실감하겠어요. “
아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천안문 탑에 올라 북경의 전경을 바라보았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황금빛 지붕의 웅장한 궁전 건물들과 첨단 고층 빌딩들이 한눈에 펼쳐졌다.
나는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와, 저 화려한 건축물들 좀 봐. 정말 멋지지 않니? 전통과 현대가 이렇게 거대하고 조화롭게 공존하는 북경의 모습이 부럽다. 우리 서울도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
자금성에 들어서자, 눈부신 황금빛 건축물과 섬세한 용 조각상들이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시원한 분수대의 물줄기가 하늘을 향해 솟구치며 춤을 추듯 솟아올랐다. 고요한 궁정 정원을 걸으면서, 무수한 시종들을 거느리고 날마다 이곳을 거닐었을 과거 황제들의 화려한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저녁, 우리는 북경의 대표적인 상업지구 왕푸징 거리로 향했다.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 많은 상점과 레스토랑들이 저녁 손님을 맞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우리는 북경 오리 구이를 맛보기 위해, 미리 알아 놓았던 전통 요리점을 찾았다. 주방에서는 이미 먹음직한 오리가 숯불에 천천히 구워지고 있었다. 그 짙은 향과 바삭한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리는 듯하더니, 드디어 금빛으로 번들거리는 오리가 상에 올랐다. 요리사가 날카로운 칼로 오리의 겉껍질을 능숙하게 벗겨내자,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오리 고기가 드러났다. 얇게 민 밀전병 위에 바삭한 오리 고기 한 점을올려놓고, 그 위에 파채와 오이채를 곁들이고 ,그 위에 건자두 소스, 춘장 소스, 매운 고추 소스 등을 취향에 맞게 적당히 올려서 먹기좋게 쌌다. 향긋한 소스에 적신 오리 고기를 한입 베어 물었다. 바삭한 식감과 깊은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그 고소하고 쫀득한 풍미에 여행의 피로도 잊었다.
"와, 이렇게 바삭하고 부드러운 오리고기는 처음 먹어봐요. 이 맛을 어떻게 내는지 정말 궁금하네요. “
아내가 다시 밀전병에 파채를 올려놓으며 말했다.
우리는 오리 고기맛에 푹 빠져 아무것도 생각지 않았다. 처음 맛본 전통 요리의 깊은 맛이 가족들의 입맛과 생각마저 사로잡은 것이다.
”이렇게 멋진 거리에서 전통 요리를 먹으니 정말 좋네요. 역시 여행의 즐거움은 먹는 거예요. 가족들과 함께하는 지금이 정말 소중해."
아내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북경 여행에서 우리는 중국의 얼굴을 보았다. 웅장한 역사와 아름다운 현대 문화가 어우러진 풍경 속을 거닐며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다. 이어질 다음 여행 일정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했다.
2000년대 초, 북경은 중국 개혁개방의 중심지였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려고 미국 유학 열풍이 일었다. 그들은 전통과 현대, 동서양이 공존하는 북경의 모습에서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었다. 우리는 역동적인 북경의 모습에서 중국이 더 빠르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일 아침은 또 어떤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