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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례자 Jul 27. 2024

기억의 저편에서

기억의 저편

기억의 저편에서


푸르른 자유의 추억

한복판을 걸어온 80년대

자욱한 담배 연기에 몸과 마음이 절어

정신마저 아득한 이문동 허름한 선술집에서

막걸릿잔을 돌리며 청춘과 짝사랑과 정의와 진로 문제로

우리는 때 묻지 않은 고민을

저마다 쏟아 놓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속물이 되는 일이 절대로 없기를

선량한 가슴을 멍들게 하는 일과는

전혀 관계없는 무언가를 위해 살자고

어깨동무하며 아무도 듣지 않는 노래를

목놓아 불렀다.

제멋대로 부르는 노래는

아무렇게나 비벼끈 담배 연기가 되어

긴 꼬리를 끌고 허공으로 퍼졌다.    


세월은 흘러 세상은 변하고

우리는 순수와 열정이 두려운

중년이 되어

느린 팔자걸음으로 다시 모였다.

궁금하지도 않은 처자식의 안부를 묻고

명함을 돌리며 세상살이로 노쇠해진

듬성듬성한 머리와 늘어진 배를 탓하며

되는대로 세상을 흠집 내고

근거도 없는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아련한 옛 추억을 더듬었다.

모두 내일이 없이 오늘을

먹기 위해 살고 있었다.     


이제는 아무도 목청껏

노래를 부르지 않았고

함부로 담배를 짓이겨 끄지도 않았다.

연신 울려대는 핸드폰 소리에 목소리를

낮추고 겸연쩍은 표정으로 서둘러

한 둘씩 자리를 비우고 나가 버렸다.   


오랜 세월이 흘러 되돌아온 곳

우리의 청춘과 순수가

싱싱하게 아우성치던 곳

풋풋한 가슴으로

서로의 눈 속에 한기를 느끼던 그곳에는

이제는 알 수 없는 노래들이

제멋대로 흘러가고

이국의 언어들로 치장된 건물들이

우쭐우쭐 들어섰다.     


하늘에 별은 아득히 멀고

차가운 저녁달은 어둠 속에 묻혔는데

누구는 동산과 연금을

누구는 자식 이야기를

또 누구는 은퇴 후의 건강 이야기를

제각기 떠들다가

떠들썩하게 손을 흔들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세월은 그렇게 가고

청춘도 이렇게 묻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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