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꽃들의 노래

by 순례자

숨은 꽃들의 노래


이렇게 예쁜 꽃들이 지천에

피었다 지는지 예전엔 미처 몰랐네.

하얀 목련과 붉은 장미

눈부신 꽃들이 피기도 전에 화단 발치에

복슬복슬 털을 가진 꽃다지

구석진 땅에 웅크린 할미꽃, 제비꽃

납작 엎드려 매서운 겨울을 나다가

따스한 봄볕이 쏟아지면

겨울잠 깬 벌들의 낮은 날갯짓에

금빛 꿀을 내어주고

생명이 기지개 켜는 봄소식을 전해주네.

성적의 프리즘을 통해 본 세상은

이층 피라미드

4퍼센트의 머리와 96퍼센트의 몸통

햇살 쏟아지는 시골 장터처럼

떠들썩하던 실에 성적표가 뿌려지면

한순간 정적이 흐르고 몸통들의 얼굴엔

침울한 그림자가 드리우네.

한 페이지 모난 인쇄 활자들이

천진한 새싹들의 숨통을 조이는 세상

이렇게 예쁜 꽃들이 지천에

피었다 지는지 예전엔 미처 몰랐네.

흙과 맞닿은 낮은 자리에서 핀 들꽃들이

일으키는 생명의 향기가 얼마나 조용히

우리 곁을 스쳐 갔는지

숫자로 줄 세워진 아이들

성적의 그늘 아래 잃어버린

그들의 이름을 찾아 불러줄 때

고개 숙인 꽃들이 깨어나 저만의 향기로

세상을 채우리

이 강토 가득 채운 들꽃 길을

종일 함박웃음 웃으며 함께 걸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