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늘 피해자가 더 감당해야 하나

신뢰가 무너진 자리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

by 아우리

지난주 한 방송사의 다큐를 보다가 마음이 오래 무겁고 속상했습니다.
수도권에서만 심각한 줄 알았던 전세사기가 이제 대전 같은 지방 도시들까지 번지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청년 피해자 비율이 75%에 달한다는 통계는 낯설지 않았습니다.

집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삶의 뿌리입니다. 그런데 그 뿌리가 한순간에 뽑혀나가고, 삶 전체가 흔들린다는 사실을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실감했습니다.

제 주변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서른이 넘어 어렵게 독립한 이웃집 아들이 전세사기를 당해, 온 가족이 함께 고통을 떠안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집 한 채의 문제가 아니라, 청춘의 계획과 희망이 무너지는 일이었습니다.


사기의 얼굴, 점점 교묘해지는 수법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를 흔든 사기의 얼굴은 너무도 교묘하고 다양합니다.
AI가 만든 가짜 목소리로 부모를 속여 돈을 빼앗는 보이스피싱, 사회적 기업을 사칭한 투자 사기, 청소년을 겨냥한 딥페이크 음란물 협박까지. 이제 사기는 단순한 속임수를 넘어 기술과 제도의 빈틈을 파고드는 구조적 범죄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특히 전세사기는 지방 도시에서도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임대인들은 가족 명의로 주택을 쪼개고, 법적 책임을 회피하며, 연락을 끊어버립니다. 피해자들은 보증금을 돌려받기는커녕 대출이자와 소송비로 더 큰 짐을 떠안습니다. 결혼·출산·일상까지 무너져 내리는 참담한 현실 속에서, “이건 단순한 돈 문제가 아니다”라는 말의 무게를 실감했습니다.


여전히 가볍게 다뤄지는 처벌이 남긴 그림자

그럼에도 사기 범죄는 여전히 솜방망이 처벌의 그늘 아래 놓여 있습니다.

법은 사기를 신체적 폭력이 없는 ‘경제범죄’로 규정합니다. 그래서 형량은 낮고, 피해 회복을 위한 합의만 이뤄지면 집행유예나 감형이 잦습니다. 실제 피해자가 전 재산을 잃고도, 가해자는 짧은 징역형이나 벌금으로 풀려나는 경우가 흔합니다.

눈물은 피해자의 몫이 되고, 가해자는 태연히 일상을 이어갑니다. 이것이 과연 정의일까요.

물론 처벌 강화만이 답은 아닐 것입니다. 임대차 보호 장치를 촘촘히 세우고, AI·디지털 범죄에 대응할 법적 장치와 수사 체계를 정비하며, 피해자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회적 지원도 병행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범죄의 무게에 걸맞은 징벌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그래야만 “정의는 살아 있다”는 최소한의 믿음을 우리 사회가 지켜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공정

사기는 누군가의 인식만으로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시민의식은 교육으로 천천히 키워갈 수 있고, 잘못된 제도는 고쳐나가면 됩니다. 그러나 사기를 마음먹은 이들에게는 반드시 그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법이 보여주어야 합니다.

사기 범죄의 대가를 피해자만 감당하는 사회라면, 신뢰는 사라지고 불신만 남게 될 것입니다. 그 불신이 쌓이면 공동체의 근간도 무너집니다.

결국 우리가 끝내 지켜야 할 것은, 사람을 속여 빼앗는 손보다 서로를 믿고 지켜내는 마음이 더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회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떤 선택을 통해, 피해자가 아닌 신뢰가 더 크게 남는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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