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불씨를 던졌을까

순한 얼굴 뒤에 숨겨진 분노를 보며

by 아우리

몇 주 전 네팔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겉으로는 SNS 차단이 원인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SNS 때문이었을까요.

유엔 임무 시절, 저는 네팔에서 온 파병 동료들과 가까이 지냈습니다. 늘 유순한 성품으로 매사에 감사하며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던, 온화한 미소를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얼굴 위로, 지금 거리에서 분노하는 청년들의 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 대체 무엇이 그토록 순한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았을까요.


불씨가 닿은 곳, 오래 쌓인 불평등

그 불씨는 SNS 차단이었지만, 불길은 이미 오래전부터 쌓여온 마른 장작 위에서 타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던 듯합니다.

네팔 정부는 26개 SNS 기업에 등록을 강제했고, 이를 거부하자 전면 차단을 단행했습니다. 가족과 소식을 나누고, 해외 송금을 확인하던 창구가 하루아침에 막히자 청년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분노를 지핀 진짜 연료는 따로 있었습니다.

특권층 자녀들의 사치가 SNS에 드러나며 불거진 ‘네포키즈’ 논란, 20%가 넘는 청년 실업률, 일자리를 찾아 매일 2천 명 이상이 해외로 떠나는 현실. 게다가 2008년 왕정 폐지 이후 16년 동안 총리가 14번이나 바뀔 만큼 극심한 정치 불안까지.

부패와 무능, 불평등과 좌절이라는 마른 장작이 가득했고, SNS 차단은 그저 마지막 도화선이었을 뿐입니다.


분노 너머, 희망을 지키려는 몸부림

시위대는 국회의사당과 정치인의 집을 불태우며 기득권의 상징을 향해 분노를 터뜨렸습니다. 정부는 결국 총리 사임과 SNS 차단 철회를 발표했지만, 젊은 세대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요구한 것은 단순한 제도 수정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 ‘새로운 미래’였습니다.

저는 네팔 친구들의 온화한 미소를 다시 떠올립니다. 그토록 순한 사람들이 폭력이라는 마지막 수단을 선택했다는 것은, 어쩌면 잃고 싶지 않은 최소한의 희망을 지키려는 가장 절박한 몸부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 남는 질문

네팔의 시위를 보며, 저는 문득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떠올립니다. 겉으로 보기에 아이들은 늘 해맑습니다. 큰 좌절이나 그늘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가끔, 값비싼 사교육을 받는 친구들과 비교하며 던지는 씁쓸한 농담 속에서, 저는 작은 불안의 그림자를 봅니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넘기지만, 그늘은 그렇게 조용히 아이들의 마음에 스며들고 있을지 모릅니다. 네팔 청년들의 분노가 그러했듯, 처음에는 아주 작은 불씨였을 테니까요.

그래서 더 다짐하게 됩니다. 아이들의 웃음 뒤에 숨은 작은 그늘을 먼저 들여다보고, 비교의 말에 담긴 불안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 불씨가 더 타오르기 전에 신뢰와 격려의 울타리를 세우는 일이야말로, 오늘 우리 어른들에게 남겨진 진짜 숙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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