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가 새어나가는 시대, 우리는 어디에 숨을까
얼마 전 SK텔레콤 유심 해킹 사고, KT와 롯데카드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까지 겹치며 우리의 정보가 세상에 마구잡이로 흘러 다니고 있다는 뉴스가 이어졌습니다.
저 역시 그 불안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몇 가지 보안 서비스를 쓰고는 있지만, 과연 이 정도로 충분할까 하는 의문이 늘 남습니다.
작년 전역을 앞두고 한 번쯤 해보고 싶던 ‘한 달 살기’를 발리에서 시도했습니다. 첫날, 공항 인근 꾸따 거리를 산책하고 숙소에 돌아왔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카드 결제 내역 알림이 왔습니다. 제가 손에 쥐고 있는 여행자 카드에서 수백만 원이 빠져나간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스팸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러나 카드사에 확인 전화를 넣자, 제 카드가 실제 결제되었다는 차가운 답이 돌아왔습니다. 카드는 분명 제 지갑 속에 있는데, 어디선가 보이지 않는 손이 제 삶을 헤집고 있는 듯했습니다.
카드사의 요청에 따라 일부러 오프라인에서 결제를 해보고 다시 기록을 확인했습니다. 그제야 ‘진짜 도둑맞았다’는 실감이 났습니다. 발리 경찰서에 찾아가 신고서를 작성하는 일은 더 낯설었습니다. 영어와 현지어가 섞여 의사소통은 자꾸 어긋났고, 경찰은 제 문제를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듯했습니다. 그날 밤, 숙소로 돌아오며 느낀 건 막막함과 외로움뿐이었습니다.
이후 카드사에 각종 서류를 제출했고, 현지 카드사 측에서 답을 주지 않아 제 부정 사용이 인정되면서 돈은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한 달은 돈보다도 신뢰와 안전감이 송두리째 흔들린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그때 가장 두려웠던 것은 돈을 잃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한 개인의 삶이 너무도 무력하게 방치될 수 있다는 절망감이었습니다. 카드사는 친절한 듯했지만 매뉴얼대로만 응대했고, 현지 경찰은 이방인의 문제에 깊이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에서 저는 홀로 서류를 챙기고 증거를 모으며, 스스로를 지켜내야 했습니다.
정보 유출을 막는 것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닙니다. 피해가 발생했을 때, 한 사람의 무너진 일상을 ‘사건 번호’로만 취급하지 않고 끝까지 함께 싸워주는 책임의 문제입니다.
한국에 돌아온 뒤 저는 습관처럼 해외 결제 차단을 걸고, 필요한 금액만 충전하는 체크카드를 따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카드가 지갑에 있어도 마음 한구석은 늘 서늘했습니다. 온라인으로 결제를 할 때면, 발리의 그 밤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결국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흩어지는 정보 그 자체가 아닙니다. 그 불안 속에서도 “내 삶은 안전하다”라고 믿을 수 있는 최소한의 신뢰입니다.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우리는 바다 위 작은 섬처럼 고립됩니다. 그러나 서로의 삶을 지켜주려는 울타리가 단단히 세워질 때, 비로소 두려움 속에서도 안심하며 걸어갈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는 이미 각자의 섬에 갇혀 있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그 섬을 잇는 다리를 놓는 일,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함께 시작해야 할 과제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