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저씨네 과일 가게
출장 간 일이 조금 일찍 끝나 한 시간의 여유가 생겼다.
이런 틈을 얼마나 노렸던가.
오늘은 드럼 레슨 받는 날, 먼저 출출한 배부터 채우자.
따끈한 메밀국수 한 그릇 깨끗이 비우고 근처 찻집에 앉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8일, 오일장 서는 날인가 보다.
주인은 나를 사랑하는지 조금 소심해 보였지만 하트가 그려진 라떼를 가져다준다.
평소 블랙보다 라떼를 더 좋아하지만 나름 콜레스테롤 낮추는 비결 중 하나로 진짜 가끔 아주 가끔
먹는다.
오늘 같이 요런 날, 라떼와 여유와 나는 한 몸.
넓은 창으로 여름 풍경이 들어온다.
커피점 바로 앞에 길거리 과일가게의 젊은 사장은 처음부터 이 일을 한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과일 담긴 소쿠리보다 비어있는, 기다리는 소쿠리가 더 많으니 오늘 장사는 안 봐도 비디오다.
아침에 장맛비 한소끔 쏟아진 터라 손님들 발걸음이 뜸했을 테고 지금은 농번기라 송장도 일어나기를 바라는 시절이다.
5시 30분쯤 유모차를 끌고 할머니 한 분이 자두를 가리킨다.
비닐봉지에 붉은 자두를 가격만큼 담는가 했더니 한 알 두 알 정을 채우는 과일 가게 아저씨.
그 후로 손님은 없다.
물을 마시거나 골프 연습 하는지 팔을 허공으로 휘두르거나 창밖 풍경은 여름 저녁으로 깊어간다.
라떼 하트를 아무리 마시려 해도 사랑은 늘 목구멍에 걸리는 가시였던지 그대로 컵 바닥에 찌그러져 있다.
혼자가 된다는 것,
때로는 많은 소음 속에서 떨어져 나와 자발적 섬이 된다는 말과 같다.
나를 들여다보고 멀리 눈을 두어 다른 사람을 풍경을 품는 일, 나이 들어가니 더 필요한 것 같다.
멈춰야 보이는 것은 비단 눈에 보이는 사물만이 아니다.
마음을 보아야 자신을 키울 수 있는 법.
식물만 물과 햇빛과 바람을 먹고사는 것이 아니다.
사람도 사랑도 당신이라는 이름도 이 모든 것을 먹어야 살 수 있을 것이다.
6시, 드럼 연습을 위해 건널목을 건너간다.
뜨거운 태양에 하루 종일 익다 못해 터져 버릴 너의 심장 같은 붉은 토마토 한 소쿠리
비닐봉지에 담아 같이 길을 간다.
그 아저씨네 과일 가게
다음 장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내가 와서 바라보고 있을 그 찻집 그 자리에.
*자발적 섬
이십여 년 함께 했던 인연들과 헤어졌다
굳이 내가 헤어졌다는 말을 내뱉는 것은
나를 담금질하기 위한 맹세 같은 것이다
미움도 원망도 불면의 모래시계마저 다 내려놓자
새들이 햇살이 바람이 찾아왔다
한때는 홀로 지낸다는 것은
섬처럼 외로운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스스로 섬이 된 지금 외롭지 않다
구름에 슬쩍 몸을 가린 저 달처럼
은근함이 있어 좋고
멀리 있는 것들이 그리워지고 궁금해져 좋다
다시, 어두운 밤길 환히 비추는
보름달 같은 둥근 시간이 오면
그땐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
새털구름이거나 위로나
한 줄 시이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