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럼에 빠지다
중년의 나이에 어딘가 몰두하기란 쉽지 않다.
집안일, 직장 일, 거미줄 같이 연결된 인연들의 하루를 보살피다 보면
초저녁에 곯아떨어지기 일쑤다.
그러니까 드럼과 맺은 인연은 겨우 5개월 째다.
코로나 오기 전 3개월 정도 다니다 코로나와 함께 취미도 접었었다.
다시 봄날이 와 그럭저럭 마스크 밖으로 얼굴을 내밀며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지만
드럼의 그 짜릿함을 잊지 못해 퇴근 후 뒤돌아볼 사이도 없이 연습실로 달려간다.
직장에서 그곳까지 30여분 걸린다.
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정말 활을 쏜 것처럼 빨라 의자에서 일어나면 속옷까지 흠뻑 젖어있다.
무언가 해냈다는 뿌듯함에 취해 집으로 돌아온다.
옷 벗을 시간도 없어 입은 채로 부엌에 들어서서 후다닥 저녁 준비를 하고
비로소 남편과 마주 앉아 한숨을 돌린다.
많은 일들을 도와주는 남편이 있기에 그럭저럭 견뎌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남들은 그런다, 왜?
바쁘게 사느냐고, 바쁘게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라 말하지만
부러움 반 시샘 반 대충 이런 반응들이다.
올해는 영어 일어 회화도 조금씩 매일 반복하고 있다.
그 틈에 기타도 좋아하는 독서도 함께 나누고 있으니 내 삶은 늘 충만하다.
남들과 어울려 사는 삶도 의미 있고 보람차겠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잘 영위하는 사람이
더 행복한 것 같다.
버리기 아까운 시간들을 모아 나를 만들어가는 모습은 베틀에 앉아 삼베 한 필을 완성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육십이 되면 모든 단체에서 물러나기로 예전부터 생각했었다.
쉰아홉 인 올해부터 모두 정리하고 소통의 창고 두어 개 정도 남겨두었다.
홀가분해서 좋다던 박경리 선생의 말씀처럼 나도 담백해서 좋다.
나이 들어 자주 자리에서 얼굴을 내보이던 선배들의 모양이
내 눈에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자연의 일부로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 꼭 산속으로 들어가 세상과
단절해야만 이루어지는 일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한 평 안에서 절제하며 단조롭고 조화로우면 이것이
최고의 선이지 않을까.
오늘 하루가 선물처럼 또 나에게 왔다.
화려한 드러머가 아니더라도 금세 외운 영어 문장 돌아서면 잊어버려도
할 수 있어 행복하지 않나.
잔잔한 음악이 새소리를 닮은 아름다운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