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송이 꽃
잎이 말랐다. 목마름이 깊었는지 고개 숙인 국화 화분이 눈에 들어온다.
방으로 이사 온 지 한 달 정도 지났으나 주인은 그냥 탁자 위에 놓인 커피잔이나 아이들 장난감이거나
책꽂이에 꽂힌 책들처럼 사물의 하나로 보았나 보다.
그러고 보니 어쩌다 청소하다 눈 마주칠 땐 스치듯 보았고 누군가 향기롭다고 하면 그때야 코를 갖다 댄 것이 꽃에 관한 관심이었다.
마른 화분에 충분한 물을 준다.
언제 어디로 들어갔는지 화분이 금세 말간 얼굴이라 다시 가득 물을 보충해 준다.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그 누구도 기대지 않고 저 홀로 피어 저 홀로 조용히 사라지는 꽃의 운명.
꽃이라는 이름은 사랑과 이별이라는 두 단어를 포개 놓은 것 같다.
사랑할 땐 활짝 핀 꽃이 되고 이별할 때 저무는 달처럼 어둡다.
언젠가 그 골목에서 보았던 꽃들도 그랬다.
사랑하는 사람과 보았을 땐 너무 눈부셔 감탄사를 남발했지만 혼자 돌아가는 길목에선
마음처럼 슬퍼 보였으니 말이다.
물기를 머금었다는 것은 사랑을 받았다는 것, 사랑받는 일은 곧 관심을 얻은 것이니까
꽃은 오늘 처음으로 누군가의 화살을 받은 것이다.
시간으로 초마다 빛나는 꽃잎을 보니 사람으로 태어나 관심을 받는 일도 사랑도
초마다 시간마다 해야 할 것 같다.
어느 할머니 집 대문에 나란히 피었던 붉은 닭 볏 닮은 맨드라미 두 송이가 생각난다.
지금은 겨울이라 까만 봉지를 쓰고 앉은 양철 대문 집의 수호신 꽃은
내년에도 한 사람의 지독한 사랑과 관심으로 붉고 붉은 꽃을 피울 것이다.
마른 가지에서 새잎이 돋아나고 있는 화분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외로운 한 송이 꽃일지라도 피워야지 그래, 사랑해야지.
속삭임이 물결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