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보이지 않는 압력

by 최성환

도진은 창가에 앉아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커서를 옮길 때마다 떠오르는 문서 제목들─. ‘RanksTrade_AI_Fund’, ‘랭스트레이드 펀드 최종 설명회 자료’, ‘RanksTrade_backtesting’. 모두 그가 미국에서 직접 설계하고 테스트했던 자동매매 프로그램 관련 파일들이었다.


미국 MBA 과정을 마치는 동안 도진은 월가의 고빈도매매(HFT, High Frequency Trading) 전략과 AI 알고리즘 트레이딩을 학습한 새로운 투자모델을 구상해왔다. 이미 회사 고유자금을 통해 실전 테스트에서도 국내 개인투자자 중심의 테마월 3~4%의 안정적인 수익률을 입증했으며, 주 시장에서도 충분히 적용 가능하다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한국 시장의 제도적 장벽이었다. 해당 프로그램을 금융 상품으로 출시하려면 투자자문사 등록이 필요했으며, 이를 위한 인가는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를 거쳐야 했다. 그는 지난해 말 관련 서류를 제출했지만, 수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로보어드바이저 테스트베드’라는 제도였다. 금융당국은 알고리즘 투자 프로그램의 신뢰성을 검증한다는 명목으로, 이 심사를 통과해야만 퇴직연금 등을 운용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하지만 그 심사 기준은 10여 년 전, AI가 아닌 단순 규칙형 모델이 주류였던 시절에 만들어진 낡은 규정이었다.

도진이 개발한 RanksTrade는 국내외 상장 주식의 매수·매도 타이밍을 AI가 스스로 판단하는 시스템이었다. 데이터 학습을 통해 매일 최적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내는 완전한 ‘자율매매 알고리즘’이었다.

“AI가 스스로 종목을 고른다고요? 그럼 위험관리 기준은 어떻게 되나요?” 심사원이 물었다.

“AI 내부의 판단 기준은 계속 바뀝니다. 학습모델이니까요.”

도진은 자신이 개발한 AI 모델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심사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그러면 안 됩니다. 기준이 바뀌면 리스크 통제가 불가능하다고 봐야죠.”

도진은 당황했다. 알고리즘 트레이딩의 핵심인 ‘학습’ 자체를 문제로 본다는 건, AI 투자를 전혀 모른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테스트베드 참여를 위해선 ‘포트폴리오에 일정 비율 이상의 채권과 ETF를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즉, 순수 주식형 전략은 심사 자체가 불가능했다.

도진이 설계한 RanksTrade는 100% 주식 기반의 단기 매매 전략이었기 때문에, 이 조건을 맞추려면 프로그램을 억지로 변형해야 했다.

“AI가 알아서 종목을 고르는데, 굳이 ETF를 끼워 넣어야 하는 이유가 뭡니까?”

“리스크를 분산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입니다.”

그는 할 말을 잃었다. 리스크를 분산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 테스트베드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종목을 늘리는 방법만을 채택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투자자 성향 판단 기준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다. 고객의 연령, 투자 경험, 재산 규모 등을 세밀히 설문한 다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심사 기준은 형식적인 나이대를 구분해 연령이 높을수록 무조건 보수적 성향으로 분류하도록 강제했다.

“나이가 많다고 다 보수적인 건 아니잖아요. 60대 고객이라도 투자 경험이 풍부하면 공격형일 수 있잖아요.”

도진은 심사관에게 항의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단호했다.

“심사 규정상 그렇습니다.”

도진은 심사관이 제시한 나이 기준 대신 미성년자와 고령층에 대해서는 가입을 제한하고, 실제 설문 조사를 통해 파악된 투자 성향을 반영하도록 재설계했지만, 심사관 측은 이마저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날 도진은 깨달았다. 지금 한국의 금융당국은 ‘AI투자’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그가 경험했던 미국의 시장은 달랐다. AI가 0.01%라도 더 높은 수익률을 내기 위해 매일 학습 데이터를 바꾸고, 모델을 개선했다. 그러나 한국의 테스트베드는 그런 발전 과정을 ‘불안정’이라며 금지했다.

‘이건 심사가 아니라 검열이야.’

결국 도진은 낡은 심사 기준에 맞춰 매매 프로그램을 왜곡시키느니, 차라리 시장에 나서지 않는 쪽을 택했다. 그는 회의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빌딩을 주시하다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심사관들의 책상엔 ‘AI 금융혁신’, ‘미래금융’이라는 슬로건이 붙어 있었지만, 실제로는 고작 ‘투자 성향 설문지’ 하나 바꾸는 데도 손을 내젓는 자들이었다.

그는 진절머리가 났다. 앞에서는 혁신을 운운하고, 뒤에서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관료주의. 질문을 던지면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았다.

“그건 기존에 심사하던 방식과 다릅니다.”

도진은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제도적 패악이라고 느꼈다. 게다가, 그 뒤에는 금융위원회 출신 장민혁의 그림자가 있었다. 그가 이창명 캠프에 합류한 직후부터, 도진이 제출한 자문사 인가 서류가 이상하게 지연되기 시작했고, 심사관들이 불필요할 정도로 까다로운 조건을 붙이기 시작한 것도 모두 그 시점과 맞물렸다.

직접적인 증거는 없었지만, 도진은 확신했다. 지난해 자신이 한국 주식시장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을 때부터 보이지 않는 손이 모든 걸 조용히 틀어쥐고 있었다는 것을. 그는 허탈하게 웃었다. 혁신을 하겠다고 돌아온 조국에서,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낡은 질서의 벽이었다.


이승민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그는 원래 대형 경제지에서 부장 승진을 앞둔 촉망받는 기자였다. 자산운용사 대표 인터뷰, 대기업들 실적 분석, 정부 정책 해설 ─ 한때는 시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필진 중 하나로 손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의 기사 방향이 바뀌기 시작했다. 기업이 아니라 ‘세력’, 실적이 아니라 ‘자금 흐름’을 추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기, 그는 도진을 처음 만났다.

처음엔 단순한 테마주 보도였다. 정치 테마, 바이오 급등주, 재무구조가 엉망인 종목에 갑자기 붙는 매수세. 표면상으로는 단타에 익숙한 개미 투자자들의 투기 같았지만, 그 뒤에는 이를 방치하고, 교육하려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그때부터 이승민은 비공식적인 감시 대상이 됐다. 처음엔 광고주가 빠졌다. 그다음엔 기사 승인 단계에서 ‘편집국 검토 보류’ 딱지가 붙었다. 또 기자단 회의에서도 이승민을 은근히 지적했다.

“요즘 너무 특정 세력 쪽만 파는 거 아니야? 금융위에서도 민감하게 본다더라.”

그는 웃어넘겼지만, 금세 알아차렸다.

결국 그는 “기자가 시장질서 운운하지 말라.”라는 윗선의 권고를 받고 사표를 썼다.

그 후 옮긴 곳은 중소형 온라인 경제지. 이름값도, 예산도, 기자단 네트워크도 없었지만, 적어도 이곳에서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기사를 쓸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판단으로, 세력을 추적했다. 자신이 추적하는 이 흐름이야말로 한국 자본시장을 망가뜨리는 진짜 중심이라는 것을. 몇몇 종목 뒤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페이퍼컴퍼니, 외국계 브로커를 가장한 국내 자금, 그리고 그들의 은밀히 교류하는 전직 관료들. 이승민은 단순한 주가 조작이 아닌, ‘제도 자체를 먹어 들어가는’ 하나의 기생 구조를 포착하고 있었다.

그 구조의 정점에 누가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도진이 제도라는 바위와 맞서 싸우고 있다면, 자신은 그 바위 뒤에서 실질적인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그림자를 쫓고 있다는 것을.


늦은 밤, 광화문 한복판의 허름한 선술집. 형광등 불빛은 흐릿했고, 술잔보다 노트북과 문서가 더 많은 테이블이었다.

도진은 낡은 가죽 노트북 케이스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스페이스코리아, 생각보다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 같던데 말이죠.”

“그러게 조사해 보니 4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갔어.”

“초기 이름은 ‘스페이스엔’. 위성 안테나 부품을 납품하던 대전 소재의 협력 업체였는데, 사업과 관련된 실적은 거의 없었어요. 다만 그때 대표이사였던 인물 중에─김상묵이라는 이름이 있었어요. 이번 스페이스코리아의 주요 주주 3명 중 한 명이고요.”

이승민이 고개를 들었다.

“그 사람, 나도 최근에 확인했어. 원래 카이스트 우주항공학과 교수였지. 논문도 꽤 있고, 사업과 관련한 주요 특허에도 이름이 올라가 있더라고. 마음 맞는 학생들하고 벤처회사를 하나 설립했었나 봐. 그런데 더 중요한 건─ 그가 거래소 기술특례 상장 심사 자문역이었다는 거야.”

“진짜요?” 도진이 되물었다

“응. 비상장 기술기업이 실적 없어도 상장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 그 핵심이 기술성 평가인데, 그 평가 위원단에 김상묵이 자문역으로 들어가 있었지.”

도진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자리에 그냥 들어갈 수는 없을 텐데….”

“못 들어가지.” 이승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찾아봤어. 그 시점, 자문단 인선 관련 내부 제안서를 봤더니 추천인 명단에 ‘이태훈’ 이름이 있었어. 이태훈이 거래소에서 일하고 있을 때잖아. 우리가 찾고 있었던 이름이지.”

도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이태훈이 김상묵을 거래소 기술심사 쪽에 자리를 만들어줬고, 메디센트릭스가 처음 기술특례 상장했을 때도 관여했을 테고, 이번에는 그 회사를 비히클 삼아서 아예 합병을 해버린 셈이네요.”

“지들이 싼 똥 지들이 치우는 건가? 기술특례로 상장한 종목이 셀리버리처럼 또 상장폐지되면 투자자들한테 역풍 맞을지 모르니까 막을라고?” 승민이 되받았다.

“아니요. 끝까지 투자자들 등골을 빼먹으려고 하는 거겠죠.”

도진은 노트북에 이렇게 적었다.


1. 김상묵과 이태훈의 연결고리, 기술특례 심사 자문위원

2. 메디센트릭스와 스페이스코리아 합병

3. 김상묵은 합병을 통해서 스페이스코리아의 주요 주주로 등재

4. 합병 과정에서 윈브릿지인베스트가 윈브릿지인베스트가 전환사채를 인수하며 자금 투입

5. 윈브릿지인베스트먼트와 이태훈이 대표이사로 있는 파인넥스트 파트너스 간의 공동 출자 리스트

6. 마지막으로 M증권 리포트까지


도진이 중얼거렸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 위에서 아주 정교하게 판을 짠 것 같아요.”

도진은 잠시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체크리스트를 훑었다.

“스페이스코리아를 직접적으로 파고들려면 구조를 하나하나 끊어내야 해요. 지금은 모든 고리가 추정이에요. 자문, 합병, 투자, 리포트. 다 그럴듯하게 연결되어 보이지만, 구체적인 것은 없어요.”

이승민은 팔짱을 낀 채 한쪽 어깨를 기대며 말했다.

“근데 그게 동시에 말해주잖아. 이건 단순한 연결이 아니라 ‘설계된 체인’이라는 거.”

“맞아요.” 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체인의 첫 고리─ 김상묵. 그는 기술성을 보장해주는 ‘브랜딩 역할’을 했고, 그걸 통해 여러 기술특례 IPO에 관여해왔지. 메디센트릭스와 스페이스코리아 합병은 우연일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윈브릿지인베스트먼트 자금과 연결된 것을 보면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 것 같고.”

“M증권이 리포트까지 쓴 것을 보면 합병이 되고 불안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애널리스트 생리를 잘 아는 도진은 의아해하며 말했다.

“원래 이런 종목 보고서 잘 안 쓰는데. 왜 이렇게 무리했을까.”

도진은 책상 위의 공시 프린트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신주 배정으로 김상묵 포함한 세 명이 스페이스코리아 지분 70%를 가져갔어요.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에요. 이 사람들이 실제로 돈을 챙기는 방식은 따로 있을 겁니다.”

“전환사채?” 이승민이 말했다.

“아니요. 그건 윈브릿지 몫이에요. 김상묵 쪽은 아마도 OO소재를 통해 자금을 회수했을 가능성이 높아요. 합병 발표 직후, OO소재 인수를 발표했잖아요. 그걸로 ‘사업 실체’를 부여받고, 실적도 어느 정도 확보했죠. 겉으로는 성장 전략처럼 보이지만, 사실 OO소재에 김상묵 지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도진이 모니터를 돌리며 덧붙였다.

“게다가 그다음에 나온 미국 기업과의 192억 원 수출 계약. 전년도 매출 대비 7배 규모예요. 그런데 그 계약의 상대방은 ‘비밀유지조항으로 미공개’라고 되어 있거든요. 이건 냄새가 너무 짙어요.”

이승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폰 화면을 켰다.

“나도 확인해봤어. 얼마 전 금융투자협회에 요청해서, 파인넥스트 파트너스와 윈브릿지인베스트먼트의 지난 3년간의 투자 종목 리스트를 받았거든. 조합 단위로 엮인 종목들까지 포함된 자료인데, 겹치는 기업이 꽤 많더라고. 조사를 더 해 보면 뭔가 더 나올 것 같아.”

도진이 깊은 숨을 내쉬었다.

“이 기자님 이거 잘 정리해서, 정민이랑 같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상의해보죠.”

“그래. 정민이는 우리와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을 테니까.”

두 사람 사이에 짧은 정적이 흘렀다.

밖에선 봄비가 빗줄기를 굵게 바꾸며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빗소리 속엔 묘한 긴장감이 섞여 있었다. 무언가가, 오래된 침묵을 뚫고 모습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의심’이 아니었다. ‘증거’의 형태로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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