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노동

가느다란 사랑은 끊어지기 마련이다

by 집안의 불청객

자신을 지급하고 일정한 대가를 받는 게 노동이라고 생각한다. 연애도 감정의 노동이다.


서로의 감정을 사고팔아 사랑이라는 대가를 받는다. 그 대가는 어쩌면 작게 느껴질 수도 많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기에 감정의 노동에 관한 대가는 불확실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그것에 추구하는 이유는 뭘까.


사랑이라는 감정 노동의 대가가 크게 바라길 때문이다. 이것이 확실한 이유는 물질적인 노동은 대가의 마지노선이 정해져 있다.


하지만, 사랑에는 마지노선이 없다. 시작과 끝 모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노동의 대가를 더 크게 바랄 수밖에 없다.


이것은 사람을 좀먹는 계기가 된다. 노동해도 아무 대가를 받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평생 노동만 해야 할 수도 있다. 그 사람한테 맞춰야만 한다는 압박감이 숨통을 조여온다.


그런데 사람은 이기적이다. 서로 감정 노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이 맞춰주면 그것은 당연하다고 느끼게 되고 그것을 노동이라 치부하지 않는다. 자신이 받을 수 있는 당연한 권리라고 믿는다.


그렇기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아도 노동은 계속된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럴 수만은 없다.


대가 없는 노동의 끝은 지침과 권태다. 사랑이라는 보상이 없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 점점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변하고 만다.


변한 모습은 곧 파업으로 이어지고 파업의 대가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에게 더 소홀해지는 부실 관리만 남게 된다.


그런데 만약에 한쪽으로 치우쳐 있으면 어떻게 될까. 자신만 노동하고 자신만 일하고 자신만 열심히 하면 어떨까.


그만큼 비참한 게 없다. 언젠가는 대가를 낼 거라는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얘도 내 진심을 알면 달라지겠지.


그러나 그딴 건 없다. 상대방이 원하면 더 원했지. 자기 보호적으로 나서 희생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다 자신이 지쳐 고개를 돌리면 말도 안 되는 말을 지껄인다.


“변했어.”


진작에 변해야 할 건 내가 아니라 너였는데. 쌓인 울분을 다 토로하는 것도 지겹다. 너는 끝까지 착하게 남아야 했고 이 굴레를 끊기 위해서는 내가 악역으로 남아야 했다.


“헤어지자. 우리.”


그러고 난 후 며칠은 다시 감정 노동의 시작이다. 퇴직금이라는 보상을 받기는커녕 대가 없는 노동의 결과물을 회수해야 한다.


여태까지 쌓여버린 받지 못한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바꿔야 한다. 그렇기에 다시 또 노동해야 한다.


받지 못한 것이 많을수록 고뇌하게 된다. 더욱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사소한 것 하나에도 과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애초에 시작하지 말 걸 이라는 가정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후회, 낭비, 고생뿐이다.


어떻게 이 시간을 보내야 내가 살 수 있을지. 아니면 그냥 죽어야 할지도 했다.


사실 살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죽고 싶지도 않았다. 시간만을 죽여야 했다.


흐르는 시간과 동일한 게 감정의 노동이었다. 나는 두 달 정도가 지나자, 감정이 조금씩 바뀌었다.


마이너스에서 플러스까지는 아니었지만, 0으로 만들게 되었다. 이 수치라고 말할 수 있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큰 일을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추억이나 미련 같은 것이 없어졌다. 가슴 속에 박힌 큰 유리 파편을 제거했다.


일상생활로 복구했다. 무엇을 하든 연락해야 했던 생활이 육 년이었기에 처음에는 적응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행동 하나하나 할 때마다 핸드폰을 집었고 일상생활이 힘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핸드폰을 거의 확인하지 않는다. 그녀의 SNS도 찾지 않는다. 묶여 있던 줄을 가위로 잘랐다.

모든 것이 좋아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0이라고 한 이유는 늘 사소한 것부터 시작된다.


그녀의 취향을 다 알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내가 하는 행동이 그녀에게도 맞추어져 있었고 그로 인해 쓸데없이 기억이 살아나기만 했다.


그럴 때마다 약간의 불쾌함을 느꼈다. 크게 거슬리진 않았지만, 지금까지도 내 안에 그녀의 흔적들이 남아있다는 게 싫었다.


나는 지금도 감정의 노동을 하고 있다. 그녀를 잊기 위해서 일부를 말이다.


그 일부는 괴롭다까지는 아니지만, 약간의 감정 노동이다. 나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썼던 그녀를 저주하며 말이다.


힘들었지만 이제는 달라질 것이다. 이제 완전히 잊을 때만을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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