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느다란 사랑은 끊어지기 마련이다
굳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쓸데없는 것도 아닌 이것도 저것도 아닌 감정이다.
한쪽만 챙겨도 둘 다 챙겨도 모호한 것. 그것이 양심이 아닐까 싶다.
양심은 과연 사랑만이 국한된 감정에서 파장을 일으키는 것일까.
정확한 것은 사랑에 있어서 양심은 아주 큰 파급력을 자랑한다.
양심고백이라는 말은 제일 싫어하는 말이다. 고백이라는 것 자체가 말 못 한 비밀이 있는 것이다.
그 앞에 양심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최소 좋지 않은 일이라는 건 확정이다.
양심고백은 우리 둘 다 했다. 당연히 좋지 않은 쪽이었고 마지막 양심고백이 우리를 갈라서게 했다.
갈라지고 나서 들은 생각은 양심은 숨겨야 하는 부끄러운 일종의 행위였다.
왜 숨겨야만 하냐면 그것을 들켰을 때 이로운 것 하나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 간의 관계도 자기 자신에게도 그만큼 독이 되는 것이 없다.
죄책감을 덜어낸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건 그 자체가 비문이다. 죄책감이 아니라 책임을 지우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용서하길 원하니까, 그럴 것 같으니까, 자신이 아닌 남에게 악몽을 선사하고 싶으니까.
그리고 고백하면 양심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되었다. 고백을 할 만한 일을 굳이 말해야 했을까.
말하지 않으면 둘 다 어쩌면 한쪽만 몰라도 계속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쓸데없이 어디서 본 건 있어서 머리는 나쁜 게 자기반성 탓을 하며 남에게 말한다.
"사실 말 할 거 있어. 나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그 말은 양심고백일까. 아니면 나에게 용서해달라는 강제적으로 구하는 용서인가.
무슨 말을 할지 잠깐 떠오르지 않았다. 죄책감은 나에게 이미 전가되었고 선택지는 하나였다.
헤어짐이었다. 갈라졌고 나뉘었고 이제는 볼 일 없는 사람이 되었다.
양심고백 하나로 서로 죽고는 못 살던 연인이 한순간에 없었으면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동안의 추억, 장면, 등 그녀와 관련된 모든 기억이 아름다움에서 추함으로 바뀌었다.
이것이 오랫동안 거쳐서 온 일도 아니었다. 그냥 그 순간. 아주 짧은 순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눈물은 강제 용서를 나타냈고 터질듯한 심장은 죄책감 전가였다.
그녀가 이런 것을 계획했다면 뜻대로 아주 잘 풀렸다.
내 탓만 한 채로 술을 들이켰다. 그 상태에서의 술은 정말로 잘 들어갔다.
강제적 용서와 전가된 죄책감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일을 할 때는 맨정신이어야 했다.
차라리 나도 양심고백을 할 걸 그랬다.
너에게 통제받는 게 싫었고 야구장 가는 것도 싫었다고.
덥고 습하고 통제도 이해되지 않는다고.
근데 이렇게 나열하고 나니 내가 더 구차해지는 것 같다.
마치, 내게 돌아와달라고 울부짖는 절규 같다.
지금 와서 그때로 돌아간다면 엄청난 양심고백은 아닐지라도 상처를 안겨줄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내게 마지막에 아주 큰 흉터를 내고 떠났으니까.
헤어짐을 말하던 그 자리에서도 그녀가 선물한 지갑, 덜 냄새나는 담배 등 흔적이 남아있었다.
모든 것을 버려야 했다. 담배도 바꾸고 지갑도 새로 사고 그래야 했다.
양심고백 하나로 뒤바뀐 점은 무궁무진했다. 가끔 잊고 있었던 흔적이 방에서 튀어나올 때도 있다.
하지만 교훈 하나를 얻었다. 거짓말은 선도 악도 아니라는 것. 그저 필요성에 따라 둘 중 하나의 성질을 띤다는 것.
그리고 그 성질은 대부분 악보다는 선 쪽으로 많이 치우쳐있다.
자신을 과시하거나 과장하는 건 결과로써는 악이지만, 순간적으로는 선이다.
그런 행동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관심을 사고 환심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철저한 거짓말이라면 양심고백을 끝까지 할 필요가 더더욱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적어도 나에게 선이니까. 그리고 믿어준 사람들에게도 선이니까.
악의 경우는 결과치에 관한 값이 대부분이다.
그 선을 들켰을 때 되돌아오는 결괏값 즉, 진실은 악에 불과하다.
앞으로 양심고백 같은 그런 쓰레기 이따위 내 인생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양심이 있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선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악이 언제 올 지 모르는 것뿐이다. 그런데 그 악이 그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것도 아니다.
'속은 사람 잘못이지'처럼 진짜로 그렇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