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느다란 사랑은 끊어지기 마련이다
최악의 상황, 최선의 상황을 언제나 생각해야 했다. 그것을 미리 대비해야 돌아오는 값이 적을 테니 말이다.
최악의 상황에는 실망감이 적어야 했고 최선의 상황에서는 최소한의 행복만 바라야 했다.
왜 이런 극적인 선택을 하게 됐을까. 이미 서로에게 무엇을 바란다는 게 부담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지 않을까.
미리미리 준비하라는 말이 듣기 싫었다. 자기는 준비하지 않으면서 왜 나는 그것을 대비해야 하는가.
미리 대비해야 하는 마음이 얼마나 부담되었는지 그녀는 알까. 아니, 모를 것이다. 안다면 그렇게 행동할 리가 없으니까.
언제나 감정을 떠넘겼고 통해져 나온 감정의 배설물은 미리 대비할 수 없었다.
그때그때 바뀌는 감정들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었고 또한, 대응한다 해도 그녀의 비위에 맞추기 힘들었다.
시도때도 없이 바뀌는 감정, 행동에 그녀는 언제나 미리 대비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그런데 내가 그런 태도를 보이면 서운해했고 화를 냈고 정제되지 않은 감정을 배출했다.
그때 나는 그런 대접을 받는 데 익숙해져 있었고 무뎌져 있었다. 그래서 사과하는 쪽도 나였고 잘못된 쪽도 나라고 믿었다.
그렇게 긴 세월이 흘렀다. 미리 대비해야 하는 쪽은 고역이 따로 없었다.
사실상, 대비해야 한다는 건 선택이 하나라는 말이었다. 그렇기에 사랑이라는 포장으로 자유를 잃었다.
물론, 서로 사랑하면 포기해야 하는 것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고 나만 무언가를 내놓아야 했다.
지쳐갈 때 나도 변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이것이 부조리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미리 대비하지 않고 그냥 내 감정들을 배출했다. 서운함, 분노, 아쉬움 등을 말이다.
그때 보인 눈물은 무엇일까. 왜 내가 잘못한 사람이 되었을까. 이것도 미리 대비해야 했을까.
그녀가 울 때 이제는 달래지 않았다. 한숨을 내쉬고 반대편으로 돌아서서 내 갈 길을 갔다.
그녀는 붙잡지 않고 이 관계를 파멸시킬 만한 말을 꺼냈다.
“가면 나 이제 너 안 봐.”
이 상황에서까지 협박했다. 마음은 그러지 않을 수 있어도 그 말이 쉽게 나올 리가 있는가.
문제는 그 말이 나오자 다시 고개를 돌린 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놓아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어쩌면, 그녀는 이 상황에 미리 대비한 말을 꺼냈을 수도 있었겠다 싶다. 내가 돌아볼 걸 알았고 결국, 자신한테 묶여 있는 걸 알았을 테니까.
너는 언제나 감정이 담긴 말들을 내게 말했다. 미리미리 그 말들을 예상하고 강제된 선택의 말을 나는 내뱉어야했다.
사랑에 관해 비관적이게 된 글을 쓰는 걸 네 탓을 하지는 않겠지만, 나를 이렇게 바꿔버린 건 너의 일부가 내 안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미리 대신에 지금을 살려고 한다. 사랑이라는 포장지를 벗기고 자유를 되찾았다.
지금 나는 자유롭고 불행하지 않다. 사랑을 비관적으로 생각하게 됐지만, 그것을 나쁘다고 보지는 않는다.
미리 대비하지 않겠다. 특히, 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서 말이다.
그 누군가는 사랑이라는 말로 미리 묶여 있는 밧줄에 나를 감금시킬 사람이다.
누군가에게 엮이지 않고 자신만을 위해 살아볼 때가 된 것 같다. 미리 뭘 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내게 미리라는 말은 끔찍한 상황의 연출이었고 그것을 통해 감정 소모만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차츰차츰 하나씩 되찾아야겠다. 빼앗기고 훔쳐지고 잃어버린 지금의 상황을 말이다.
그것을 하나씩 되찾는 것도 과연 미리 대비하는 걸까 싶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미리가 아닌 지금을 위한 미래다. 과거를 지나친 현재가 아니라, 현재를 위한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지금 글을 쓰는 와중에도 이것에만 집중하고 싶다. 다른 잡념들은 떨쳐버린 채로 말이다.
다른 것들은 신경 쓰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하고 싶은 것이 있는 나니까.
누군가에게 막혀서 밝히지 못한 현실을 다시 파묻고 싶지 않다.
이제는 발굴만이 남았다. 어딘가 묻혀있는 나의 손가락부터 몸통까지 되찾아야 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말은 자신을 파묻는 것과 같다.
희생해야 하지 말아야 할 걸 희생하고 모든 것을 주는 모습을 본 나는 이제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발굴하고 찾고 밝혀내야겠다. 그게 미리에게서 벗어나는 결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