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투정

가느다란 사랑은 끊어지기 마련이다

by 집안의 불청객

한쪽은 받아주고, 들어주고, 실행하는 일방적인 관계는 아니었다.


서로 좋고 싫음을 표현할 수 있는 나이였고 당연히 그럴 수 있었다.


어느 부분에서 화났는지, 짜증을 느꼈는지 그것도 사실 다 알았다.


그럼에도 서로 뜻을 굽히지 않았다. 맞춰주고 이해해주는 개념이라는 게 없었다.


사랑이라는 타이틀로 교묘하게 포장하여 자신의 감정 이득을 얻는 게 목표였다.


고되고 힘든 작업 끝에는 보상이 온다고 했지만, 이것은 보상이 없었다.


그저 고되고 힘든 작업뿐이었고 정신적 스트레스만 늘어갔다.


감정 노동이란 말도 아깝다. 노동은 보상을 받으니까 말이다. 보상도 받지 못하는 착취당하는 감정 노예가 맞는 표현이었다.


투정은 더 심했다. 자신도 억지인 걸 알고 이기적인 걸 안다. 그런데도 그렇게 하길 원한다.


나도, 그녀도 처음에는 사소한 것 하나쯤은 넘어갔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거슬렸다.


그런 부분을 굳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없는데도 투정을 부렸다. 조그마한 부분을 잡고 길게 늘어뜨렸다.


여태까지 맞는 척을 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투정은 계속해서 존재했다.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다.


초창기에는 좋아한다는 마음만으로도 모든 걸 감내할 수 있다는 듯이 행동하다가 사랑이 식고 정만 남으면 슬슬 하나씩 무언가가 올라온다.


마음속 깊이 내재하여 있던 이기적인 사고와 본능이 앞서게 되고 화를 내기는 모호하니 투정을 부린다.


차라리 화를 내고 싸우고 깔끔하게 결말을 마무리 짓는 편이 훨씬 나았다.


모호한 태도에는 모호한 대처밖에 남지 않는다. 투정이라는 단어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화보다도 못한 단어다.


마무리도 짓지 못하고 서로 기분은 상하고 잔 상처만 남는다. 그 잔 상처는 약간의 아주 작은 흉터가 새겨진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처럼 흉터는 점점 많아지고 눈에 보일 정도가 된다.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마음은 상한 지 오래다. 상한 마음은 있던 정마저도 서서히 가라앉힌다.


더 이상 투정을 참지 못할 때 한 번에 울분을 토해낸다. 쌓여버린 미움은 용기를 내게 한다.


용기를 낸다는 게 매우 중요하다. 그다음의 결과를 알면서도 그런 행동을 실행하는 거니까.


결과는 알다시피 쌓여버린 미움을 토해내어 다툼을 초래하고 서로 조금씩 균열을 일으킨다.


처음에는 비 온 뒤에 땅이 굳는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땅이 아니라 콘크리트처럼 갈라진다.


콘크리트 기둥 사이로 식물이라는 감정의 잔여물이 파고들게 된다.


균열은 점점 더 벌어지고 식물은 쑥쑥 자란다. 그러다 두 갈래로 나눠지고 그게 이별의 원인이 된다.


어쩌면, 이별의 원인이 아닌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신기한 건 두 갈래로 나눠지는 순간 식물은 자신을 지탱할 기둥이 없어진다.


그 말의 뜻은 감정의 잔여물이 점점 말라가며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비가 올 일 자체가 사라진다. 식물은 말라 죽으며 두 개의 기둥만 남게 된다.


기둥은 서로 반대 방향을 바라보게 되고 철거당한다. 콘크리트 기둥은 이제 건물을 지탱하는 게 아닌 그저 쓸모없는 쓰레기가 되어버린다.


하나일 땐 고귀한 감정이라고도 불리지만 둘이 되면 하찮은 쓰레기에 불과하다. 그게 사랑이었다.


작은 핀잔, 투정 하나가 나비효과처럼 허리케인을 불러일으킨다.


아직도 기억나는 투정이 하나 있다. 연락에 관한 집착이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반겨주는 말투가 아니었다. 졸음을 참아가며 연락하는 나에게 화를 내며 공격적으로 말했다.


그런 투정 때문에 더욱 졸음을 참기 힘들었다. 전화를 끊고 싶고 대화를 이어 나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쏟아지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그냥 자버린 날이 있다. 그녀는 그사이에 내게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았다.


일종의 시위 비슷한 투정이었다. 자신의 기분이 상했으니 빨리 조치하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나의 처지로서는 그렇게 하기 싫었다. 나 또한 연락하지 않았고 투정을 부렸다.


투정 두 개가 맞물렸을 때 나사가 돌아갔다. 피가 돌아 뜨거운 심장이 아닌 기계적인 심장이 돌아갔다.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시작한 우리는 갈라진 기둥을 택했고 곧장 쓰레기장으로 들어갔다.


폐기된 기둥은 매립되었지만, 바로 썩지 않았다. 그러니 썩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투정 부릴 사람도, 투정을 부리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원래 쓰레기였던 것처럼 형태도 알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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