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세상에 넘쳐흐르고 가치 없는 것 그리고 주변에 널려서 굳이 찾아야 할 필요 없는 것. 그게 흔한 이라는 단어의 정의인 것 같다.
그런데 인간의 삶에서는 그 흔한 게 매우 중요한 것처럼 작용한다. 남들과 비슷한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
흔한 삶이다. 튀어나오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그런. 흔하지 않다는 건 평범하지 않다는 거였다. 그리고 그건 모난 돌이라는 증거였다.
흔한 삶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한글을 배울 때도 울었고 학교에 가서는 왕따를 당했다.
남들 눈에는 이미 평범함과 거리가 있었고 그대로 흔한 사람에 끼지 못하게 되었다.
사회에서는 툭 튀어나오는 건 특별함을 자랑하는 게 아닌, 모두의 표적이 되는 씹을 거리였다.
다들 내게 하는 말 중 공통적인 부분이 있었다. 그 부분은 당연함을 인지하기 힘든 나에게 큰 상처였다.
‘이게 어려워?’
‘남들도 다 하잖아.’
쉽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걸 하지 못했다. 남들이 먹지 않는 약을 먹고 남들이 겪지 않는 불안과 우울에 시달려야 했다.
불안과 우울은 내 미래에 어둠을 내리게 했고 발전 가능성을 차단했다. 감정에 먹히는 괴물과도 다름없었다.
괴물이 된 나를, 자해한 나를, 피를 흘리는 나를 거울에서 바라볼 때 한없이 무기력감을 느꼈다.
남들이 하지 않는 걸 했고 남들이 하는 걸 하지 못했다. 나는 이 사회 속에서 남들의 감정을 갉아먹는 문제아였다.
문제아라는 타이틀을 떼기 위해 노력이라도 해봤냐는 질문들이 쏟아진다.
근데 내 노력은 남들에게 보여질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당연시하게 가지고 있는 것 중 하나였으니까.
웃음을 따라 지어야 했고 마음속으로는 울어야 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했고 고독을 느껴야 했다.
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노력을 계속해서 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았다.
이마저도 포기해야하나 싶었다. 갈팡질팡한 마음가짐 중에 누군가 강한 주먹을 날렸다.
‘난 널 이해할 수가 없어. 뭐가 아프다는 거야?’
이해할 수 없는 세계, 나와는 다른 사람, 가까이 둬서 좋을 게 없는 사람, 비밀로 해야 할 문제를 가진 사람. 그게 내가 노력해도 붙는 꼬리표였다.
꼬리표가 붙었고 뗄 수가 없었다. 아니, 떼려고 노력해서 흔한 척이라도 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건 나만의 착각과 오만이었다.
꼬리를 자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도마뱀처럼 자른다고 다시 새롭게 자라나지 않는 인간이었다.
그리고 자르는 방법도 어디까지 잘라야 할지도 몰랐다. 내 인간성을 죽이고 사회성을 기르는 방법인가, 전부 도려내서 없애야 하나 싶었다.
나로서의 나를 잃는다면 사회 속에서 흔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그걸 나라고 부를 수 있을까.
깊은 생각에 빠진다. 나를 잃고 사회 속에서 흔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이대로 결점이 있는 모난 돌이 맞는지.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사회 속에 섞인 평범함을 좇아가는 것이냐 아니면 자아의 실현이냐.
그 둘 사이에서 꼭 하나만을 선택해야 했다. 회피도 도피도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에 취미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은 자아의 실현이라는 원동력이 되었다.
스스로 인정하고 느꼈다. 위험성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사회와 멀어지고 친구를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며 담배가 늘었다.
나는 나의 세계에 갇혀 나오지 않기로 했다. 틀을 정하고 그곳에서 살기로 했다.
나만의 왕국을 세우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만, 그 왕국에서 나가야 하지 않으며 주변을 둘러보면 안 된다.
그 두 가지를 지키지 않을 때도 있지만, 잠깐의 일탈일 뿐 다시 원래로 돌아오게 된다.
밖에 나갔다 돌아오면 새로운 경험을 한다고들 하지만, 내겐 그런 것들은 없었다.
밖의 사회는 흔한 이라는 단어로 포장된 경쟁과 비난이 섞인 냉철함만이 존재했다.
나는 죽기 싫었다. 살고 싶었다. 방법이 잘못되었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누군가에게 손해를 끼친 데도 짐짝이 된다 해도 살아가야 한다.
흔한 삶은 포기했다. 아니, 이룰 수 없는 높은 곳에 있었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도 보지 마라.
내 시선은 언제나 남들이 보이지 않는 아래로 내리깐다. 내가 살아가는 건 흔함에 벗어난 모자란 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