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심연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by 집안의 불청객

그곳으로 끌려 들어간다. 어둡고 축축하며 차갑고 배고픈 심연으로 말이다.


왜 여기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내가 여기 있어야 할 이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도망치려 발버둥 칠수록 빛은 멀어져만 갔다. 이윽고 완전한 암흑이었을 때 나가기를 포기했다.


아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탈출에 관한 긍정은 부정으로 바뀌고 이윽고 그것은 나를 부정하게 만들었다.


부정이 하나씩 늘수록 더욱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었다. 나갈 궁리조차 하지 않았다.


어차피 어둡게 변질된 것이니까, 조금 더 어두워진다고 바뀌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건 큰 착각이었다. 심연에도 깊이가 있었다. 똑같이 빛이 들어오지 않는 장소여도 회생 가능성은 달랐다.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가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끌려가고 있음을 인지해야 했다.


화가 났고 짜증이 몰려왔다. 분노는 어디에 표출해야 할지 몰랐고 짜증은 마음속에서 삭혀만 갔다.


폭발하는 날이 가끔 찾아왔다. 그럴 때면 기억을 잃거나 환상에 살았다.


환상은 꿈과 현실의 뒤섞임이었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지만, 나에게만 존재하는 그런 것이었다.


현실 지도를 펼치면 사람들이 사는 곳이 나온다. 그곳에 나는 없었다. 믿는 사람이 있고 믿지 않는 사람이 있는 환상 같은 사후세계에 머물렀다.


지정된 선이라는 기준에서 넘지도 안에 있지도 않았다. 나는 선 그 자체였다.


차라리 그 선을 넘었으면 편했을지도 모른다. 잠시의 고통이 따르지만 견뎌내면 또 다른 이상이 있을지도 모른다.


내 존재가 잊히고 슬퍼하는 이들이 줄어들고 기억에서 사라진다면 심연의 끝에 도달해 이제는 내려갈 곳이 없어 한시름 놓았을 수도 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심연의 끝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삽을 들고 계속해서 내가 땅을 파며 내려갔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정답은 뭘까.


죽은 뒤에도 남김없이 사라지는 그러니까, 흔적조차 없게 되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닌 걸까.


흔적은 기억으로 남고 기억은 추억으로 남는다. 가슴속에 깊이 묻는다는 말이 있다.


나는 죽어도 누군가의 가슴속에서 추억으로 남는다. 그런 순간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아니다.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내 기억에서 없어지면, 이미 떠나버린 것이다.


죽음이라는 심연에 왜 무섭고 겁이 날까. 단순히 죽을 때의 고통 때문은 아니다.


그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다.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끝이 아닐까 봐.


더 두려운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다는 인지 때문이었다. 그 인지조차 더 내려가는 심연인가. 제대로 판별할 수 없다.


일단 내 기준에서의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단어를 바꿔야겠다. 다르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니 틀렸다가 맞겠다.


모자란 부분이 있으면 그걸 채워줄만한 다른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근데 나는 그게 없다.


모자라기만 한 사람은 부족하다. 늘 무언가를 갈구하지만, 그럴 때마다 자신의 한계치만을 알아갈 뿐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피폐해지고 자신감도 없고 내가 지정한 틀에서만 살아간다.


어이없게도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이 과연 맞나 싶다. 애초에 낙원이 있을까.


나쁜 곳과 더 나쁜 곳만 있는 게 아닐까. 어느 곳을 선택하든 둘 다 고통스럽기만 하다. 물론 이 고통이 다르게 작용하는 예도 있다.


고통은 보상을 낳는다. 사람의 심리상 힘든 일이 거쳐 가면 뭐라도 성과가 있어야 하지 않나 싶은 마음이 있다. 보통의 사람은 보상을 얻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보상과 성과가 없는 고통이 오면 그것을 부정한다. 아니라고 내가 원한 건 이게 아니라고. 우리는 그걸 완전한 실패라 부른다.


실패는 실망이 되고 실망은 도전에 두려움이 된다. 그 두려움은 삶의 의미를 퇴색시킨다.


퇴색된 삶은 살아갈 방향, 이유, 목적을 제시하지 못한다. 그렇게 서서히 심연에 빠져든다.


심연은 말 그대로 깊은 못이다. 깊은 물웅덩이가 아니어도 모두가 물에 잠기면 숨을 쉬지 못한다.


우리는 모두 하나씩 심연을 가지고 산다. 아니라고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모두가 고통을 가지고 있으니까.


우리는 어쩌면, 모두 심연에 잠식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부정하는 순간 내 삶이 무너질까 봐. 하지만, 이미 그렇게 생각하는 당신은 빠져들고 있다.

이전 10화10. 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