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각자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by 집안의 불청객

각자라는 단어는 어디서 나온 걸까.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는데 왜 이런 단어를 무너뜨리는 각자가 있을까.


각자는 이중성을 포함하고 있다. 자기가 좋을 땐 멋대로 자기가 싫을 때도 멋대로 쓰인다.


자신이 힘들면 같이, 함께라고 말하며 조금이라도 이득을 취하려 한다.


그러나 자신이 좋은 일에는 남을 끌어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때 각자 살아야 한다는 잣대를 놓는다.


그 이중성이 너무 싫었다.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그런 당연한 이치지만, 너무나 싫었다.


그게 싫은 이유는 내가 매일 좋지 않은 상황에 놓여서 기댈만한 누군가를 찾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나에겐 좋은 일이라는 건 없었고 기차처럼 앞의 불행이 출발하면 뒤로 줄줄이 소시지처럼 따라왔다.


그래서 각자라는 단어가 싫었다. 그런데 내가 많이 기댄 사람들은 어느새 각자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 이들과 각자 살기 시작했다. 나누어 마시던 술을 혼자 마시고 늦은 밤 거리를 배회했다.


머릿속에는 그들이 썼던 단어가 빙빙 맴돌아 가슴을 찔렀다.


사실 그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었다. 각자 살 길을 찾아야 한다는 걸. 내 인생은 누구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는 걸.


현실 도피, 부정 같은 것들이 그때는 일상이었다. 심하게 말하자면, 부모님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낳았으니까 책임져.’


말하지는 않았지만 말했다면 그것만큼 최악이 없었다. 나중에 언젠가는 각자 살길을 도모해야 했으니까.


그럴 때면 무리 지어 생활하는 동물들이 부러웠다. 코끼리, 사자같이 말이다.


나도 사고가 적은 동물이었으면 이런 고민 따위 하지 않아도 될 텐데. 그저 무리 속에 섞여 본능에만 충실해도 뒤처지지 않았을 텐데.


사회는 개인의 집단이라는 말은 맞다. 그러나, 그 집단이 서로의 시기, 질투, 배신으로 채워져 있다.


이런 걸 각자로 포장하여 교묘하게 섞어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방향으로 끌고 간다.


그 방향을 지향하는 지성 있는 무리의 집단은 지쳐간다. 서로를 비교하고 깎아내리기에 바쁘고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타협점만을 노린다.


생각해 보니 각자 살길을 찾으라는 말은 있는데 왜 각자 죽을 길을 찾으라는 말이 없는가.


나는 각자 살길이라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본다. 사람은 죽어가는 거다.


죽으면 그저 뼛조각이 남고 그걸 갈아버리면 가루가 남고 그 가루가 뿌려지면, 원래 없던 사람처럼 되는 거다.


각자 죽을 길을 알아보면 어떻게 끝을 맺어야 하는 건가. 우습게도 끝은 행복이 없다.


각자의 시작에는 행복이 있어도 각자의 끝까지 가면 행복이 있을 수가 없다.


누구나 최후를 맞이하고 똑같은 죽음을 겪는다. 물론, 죽은 후의 그 사람에 관한 평가는 다르다.


하지만, 그건 별로 중요치 않다. 죽는다는 것 그 자체는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단계의 최종상이다.


아무리 많은 부와 명예가 있어도 현생에서의 타락이기만 할 뿐이다.


각자 살아가고 싶지 않다. 이런 빡빡한 현실 속에서 잘 버틸 자신이 없다.


자신이 없는 건 스스로 혐오하고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나에 관해 한계를 선고했다.


처음에는 누구의 탓이라고 정확히 말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내 탓이라는 걸 알고 인정한다.


그래서 각자 죽어가고 싶다. 누구나 동등하게 찾아오고, 누구나 끝을 맺는 이야기처럼 말이다.


만약 그게 안 된다면 유토피아를 꿈꾸는 수밖에 없다. 집단이 생기고 그 집단의 화목함만이 있는 세상.

그러나 유토피아는 찾아오지 않다는 걸 알기에 유토피아다. 사람들은 모이면 각자 살길부터 찾는다.


원시시대든 현실이든 방법과 결과만 변형된 기출문제다. 그것을 제일 먼저 맞추는 자는 각자 살고 있다.


하나의 문제만으로 해결되면 나도 노력해서 전전긍긍하며 맞추어 보겠다.


그런데 왜 내게는 남들보다 난도가 높으며 맞춰도 다음 문제만 계속 제시할까.


어쩌면 내가 각자 죽어가는 세상은 영원히 점수로 평가되지 못하는 그런 삶이지 아닐까 싶다.


나는 각자라는 말이 긍정적으로 들릴 수가 없다. 부정에서 의미를 찾는 과정의 결과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살고 있을 때 평등하지 않다. 죽어갈 때가 되어서야 평등해진다.


그래서 나는 각자 죽어가고 싶다. 모두가 동등한 권리가 주어지는 시대가 오는 것처럼.

이전 13화13. 배고픔